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8-16
찬송가 568장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릿 시냇가에 머물던 엘리야를 바알 숭배의 본진과도 같은 사르밧으로 보내시는 내용을 전합니다. 앞서 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릿 시냇가에 엘리야를 숨기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릿 시냇가는 비록 단절됐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마치 변화산에서 꿈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를 맛본 세 제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거기서 초막을 만들어 지내고 싶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예수님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 구원 사역에 동참했듯이 8절에서 그릿 시냇가에 숨었던 엘리야에게도 그곳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엘리야의 담대한 요청 (8-14)
(8-9)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열왕기상 16장 31절은 아합이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겨 예배했다고 증거합니다. 이처럼 시돈은 바알 숭배의 본산지로서 어찌 보면 엘리야가 기거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장소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소 황당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했고, 그릿 시냇가라는 훈련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충분하게 경험했습니다. 이제 큰일을 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심하게 말하면 과부에게 가서 빌어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냥 머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왜 그릿 시냇가의 물을 마르게 하셨습니까, 이 가뭄에 과부에게 가서 무슨 음식을 구하라는 것입니까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르밧으로 향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그릿 시냇가와 같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살게 하신 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거기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리시지 않았습니까? 꿈만 같은 그곳에서 계속 머물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점차 시냇가가 말라갑니다. 그리고 까마귀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치 과부에게 음식을 공궤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선뜻 내키지 않는 일로 몰아가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옮기시는 방법으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면 보내십니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 천국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0-11)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엘리야는 즉시 일어나 사르밧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성문에 이르러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 그 과부를 바로 알아봤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물을 청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청했던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처럼 자신이 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문화권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건장한 남성이 여성, 그것도 과부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은 어떻게 봐도 이상한 일입니다. 게다가 별말 없이 그릇에 물을 담아 오려고 가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먹을 것까지 요청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낯선 사내의 요청을 받아주던 과부가 이렇게 대꾸합니다.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과부도 이미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엘리야가 그 지역민이 아니며 바알을 섬기는 사람도 아님을 눈치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떡은커녕 한 끼 겨우 해 먹고 죽을 것밖에 없다고 푸념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알고 계시기는 하느냐는 공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뭇가지 둘을 줍는 것도 먹고 죽으려는 일이라고 쏘아붙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이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과부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나뭇가지를 줍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멈추지 못합니다. 죽음의 길을 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피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 채 먹고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이 실상은 나와 내 가족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의 종이 되는 그일조차 자신의 공로로 삼고 죄의 삯인 사망을 향해 치달아 가는 것입니다. 이후 말씀에 과부가 어떤 믿음을 고백하게 되는지를 다루겠지만, 현 상황에서 과부는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내 삶의 조건과 방식을 건드리지 말고 그 가운데 죽게 하라는 죄악된 인간의 고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13-14)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엘리야는 그 본질을 꿰뚫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 노릇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말대로 마지막 요리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먼저 나에게 한 조각 먼저 가져온 후에 아들과 함께 먹으라고 합니다. 마치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 것과 같은 파렴치한 요청입니다. 하지만 이 순간은 과부뿐 아니라 엘리야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음식을 준다고 했지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저주가 마칠 때까지 과부에게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이 그러합니다. 물론 과부도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엘리야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충분한 건강과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생존권을 완전히 맡기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사로 평생 사셨고 은퇴하셨습니다. 그때 가장 어려운 점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인신공격이었습니다. 사지 멀쩡한데 운전이라도 하고 살지 왜 그렇게 사느냐는 조롱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대신 마지막까지 의지하고 붙들고자 하는 자신의 능력과 자기의를 버리게 하십니다. 그것이 인간적으로는 치욕이자 수치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내 능력으로 부양할 수 없다는 자괴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능력을 제한하시면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수치를 기꺼이 감당하셨듯이 우리도 그러한 약함과 제약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온전히 임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결과 (15-16)
(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과부는 순종했습니다.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말씀대로 먹을 것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처럼 하나님은 작은 순종을 통해 끊임없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영적인 기갈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전인적인 필요도 포함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적고 미약해도, 그것이 끊이지 않는다면 우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께 사용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일차적으로 인간 본성에 반대되는 말씀에 순종한 과부와 엘리야를 그립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뿌리 깊은 자기 사랑과 자기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말씀을 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말씀의 확장과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깨달음을 전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시혜자의 입장에서 서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로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하나님의 선교 사역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엘리야는 우상의 소굴에서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것도 한 과부의 도움을 받아 그 집에 칩거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뜻을 펼치십니다. 따라서 보내심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진득하게 머물며 기다리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에도 주님 안에서 평안함을 누리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경험하는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과부와 엘리야에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또 그렇게 신뢰하도록 인도하심을 봅니다.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자기 의와 자기 신뢰를 버릴 때까지 우리를 연단하심을 확인합니다. 내 삶의 모든 조건이 오직 주님께만 달린 것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직 머물도록 한 곳에서 머물며 그곳에서 누리게 하신 것으로 만족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자리를 지킴으로 동참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이 먹이고 돌보신 그릿 시냇가를 떠나신 경험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과부의 심정을 헤아려 보시고,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행위는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3. 내게 있는 작은 것으로 충만해질 수 있음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신 경험을 묵상해 보십시오.
(작성: 이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