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신을 잠시 뒤돌아 보게한다 가족단위가 많다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앞으로 시간나면 자주 가족들과 돌아 다녀야겠다
나도 이곳이 처음 인지라 아들에게 인증샷을 남긴다
자연은 항상 우리에게 무한대로 선물을 주고 피로도 풀어주고 치유도 해주고 따뜻하게 변함없이 항상 그자리에서 우리를 받아주는데 우리네 인간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끈임없이 파괴하고 불을지르고 야단 법석이다 자연도 사람과 어울려야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놔두면 그 또한 파괴 현상이 산속에서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인위적으로 짐승들과 사람이 심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자연환경 속에서 상부상조가 되는 최고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14시55분 드디어 출발이다
한계령 휴게소 에서 800m 정도 양양 방향으로 내려오면 필례약수터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우측 방향으로 이동해서
700m 정도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좌측에 인제군 간판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필례약수는 인제에서 현리와귀둔을 거쳐 한계령 방향으로 약11km지점의 필례계곡이 위치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필례계곡을 필노령이라고하여 노력을 아끼는고개 즉 지름길 이라 하였는데 한계령이 생기기전에는 영동 과 영서를 연결하는
지름길이였다 소설 은비령의 배경지 이기도하다 필례약수는 위장병,피부병 에좋다 약간탄산수 철분이 많고 휴양지로 최고다
이곳에서 화살표 방향 3번째 하단부로 들머리가 된다 (여기서 500m정도 돌아가도 들머리가 있는데 산행시 감시초소와 만나지않는다) 사진처럼 간판뒤 풀밭경사 능선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5~10분 정도 오르면 국공 초소가나온다
(참고: 인제군 간판 밑부분 출입통제 안내판 표시에 새로만든 철조망 문으로 공원경찰 들이 출입을 한다 특히 낮에 들어갈때 주변확인후 풀발능선을 제빠르게 이동 해야한다)
아들을 소리없이 걷겠금 교육을 시키고 손짓으로 기다리게 한다 군사작전이 따로 없다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선두공병 답게
군에서 배운과정을 30여년 만에 여기서 처음 실시해 본다 뒷편으로 뒤돌아가 이동하여 열쇠잠금 장치부터 확인하고 싱겁게 긴급상황이 끝나 버린다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올라 오라 전달한다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 스트레스와 체력이 방진되어 버렸다 그만큼 대낮 대간 출입금지 산행은 너무너무 힘들고 내가 왜 이런걸 하지 후회도 이런상황에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귀한사진으로 보상 이라도 받는 기분으로
인증샷을 해본다
나도 덩달아 인증샷을 남긴다
이런 산행은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다
조금 지나니 대간길 옆에 멋진 모자 바위처럼 생겼다 비가와도 임시 대피소가 될수도 있을것같다
아들에게 인증샷을 하게한다 조금가다 한분을 만난다 우린 국공파로 착각 했는데 대구에서 홀로 오신 우리또래 우씨다 이름을 잊어 버렸다 초소에서 30여분 가면 암벽이 나오는데 중간에 큰 참나무가있다 중간에 잡아줄 공간이다 어제까지 비가 많이 이곳은 내렸다
길이 미끄럽고 바위는 미끄러워 포기하고 내려오는중에 우릴 만나고 로프를 국공들이 모두 제거 해버렸단다 우리에게 끈이 있다고 하니 다시 함께 힘을 합쳐 도전해보기로 하고 다시 암릉 구간으로 향한다 우씨도 대간을 하고 있는데 단목령에서 한계령 그리고 미시령
에서 마등령 설악동 코스가 남아 이번기회에 마무리 할 계획이였는데 국공파에게 서운함을 반복해서 xx반복한다
암릉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은데 로프를 진짜 이구간을 모두 제거 해버렸다 난 이걸 제일 걱정 했는데 또 추측이 100% 맞았고 이곳
한계령을 선택한 이유가 이런 문제점을 파악 했기 때문이다 배낭을 벗고 끈을 가지고 바위를 올라 보지만 비온뒤라 너무 미끄럽고
위험에 몇번을 시도 하다 포기하고 투덜 거리며 내려와 2차계획을 수정하고 필례삼거리서 히킹을 한다 배낭족 3명 인데도 젊은 친구가 태워준다 군인아저씨다 1군단에 있단다 고맙기 그지없다 흘림골에서 내려 망대암산을 지나 점봉산에서 조침령으로 갈계획이다
국공이 우릴기다리고 있다 그냥 내려가란다 한참을 3명이서 3차계획수정중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어제 미시령 답사를 갔다
