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크레바스에 신경 쓰면서 아이스폴 지대를 통과하고, 오전 8시 30분 벰바 셰르파가 지목한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내려가는 길을 살펴보니 급경사에 얼음까지 얼어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루트를 찾아 대열을 지어 내려갔다. 안전을 고려해 선두에서 피켈로 일일이 발 디딜 자리를 만들었다. 미끄러지면 바로 추락이고, 추락하면 죽는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는다. 살얼음판을 건너는 심정으로 고도 200m를 내려가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쉽지 않은 경사면을 내려가자 반질반질 얼어 있는 아이스폴 지대가 앞을 막아선다. 이번엔 피켈로는 어림도 없어 60m 자일을 2번이나 깔아가며 간신히 통과했다. 낙석지대가 나타났다. 절벽이 풍화하면서 발생한 낙석이 오랜 세월 쌓이면서 거대한 낙석지대를 형성했다. 지금도 언제 낙석이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지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내려가는 동안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낙석지대를 무사히 지나고, 다시 돌이 수북이 쌓인 빙하 지대를 조심조심 내려갔다. 간간이 누군가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훌륭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정표가 없었다면 또 얼마나 헤매었을지 모를 일이다. 마마 포터는 5년 전에 이곳에 왔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지형이 전혀 달라졌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고, 네팔 대지진으로 산사태가 일어나서 지형이 달라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두워질 무렵에야 샘물이 솟는 경사지를 발견해서 돌바닥을 고르고 텐트를 쳤다. 이제 위험지역은 벗어난 셈이다. 스태프들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았고, 운이 따랐다. 벰바 셰르파는 다시 오자면 정말 사양하고 싶다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사리붕 코스는 담대하고 강인한 셰르파마저 손사래 칠 정도로 어려운 코스다. 매년 지형이 변하고, 특히 눈이 변수다. 완벽한 장비, 유능한 가이드,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한다. 사리붕 코스를 무사히 돌아보도록 허락한 히말의 신께 재차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동충하초 채취 경쟁에 사상자까지 발생
나고루는 10여 채 규모의 티베트계 마을이다. 부근에 물줄기가 세 개나 지나 사람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집들이 망가져 있어 의아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푸마을 사람들의 여름용 마을이다. 여름에는 양을 치면서 이곳에서 생활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푸마을에서 거주한다. 네팔의 산간마을은 여름용과 겨울용 마을이 따로 있는 경우가 흔하다.
나고루마을을 뒤로하고 푸마을로 향했다. 이 지역은 산양 무리가 많다. 현지인들이 사냥을 안 하고, 설표범이 없는 모양이다. 산양들이 설산을 배경으로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서 현지인들이 모여 야크실을 뽑거나 자라를 짜고 있어 한참동안 구경했다. 자라는 야크털로 만드는 커다란 비옷이다. 비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지만 보온력이 좋아서 휴대용 이불이 되기도 한다.
이 마을은 야크를 1,000마리 정도 기른다. 야크는 고산지대에만 서식하는 소과 동물로 젖을 생산하고, 짐을 운반하며, 농사일까지 돕는다. 똥은 남김없이 수거해 퇴비를 만들거나 말려서 연료로 쓴다. 야크는 가축 중에서 가장 격이 높은 동물로 간주되어 귀한 대접을 받는다. 4월의 로사 축제에 한해 특별히 도살하는데 고기의 맛이 매우 좋다. 아쉽게도 구할 수 없어 대신 양을 잡아서 회식했다.
모처럼 한가하게 부엌의 불을 쬐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본다. 감자를 쪄서 고추장에 찍어 먹고, 짬빠(보리)빵도 주문했다. 짬빠빵은 이들의 주식으로 고소해서 내 입맛에 딱 맞는다.
푸마을도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서 노인들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네팔 산간 마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트레커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로지만 남고, 조상대대로 이어오던 농업과 목축은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젊은이들은 과연 언제 돌아올 것인가.
갱마을로 가기 위해 푸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급경사 내리막길을 만났다. 강가를 따라 계속 내려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낙석의 위험이 매우 높아서 무척 신경이 쓰인다. 네팔 산간지역은 대부분 산허리를 절개해 길을 만든다. 위로는 절벽이고 아래로는 낭떠러지 길이 많다. 히말라야는 바다가 융기한 지역이다. 절벽의 바위는 퇴적암이라 풍화작용에 쉽게 부서져나간다. 네팔의 산간도로는 그래서 낙석이 많다. 낙석은 예고 없이 불시에 발생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물론 낙석 구간이 짧으면 뛰어서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낙석구간이 길어서 2시간을 걸어야 벗어날 수 있다. 뛰어봤자 별무소용이다. 그저 운명에 모든 걸 맡기고 갈 수밖에 없다.
낙석 구간을 무사통과하고 갱마을을 지난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상의 고개를 몇 번 오르내려야 한다. 비록 몸은 힘이 들지만 낙석 위험이 없어 마음이 느긋해진다. 차고마을(3,720m)에 도착했다. 넓은 목초지에서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한때 달라이라마의 저항군이 이곳과 갱마의 절벽에 있는 굴을 오가면서 대중국 무장투쟁을 했다. 현지인에 의하면 저항군이 철수하면서 숨겨놓은 귀중품을 찾기 위해 그들의 후손들이 오기도 한단다.
