그곳에 가면 그리움을 배운다 섬진강 기차마을의 ‘곡성 역사’ 수십 년 낡은 목재 건물, 헌 난로가 있는 대합실, 반질반질한 나무 의자와 통과폐색기, 건널목 차단기와 큰 굴곡 없는 철로. 흰 수증기를 가볍게 내뿜고 달려오는 증기기관차 ‘미카’…. 1998년에 멈춰버린 옛 곡성역이 다시 부활했다. 한때 전라선의 종착역으로 수많은 기차들이 지친 몸을 누이던 넓은 역사는 이제 오로지 사람을 위한 쉼터가 되어 돌아왔다. 전라선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향수를 모를 만큼 어린 나이지만, 추억을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글·고은주(Coreein) / 사진·Coreein Photo
낡은 창고 하나에도 역사가 숨 쉬는 곳 1933년 10월 15일에 개통되었던 곡성역은, 1998년 새 역사 건물로 이전되었다. 전라선 복선화 작업으로 곡성역이 옮겨간 뒤, 옛 역사 건물은 몇 년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시간의 공백이 만든 느긋함이 요즘 관광객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단층의 목재 건물이 주는 따뜻함은 시대를 초월한다. 덕분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곡성역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때로는 경성역으로, 함흥역으로, 국경을 넘어 하얼빈역으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곡성역은 곡성역이다. 영화가 곡성역을 담아간 것이 아니라, 곡성역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은 채 그 자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1930년대 건립된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역사건물과 역 옆의 물류창고는 등록문화재(제122호)로 되어있다. 역 건물과 마주보고 있는 다른 건물들도 독특한 외벽을 지녀 인상적이다. 이제 곡성역은 전라선의 종착역이 아니라, 섬진강 기차마을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섬진강 기차마을, 다시 기적을 울리다
1999년부터 옛 곡성역 부근의 1만5,000평 부지가 새롭게 조성되기 시작했다. 섬진강 기차마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옛 곡성역에서 출발한 증기기관차는 섬진강을 따라 13km를 달린다. 25분 정도가 지나면 기차가 가정역에 닿는다. 그 아래로 두가현수교가 강물처럼 출렁거린다. 이 소박한 목걸이를 늘어뜨린 채로, 섬진강은 말이 없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17번 국도와 부드러운 강바람을 나란히 한 채, 기차는 다시 달린다. 증기기관차만큼이나 인기가 좋은 것이 철로자전거다. 정선이나 문경의 철로자전거보다는 운행구간이 짧지만,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의 철로자전거다(특허청 실용신안 제0374727호). 비슷한 철로자전거가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이곳만의 장점은 자연환경이다. 섬진강의 때묻지 않은 풍광이 철로 위에서 펼쳐진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주중에도 1,000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섬진강 기차마을을 찾는다. 섬진강을 수놓는 산수유나 자운영이 없어도, 솜털 같은 목화밭이나 시원한 녹음이 없어도 섬진강 기차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그대로다. 겨울의 짧은 해와 칼바람 속에서도 옛 기차역과 섬진강의 풍광은 독특한 운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학생 단체가,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증기기관차는 주말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석을 타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역 구분도 없다. 전라선의 추억과 애환을 되새기기 위해 사람들은 부산에서도, 포항에서도, 서울에서도 찾아온다. 전라선의 추억은 전라도만의 것이 아니다. 증기기관차 ‘미카’가 21개월 동안 태운 사람들이 62만 명을 넘는다. 곡성군이 올린 관광수입만도 총 13억7,000만 원에 달한다. 영화,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옛 곡성역은 섭외 1순위 장소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토지> <야인시대> <사랑과 야망>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기차마을의 풍광을 담았다. 최근에는 <아이스케키>의 영화세트장이 기차마을 입구에 조성되어, 또 다른 시간여행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섬진강 풍광 속에서 자연친화적인 개발 개발 초기에는 철로 사업을 군 단위의 지자체에서 하기에는 벅차지 않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문화상품 개발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회의적인 시각도 컸다. 관공서나 주민들에게나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섬진강 기차마을 조성 계획을 발표한 곡성군 관광사업단에서는 우선 지역 주민들부터 사로잡기로 했다. 철로자전거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1년 동안 누구나 무료로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강을 따라 달리는 기찻길과, 그 기찻길을 누비는 자전거라는 테마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곧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 2000년에 문화관광부 지원사업으로 선정이 되고, 2003년 후반기부터 섬진강 기차마을에 대한 기대가 훨씬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지역 주민과 공무원 모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현재 곡성군에서는 옛 곡성역 부근에 생태학습장과 기차캐빈 등의 캠핑장을 조성하고 있다. 2007년 6월 말에 완공될 기차캐빈은 20m 길이의 객차를 숙박시설로 만든 것으로, 열차 안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두가 현수교의 은은한 불빛을 보면서 잠들고, 아침에는 물안개가 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기차’ 라는 테마는 결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섬진강 기차마을이 특별한 것은 흔한 테마에 섬진강이라는 자연경관을 함께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13km 구간을 달리는 동안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설계된 것이 증기기관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섬진강은 그대로다. 사람들의 마음조차도 가장 기억하고 싶은 그리움의 순간 그대로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옛 곡성역사는 섬진강의 문화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섬진강이 곡성 문화의 젖줄입니다” 김정위(곡성군청 관광사업단 기차운영담당)
옛 곡성역사 옆에 위치한 곡성군 관광사업단. 이곳 13명의 공무원들은 요즘 밀려드는 전화를 받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섬진강 기차마을이 입소문 나면서 관광객들의 문의 전화는 물론이고, 영화 촬영 문의나 숙소 투자 문의에 대한 전화까지 밀려들고 있다. “기차마을 사업은 곡성군 관광사업의 일부일 뿐입니다. 30%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관광 활성화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아서 더 힘이 납니다.” 김정위 계장은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추진했던 곡성군의 공무원들조차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관광사업단 식구들뿐만 아니라, 이곳 지역 주민들까지도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조성 중인 생태학습장까지 합하면 모두 342억 원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이 정도면 이곳 관광사업단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사업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광사업가 말입니다.” 곡성군청 관광사업단에서는 증기기관차를 직접 제작했다. 이 증기기관차를 제작하기 위해 일본까지 날아갔지만, 모델로 삼았던 일본의 증기기관차는 힌트를 주지 못했다. 수선비로 인해 적자운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는 부속을 구입하기도 힘들고, 전문 기술자도 거의 없어서 더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디자인만 증기기관차로 만들고, 내부는 석유로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산을 굉장히 많이 절약하게 되었죠. 진짜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와 다른 점이라면 하나뿐입니다. 출발할 때 나는 연기가 새까만 색이 아니라 솜털처럼 하얀 색이라는 겁니다.” 증기기관차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사람들의 눈도장을 받을 때마다 그는 뿌듯하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든 것 같기 때문이다.
|
첫댓글 일전에 다녀온 곳이지요.항상 설레임과 기다림에 그 추억의 기차역 ㄴ저에겐 나이가 들어도 그렇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