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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임
타라 브랙 지음. 김선주・김정호 옮김. 불광출판사. 2012.
옮긴이의 글
-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서문. ‘난 뭔가 잘못 됐어’
-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깊은 외로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자신을 자비로 감싸 안으면, 우리는 자유로워져서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근본적 수용의 축복이다. 우리가 ‘난 뭔가 잘못됐다.’는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면, 자기 자신의 온전함을 믿고 표현하게 된다.
1. 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 무가치하다는 느낌은 타인이나 인생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과 함께 나타난다. 만약 우리에게 결함이 있다면 어떻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 불완전하고 무가치하다는 믿음은 우리가 진실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든다.
- 문제는 에고가 모든 것을, 심지어 영성까지도 자신의 편의대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완벽을 향한 탐구는 제자리를 찾도록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우리는 전체성과 선함이 언제나 우리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경청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삶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느낀다.
- 부모는 아이들을 두려움(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과 욕망(아이들이 자신들의 듯을 잘 따라주기를 바라는 욕망)의 필터를 통해서 본다.
- 우리의 부모와 문화는 우리에게 뭔가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는 가르침을 통해 에덴동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두려움이 클수록 적대감은 더욱 강렬하다.
- 욕구와 두려움은 우리를 보호하고 번창하게 돕는 진화적 설계의 일부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에너지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정체성의 핵심이 될 때, 우리는 존재의 충만함을 못 보게 된다.
- 참된 자유란 ‘불완전함에 대해 근심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재와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듯이다. 불완전함은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 성찰연습. 무가치감의 트랜스 인식하기
- 타인이 우리를 봐주길 원하는 방식과 그들이 우리에게서 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숙고해보면, 우리 자신의 트랜스를 가장 분명하게 지각할 수 있다.
2. 근본적 수용: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신기한 역설은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든 우리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통제하거나 판단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의식한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의 현재 순간의 실제 경험을 수용하는 내면과정이다. 저항 없이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본 것을 열린 마음과 친절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진정한 수용의 두 날개는 명확히 보기(마음 챙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과 기꺼이 함께 한다. 만약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없다면 경험을 진실로 수용할 수 없다.)와 우리의 경험을 자비로 감싸 안기이다.(자비는 우리의 경험을 존중한다. 우리의 수용을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만든다.)
- 우리 의식의 본질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 가슴의 본질은 보살피는 것이다.
- 우리가 언제 판단하고 저항하고 집착하는 습관에 사로잡히고, 고통과 즐거움의 수준을 통제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으로 근본적 수용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 저항하지 않고 고통에 마음을 열자,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유연해지고 더 부드러워졌다.
-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우리 자유의 경계다.
3. 신성한 멈춤: 지혜의 나무 아래에서의 휴식
- 멈춤을 학습하는 것이 근본적 수용 훈련의 첫 단계다. 멈출 때는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걷고, 쓰고, 계획을 세우고, 걱정하고, 먹는 등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하던 것을 그저 중단한 다음 진심으로 존재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몸을 고요하게 한다.
- 조종 장치에서 손을 떼고 멈추면, 우리를 몰아가는 욕구와 두려움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된다.
- 대개 멈춤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렇게 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다. 그렇지만 그 순간의 실제 경험에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근본적 수용은 불가능하다. 신성한 멈춤의 기술을 통해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숨지 않는 능력, 도망가지 않는 능력을 기른다.
- 만약 그가 그늘로 들어가 쉬기만 했더라면 그림자는 사라졌을 텐데 말이다.
-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를 당하게 하는 감정들을 상습적으로 쫓아내다보면 그림자가 우리 정신 내에서 힘을 갖게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면 내면의 어둠은 더 커진다. 우리의 존재의 일부를 거부할 대마다 근본적 무가치감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게 된다.
- 우리 마음에서 만나거나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모든 신경증과 고통의 원천이다.
- 아마도 우리 삶 속의 모든 용은 단 한 번 아름다움과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주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은, 가장 깊은 본질에서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것이다.
4. 조건 없는 친절: 근본적 수용의 정신
- 무엇도 잘못된 것은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단지 ‘진짜 삶’일 따름이다. 이 같은 조건 없는 친절이 근본적 수용의 정신이다.
- 진실을 보고 본 것을 친절로 감싼다.