왔는데 5명이서 초소에서 좌,우로 도로에서 군인처럼 보초 를 서고있고 황철봉 로프가 모두제거 되어 가실려면 설악동~마등령으로
가야 되돌아오기 편하단다 이분은 통제구간이 끝날때까지 기다릴거라한다 답답하다 다시히킹을 한다 남녀 부부인데 남설악탐방지원
한계령에서 산행을 마치고 택시로 이동 차량을 가지고 (오색약수,온천) 으로 간단다 우린 지원센터 앞에서 내리고 인사를 건낸다
우씨는 약수터서 민박하고 점봉산을 내일 다시오색초교에서 역으로 도전해본단다
우린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택시를 이용 조침령에서 야간산행을 결정하고 점봉산까지 되돌아 오던지 비상탈출하던지 현지 상황에 따라 대체 하기로 하고 택시기사와 상담한다 새벽4시부터 손님기다린단다 4대가 순서를 기다리고 5만원 인데 4만원에 가잔다 난 너무 비싸다 했더니 그럼 메타기로 가잔다 3만원이다 참그렇다 내일 다시 연락 하기로 하고 인사를 나눈다 이승섭(010-6385-2155) 구조대원이란다 이곳 방향을 가실분 사전연락 정보 얻기 바랍니다 주전골,흘림골,한계령,백담사,설악동 운행하신단다
기사님 후배가 국공 인데 몇일전 로프제거 정보을 입수했단다 황철봉도 모두제거 했고 될수 있으면 그쪽은 가지마라고 충고 하신다
한계령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네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조침령터널입구도착 18시
자전거 백두대간 팀들이 우리부자를 보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10여명이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순식간에 터널을 통과한다
2006년 12월 1일에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를 연결하는 연장 1,145m의 조침령터널이 개통되어 통행 시간을 1시간 가량 단축시키고 이동거리도 40km 가량 줄어드는 효과를...
총연장 약 68.29km |기점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주요경유지 강원도 인제군 강원도 양양군 |종점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전번산행시 이곳 터널인증샷이 없어 오늘은 신경을 쓴다
아들에게 카메라를 맡긴다 우측 임도를 30분 정도 오르면 조침령 표지석이 나온다 표지석 우측 나무데크 계단이 대간길이다
여기서 술한잔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다면 텐트치고 여기서 하룻밤 보름달을 보면서 즐기고 싶다
참좋다
너무너무좋다
탁트인 조망에 운무에 자연환경은 내머리속에 혼을 빼버린 기분이다 18/47
좌,우 이번 코스는 조망이 별로없다
오로지 이정목 만을 기록하며 산행을 해야한다 큰어려움은 없을것 같다 19시
500m 간격으로 설치된 이정목은 거리를 정확히
암시 하기 때문에 세월아 세월아 거북이 걸음이다 우리부자는 조침령 산행전 한계령에서부터 기진맥진 상태여서
사진 및 기록도 귀찮고 자괴감에 빠져 그냥 의무적으로 산행을 해야 하나 그런생각 뿐이고 점봉산 까지가서 다시 단목령 으로
되돌아 올경우 국공에 걸릴 염려가 있어 마음속으론 단목령에서 우측으로 오색초교 방향으로 탈출을 준비해본다 19/10분
900봉 입니다 선답자가 2013년5월7일 기록을 남겨놓았다
이정표,삼각점,안내판등이 있다 19/25
너무 어둡고 야간산행은 항상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추석연휴라 보름달을 등지고 난생처음 산행을 해본다
지형지물 을 이용한 산행도 큰도움도 되고 하늘을 보면 훤하고 등뒤에는 보름달이 우리부자 대간길을 인도한다
이쯤하면 전망대도 보여야 하는데 어둡고 나무는 계속 우리키를 넘기에
그냥 앞만보고 전진한다 19/35
어두워 중간중간 인증을
반복해서 남긴다
이곳 코스는 야생화 천국이다 정말 많다
그러나 꽃을 인증하고 싶지만 모두가 귀찮다 19/50
여기가 전망대 인가보다 포토포인트다 운무와 보름달 너무 장관이다
어두워서 카메라에 나오지 않아 무척 서운하다 정말 이곳 전망대는 쥑인다 그러나 그외는 전망이 없다
보름달과 운무 그리고 높은산등
사진에 보이지 않아 너무 아쉽고 약간의 보름달이 점으로 보인다
포토포인트 역시 어둡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장관은 달빛에 물들어 버린 자연에 흠뻑 빠져
우리를 잠시 이곳에서 머물게 한다 943m봉
허공에 인증샷만 난발했다
우린 오르고 내리기를 계속 반복하며 산행을 이어가고 주변은 오늘도 여지없이 멧돼지 들이 여기저기 초토화 를 만들어 놓았다
얼마쯤 갔을까 우측나무에 하얀 보름달이 떠있다 무의식적 으로 노루궁뎅이 버섯이다 내키 높이에 너무너무 예쁘게 참나무와 함께
달려있다 인증샷을 하고 따와야 하는데 너무 흥분하다보니 그냥 손으로 췌취 하는데 정말 부드럽고 향이 좋다 20/15 노루궁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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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기 현상의 주체가 되는 전하(電荷)나 전기에너지.