차고마을을 뒤로하고 나르마을로 가는 길목을 지나, 오후 무렵 메타마을(3,560m)에 도착해서 로지에 여장을 풀었다. 로지 주인은 사냥과 석청 채취도 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호랑이도 잡았다고 자랑한다. 이 지역에는 자연산 동충하초가 생산되고 있다. 동충하초는 불로장생의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따라서 채취 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싸움 끝에 사상자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주인은 사리붕 코스를 잘 알고 있었다. 2015년에 조난 당했던 트레커들의 장비를 주민들이 수습하면서 자칫 길을 잃을까봐 돌무더기로 표시했다고 한다. 우리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돌무더기에 그런 사연이 숨어 있었다. 이정표는 낯선 길을 가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하다. 내 작업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이정표와 같다. 히말라야 오지를 트레킹하려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히말 신의 너그러운 가호가 있어야 한다
오전 10시경 티하우스에 도착했다. 전에는 한 채뿐이었으나 그 사이 세 채가 늘어났다. 접근성이 좋아져 홀로 다니는 트레커가 많아지면서 로지도 증가하고 있다. 근처에 따또빠니(온천)가 있어 찾아갔다. 용출 유황온천으로 돌로 대충 막아 물이 고이게끔 해놓았다. 루마티스 관절염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뜨거운 온천물을 몸에 끼얹으니 그간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
목욕 후 한결 가뿐해진 다리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 길가에서 아름드리나무에 불을 지르고 있는 현지인을 발견했다. 나무를 죽여서 집을 짓기 위한 재목으로 사용할 모양이다. 나무의 남벌과 자연훼손은 네팔 산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며,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아직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그 폐해가 계속 넓어지고 또 깊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오후 2시경 고토마을(2,600m)에 도착했다. 고토는 안나푸르나 라운드 상 작은 산간도시로 외국 트레커에게는 많이 알려진 곳이다. 과거에는 안나푸르나 마낭으로 가는 트레커가 여기서 많이 묵고 갔다. 현재는 도로가 좋아 마낭까지 차가 들어가는지라 전에 비해 한산한 분위기다.
고토는 바람이 세고, 산그늘에 가려 있어 으슬으슬 추위마저 느낀다. 다운파카를 껴입고 시내를 둘러보고, 아래쪽 로지에 가서 수유차와 짬빠가루를 비벼먹으니 비로소 몸이 따뜻해 온다.
내일은 지프를 대절해 베시샤하르(760m)까지 간다. 거기서 다시 버스편으로 카트만두로 귀환할 예정이어서 사실상 오늘이 산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그래서 양고기 파티를 열었다. 스태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모두의 무사귀환을 자축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히말라야 오지의 풍광과 풍물을 카메라에 담아가는 과정은 나 혼자만의 작업은 결코 아니다. 스태프들의 노고와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현지인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히말 신의 너그러운 가호가 있어야 한다.
산은 말이 없지만 분명히 살아 있다. 산은 소통하려는 사람에게는 말을 걸어 온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그 소리는 결코 들리지 않는다. 산이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라.’ 세상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가 이번에 나에게 보낸 화두다.
네팔 중서부 트레킹 후기
다울라기리 라운드는 이탈리아 베이스캠프까지는 무난하다. 하지만 스위스캠프를 지나면 경사가 급한 아이스 지대,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4,748m), 프렌치패스(5,360m), 히든밸리(5,140m), 담푸스패스(5,244m), 칼로파니(4,930m) 등 난코스가 연이어진다. 의외로 험하고 어려운 코스다.
무스탕 지역은 초보자에게 권할 만하다. 로만탕을 기점으로 신비로운 고대왕국 ‘로’의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차량이나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어서 체력에 거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다모다르 쿤드와 사리붕 코스는 다소 생소하리라 판단된다. 해발 5,000m를 넘나들고, 빙하지대와 낙석지대가 예상보다 훨씬 길고 많았다. 눈이 내리면 사실상 빠져나오기 힘든 곳이다. 특히 빙하지대는 지형이 자꾸 변해서 노련한 셰르파를 대동했어도 순간적으로 길을 잃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상급자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고난도 코스다.
빙하지대에 적합한 제반 장비를 철저히 준비하고, 빙하지대 트레킹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와 필히 동행해야 하며, 해발 5,700m의 얼음판에서도 무리 없이 야영할 정도의 체력과 등반경험을 갖추었다면 도전할 만하다.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코스 중 손에 꼽을 만큼 어려운 코스라고 판단된다. 이후 푸마을과 고토마을까지는 평이한 수준이다.
이번 트레킹에서는 혼자 다니는 외국인 트레커를 많이 목격했다. 그들의 모험심이 강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내면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네팔 오지의 접근성이 좋아졌고 트레킹 저변이 넓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는 신비로운 땅이다. 나름대로의 욕망을 좇다가 지쳐버렸다면 히말라야에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뜨거운 머리는 시원해지고, 답답한 가슴은 밝아지며, 허한 단전은 기운으로 충만해진다. 히말라야에는 그런 힘이 곳곳에 숨어 있다.
가이드 겸 클라이밍 셰르파인 벰바, 클라이밍 보조 셰르파인 치링, 렌젠을 포함한 5명의 쿡, 카메라 포터 마마, 그밖에 10명의 포터 총18명의 스태프들이 동행했다. 그중 포터 3명은 도중에 내려갔다. 나에게는 동지와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코스를 함께한 스태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