-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분노, 상처의 경험에 대해서는 예스를 말할 수 있다. 예스는 우리의 사고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기꺼이 허락하는 내적 수용 훈련이다. 우리의 경험이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상관없이 지금의 경험에 동의함으로써, 우리는 경험이 마음 안에서 충분히 재현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5. 몸과 가까워지기: 근본적 수용의 기반
- 우리가 고통이라고 부르는 불쾌한 감각은 똑똑한 생존 장치의 일종이다. 고통은 주의를 달라는, 자신을 돌보라는 우리 몸의 신호다.
- 증상들이 있을 때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증상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듣고 기꺼이 받아들여서 연결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두려움은 그 자체가 불쾌한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통을 악화시킨다.
- 처리되지 않은 고통은 자기보호 체계를 영구적인 경계상태로 유지하게 한다.
- 어린 시절에 관한 진실은 우리 몸에 저장된다. 비록 그것을 억압할 수는 있지만 결코 바꿀 수는 없다.
- 우리가 아무리 깊이 상처를 받았어도 우리 몸으로, 온전함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된다.
- 정서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몸의 경험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몸과 마음에 봉인되어 있던 그 정서와 연결된 과거의 감각들과 스토리들의 억압이 풀린다.
- 만물은 자신의 삶이 있고, 만물은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관심을 갖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며, 알아차리는 것이고, 삶이 당신을 통해 산다는 것이다. 보고, 느끼고, 삶이 당신의 손을 잡게 하라.
*. 명상연습: 고통의 근본적 수용
- 불쾌한 감각에 저항을 멈추고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그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그러면 고통에 대한 근본적 수용을 계발할 수 있게 된다.
6.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오직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리고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의 자기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뛰어드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아니라 ‘경험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이다.
- 욕구는 대개 불편하기는 해도 나쁜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욕구의 끌어당김은 생존 장치의 일부다. 욕구는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장악해버릴 때만 문제가 된다.
- 살아있음과 깨어있음은 우리가 가장 깊이 열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별 안에 있기를 우리 자신의 본성을 깨닫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우리의 욕구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에 습관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 존재의 핵심인 의식과 사랑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존재의 원천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느끼면, 우리는 욕구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 우리의 욕구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 우리는 신체가 수축하는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받으며, 숨고 싶은 욕구인 수치심과 두려움의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욕구와 계속된 좌절을 경험할 때 ‘욕구는 우리를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이끈다.’는 오래 지속되는 연합을 만든다. 우리 몸에 갇힌 이 강렬한 반작용적 느낌 덩어리는 욕구하는 자아의 역동적인 핵을 형성한다.
- 우리가 정서적 욕구를 직접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욕구하는 자기는 그것을 대체물로 만족시키는 전략을 개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욕구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괴로움은 지속되고, 그와 함께 쾌감이나 안도감을 주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의존 역시 계속된다.
- 생산적 활동은 우리가 불안정감을 느낄 때 자신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다.
- 만약 욕구하는 자기가 주도권을 잡으면 어떤 일에도 자유롭고 즐겁게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욕구하는 자기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근본 욕구와 두려움을 처리하지 않는 한, 욕구하는 자기가 모든 활동과 인간관계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 만약 우리가 갈망에 장악되어 있다면, 우리 앞에 누가 혹은 무엇이 있든 상관없이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을 본다. 이러한 갈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깊은 트랜스로 끌어들인다. 앞에 놓인 것을 즐기지 못하고 터널 시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 우리의 갈망이 더 강렬한 자극이나 무감각한 안도를 추구하도록 몰아가기 때문에 소박한 즐거움을 외면한다.
- ‘욕구하는 자기는 내 최악의 적이다.’ 우리가 욕구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이유는 욕구하는 자기가 우리의 전체 삶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 고통스러운 수치심이 우리를 장악하면,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애당초 우리를 중독으로 몰고 간 사랑에 대한 갈망과 단절되는 것이다.
- 욕구를 거부하는 것은 사랑과 살아있음의 원천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극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응이 일어나면,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으면서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대신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 저항이 사라질 때 악마는 사라진다.
- 우리의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욕구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욕구에 대해 되풀이해서 마음을 열면 우리는 욕구의 원천인 끝없는 사랑을 믿게 된다.
- 근본적인 수용을 통해 우리는 결핍디고 욕구하는 자기 주위에 쳐놓은 수치심과 혐오의 막을 걷기 시작한다.
*. 성찰연습: 욕구에 끌려간다고 느낄 때 ‘멈춤’
- 모든 경험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고 느껴지던 갈망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 그 욕구가 자연스럽게 다시 일어나겠지만,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될 것이다. 행위를 멈추고 욕구를 관찰하게 되면, 그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더욱 커질 것이다.