[개설]
물체에 전기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 곧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에너지의 한 형태를 말한다. 전기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현대에서의 전기는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생활 활용적인 측면에서의 관심으로 많이 바뀌었다. 좀 더 편리한 전기의 이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기가 갖고 있는 속성으로 인한 한계를 많이 극복하는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변천]
강릉지역에서 전기사업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의 일이다. 1925년 9월에 강릉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어 1926년에 허가를 받았다. 1929년 4월에 강릉발전소가 설립되었는데 원동력 80마력의 석유엔진으로 작동되는 64㎾짜리 발전기가 설치되었다. 위치는 강릉의 구 한국전력공사 강릉지점 자리였다. 1929년 12월 10일부터 강릉시내에 전기공급이 개시되었다. 1931년 7월부터는 경포면, 연곡면, 사천면, 주문진읍에도 전기공급이 시작되었다. 1933년 7월에는 전력 생산설비를 증설하여 총 305마력으로 늘어났다. 1934년 12월에 삼척출장소를 개설하여 100마력짜리 발전기를 설치하였다. 이어서 1937년 3월에는 울진출장소를 개설하여 울진읍에 560등의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이 해 12월에 묵호읍과 북평읍에도 전기공급을 시작하였다.
이후 일본의 전력통제계획으로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군소업체를 통폐합함에 따라 강릉전기주식회사도 남선전기주식회사에 합병되어 소멸되었다. 이후 1961년에 단일로 통합되어 지금의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한국전력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해방 후 북한이 남한으로 보내던 전기를 끊은 것은 1948년 5월 14일이었다. 이후 전력난으로 인한 제한 송전은 1964년 해제될 때까지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정부는 급하게 화력발전소를 원조자금으로 건설하였다.
영동지역에서는 1956년에 무연탄을 주연료로 하는 삼척화력[25MW]이 건설되었고, 1963년에 삼척 2호기(30MW)가 추가 건설되었다. 이후 영동화력발전소가 제1기가 1973년에, 제2기가 1979년에 건설되어 32만 5천㎾의 설비로써 오랫동안 이 지역의 전기공급을 맡아왔다. 그리고 강릉수력발전소가 1991년에 건설되어 8만 2천㎾의 용량으로 일시 공급하던 중 발전 방류수의 수질문제로 인한 남대천의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어 생산을 중단하고 있는 상태이다. 2006년 9월 양양에 양수발전소가 준공되어 영동 지역의 전기사용에는 어려움이 해소되었다.
전국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발전설비는 1961년 36만 7천㎾에서 2003년 말 현재 5,600만 3천㎾로 현격하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구조를 살펴보면, 화력이 아직도 50%를 차지하고 있어 가장 높으며, 원자력이 45%, 수력은 4%에 그치고 있으며,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단 1%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들의 경제적인 여건이나 앞으로의 환경을 고려할 때, 수력과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크게 높여나가는 것이 큰 과제라 생각된다.
[현황]
강릉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2009년에 2,201,865㎾이었으며, 사용량 2,199,698㎿h이었다.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용도별 전기사용을 살펴보면, 서비스업이 45.4% 산업용이 36.5%씩을 차지하고 있고, 주택용이 12.9% 그리고 공공용이 나머지인 5.1%를 차지하였다. 산업용 36.5% 가운데서는 제조업이 33.9%, 농림수산업이 2.4% 그리고 광업이 0.2%를 차지하였다. 제조업 가운데서는 비금속광물제조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