*. 성찰연습: 가장 깊은 갈망 발견하기
- 우리가 수많은 욕구를 의식의 빛으로 끌어들일 때 그 밑에서 영적인 깊고 진정한 원천을 발견한다. 이 핵심 갈망들은 우리를 개달음과 자유의 길로 안내한다.
- 스스로에게 묻고, 신중히 듣고 수용하면서 멈추고, 또 묻기. 가장 깊이 진실하게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그 갈망에 깨어서 항복하라. ‘예스’라고 말하고 그 갈망 안에 온전히 머물러라.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어서 질문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
7. 두려움과 함께 사는 법
- 우리는 도망치고 있는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 고통에 머무는 방법을 배워서, 그 타는 듯한 힘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두려움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두려움은 미래의 고통에 대한 예측이다. 두려움은 호흡을 위축시켜서 얕고 빠르게 한다. 두려움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려주고,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신속하게 파악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두려움의 기본 기능은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 순수하게 생리적인 수준에서 볼 때, 두려움은 일정한 순서로 일어나는 신체 반응의 연쇄다. 이 생물학적 반응을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 두려움의 정서는 개인사가 누적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생존 장치다. 당장의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두려움의 감정은 그것과 연합된 과거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기억이 촉발한 감정과 조합된다.
- 모든 두려움의 뿌리는 삶에 대한 기본적 열망과, 퇴화와 죽음에 대한 혐오다.
- 두려움의 트랜스는 두려움의 느낌을 피하려는 전략에 의해 지속된다.
- 우리가 반응하는 것은 과거 고통의 누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반응은 그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과 균형이 안 맞는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길 때,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퇴행하기 때문에 성숙한 이해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리의 과잉반응은 추가된 창피함이다. 그러나 우리가 괜찮은 척 할 때 오히려 분리되고 혼자이고 위험에 처했다는 느낌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다.
- 기본적인 안전감을 발견하는 첫 단계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강렬한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겁먹은 자기보다 더 큰 뭔가의 일부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두려움이 크긴 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이 훨씬 더 크다.
- 영적인 길을 떠날 때, 우리 자신의 가슴과 마음이 깨어남의 잠재력을 가졌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 벗어나려 하지 않고 다가가는 방식으로 두려움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정체성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두려움 한가운데서 진정으로 깨어있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감각에 기거이 능동적으로 접촉하려는 의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이 ‘그건 너무 심하다.’고 말하는 것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두려움은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저항은 삶에 대한 저항과 같다.
- 두려움을 대면하는 것은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평생의 훈련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훈련이다. 기꺼이 두려움을 대면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깨어있음의 축복을 선사한다.
*. 명상 연습. 감싸 안는 열린 깨어있음으로 두려움 만나기
- 하루 중 언제라도 당신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두려움과 함께하는 연습을 해보라. 숨을 들이마시면서 두려움의 감각에 접촉하고, 숨을 내쉬면서 열려 있음 속으로 들어가라.
8. 나를 자비로 감싸 안기: 내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은 단지 존경과 사랑으로 자신에게 다가가야 한다. 당신 자신에 대한 사랑을 완전하게 만들라.
- 울어라 당신의 고통에 둔감하거나 침묵하지 마라. 슬퍼하라! 그래서 당신 안으로 사랑의 젖이 흐르게 하라.
- 자비는 함께 있고, 함께 느끼고, 함께 괴로워한다는 의미다.
- 나는 이 고통을 염려합니다.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기를......,
- 우리의 우울, 두려움, 분노는 문제라기보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고, 우리의 깨어남을 위해 쓰일 수 있다.
*. 명상 연습. 괴로움을 안는 자 되기
- 자비는 자신의 삶을 감싸 안는 능력에서 시작한다.
- 사랑하는 이여 나는 이 고통을 염려합니다.
9. 세상을 자비로 감사 안기: 나의 삶이 모든 존재에게 이롭기를
-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삶에 감동받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더 열리고 더 연결된다.
- 우리는 깨어있는 가슴을 사랑한다. 그것이 활짝 핀 꽃처럼 우리 본성의 완전한 실현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서로 간에 그리고 우리 주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이 열려있고 관대하고 사랑으로 채워져 있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느낀다.
- 싫은 감정이 생겨나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다른 존재로 느끼도록 아주 깊이 조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겉모습 너머를 보는 훈련을 한다면 모두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사랑이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느낌을 기술하는 것이라면, 타인에 대한 자비는 우리 모두 고통을 안고 산다는 진실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향기다.
- 우리는 그저 같은 고통을 공유한 사람이다.
- 나는 당신의 고통을 염려합니다. 당신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 타인의 괴로움을 성찰할 때 우리는 우리가 홀로 고통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리의 취약점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 그들도 우리 아이들이다. 일단 누군가가 비실재의 타인이 되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아픈지 못 보게 된다. 그들을 느낌을 갖는 존재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할 뿐만 아니라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다.
- 내 종교는 친절이다. 나의 삶이 모든 존재에게 이롭기를
- 우리는 어떠한 큰일도 할 수 없다. 단지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 명상연습. 통렌(받아들이고 내보냄)수행: 자비의 마음 깨우기
- 당신이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 상처와 두려움의 생생함과 예리함을 느껴보라. 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평안을 위한 기도를 하며 고통을 의식의 열린 공간으로 내보내라.
10. 우리 안의 선함 깨닫기: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가는 관문
- 타인을 향한 거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갖는 거부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 안에서 선함을 보는 것은 자신 안의 선함을 보는 데서 출발한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칠 때 그것은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
- 우리는 자책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자비로 감싸 안을 때만, 선함을 경험하고 지혜와 배려로 주변 상황에 반응하게 된다.
- 우리는 의지로 용서할 수는 없다. 용서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열림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용서할 때, 우리는 타인을 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과 완고하게 동일시하는 것을 그만둔다.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고,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를 내면 깊이 충분히 볼 수 있도록 가슴과 마음을 넓게 연다. 우리는 그들의 선함을 본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가슴이 사랑에 열린다.
- 타인을 규정하는 습관적인 정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그들의 참된 본성의 선함, 즉 밝은 의식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것을 멈추고 ‘당신은 정말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때 더 깊은 이해로 다가갈 수 있다.
-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낄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들의 행복과 웰빙을 바라게 된다.
- 모든 이는 행복을 원한다. 어느 누구도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단지 사랑받기를 원한다.
11. 함께 깨어나기: 깨어있는 우정은 신성한 삶의 전부다.
- 우리가 사람들과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다.
- 우정이란 친구 내면의 선함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 고통을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근본적 수용의 핵심이다. 삶의 어려움은 개인만의 것도 아니고 개인이 야기한 것도 아니다.
- 현명한 말, 즉 삶을 존중하는 말이란 진실한 것과 이로운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 성찰연습. 깨어서 소통하기
- 당신의 목적을 정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깨어 있고, 정직하고, 친절하겠다는 뜻을 삶의 기본으로 삼는다.
- 당신의 몸을 닻으로 삼아라. 몸에서 깨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두세 곳을 선택한다.
- 가슴으로 듣고, 가슴으로 말하라. 가슴으로 말하는 것은 참된 경청에서 시작된다.
- 멈추고, 이완하고, 주의를 기울여라. 대화를 할 때 자주 멈추어라. 말하는 중에도 당신의 몸과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멈추어라. 상대방이 말을 마쳤을 때, 잠시 멈추어 그가 했던 말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 근본적 수용을 훈련하라. 근본적 수용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위한 그릇이 될 때, 진정으로 친밀해질 수 있다.
12. 나는 누구인가?
- 영적으로 성숙하면,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쫓으려는 반사적 반응보다 진실을 보고 열린 마음으로 살려는 열망이 더 강해진다.
-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떤 존재도 없다. 마음의 실체도 나도,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단지 의식, 비어 있는 열린 의식만이 있다. 우리의 경험에는 중심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다. 그러나 이 공(空), 즉 ‘아무것도 없음’은 삶이 비었다는 듯이 아니다. 오히려 빈 의식은 생생하게 인식하는 깨어있음으로 가득 차 있다.
- 의식이라는 무형의 바다는 끊임없이 바뀌며 끝이 없는 삶의 파도를 일으킨다.
- 삶을 사랑으로 살지 않으면서 순수한 의식을 본다는 것은 백일몽이다.
- 근본적 수용은, 진정으로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 세상을 온전하게 살도록 하는 기술인 동시에 이 삶이 생겨나고 사라지게 하는 무형의 의식에 머물게 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 삶을 기꺼이 감싸 안아야 한다.
- 이생의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통과해 계속 걸으라. 계속 걸으며, 너의 가슴을 따르고 의식의 힘을 믿으라. 한 번에 한 걸음씩 계속 걸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자유와 평화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