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11-27 20:26:29
118차 정기산행기(가리산)
*. 일시 : 2006. 11. 25(토)
*. 코스 : 홍천 가리산 휴양림 - 합수곡 - 가삽고개 - 정상 - 샘터 - 무쇠말재 - 합수곡 - 휴양림
*. 참가 : 문수(대장), 곰식, 상국, 민영, 광열, 병욱, 덕영(7명)
1.
정확히는 몰라도 약 한 달 전, 인터넷에 ‘가을에 갈만한 산’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가리산이 떴었다. ‘가리산? 얼마 전에 다녀온 가리왕산이 아니고?’ 의구심이 생겼지만 정말 가리산이라고 따로 있었다.
‘나중에 여길 한 번 가봐?’
산행 예정지에 가리산을 적어둔 게 본래는 민주지산을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산행대장 문수의 의견을 따라 결국 가리산에 가게 되었다.
홍천이라... 이동하는 거리가 제법 된다. 한 달 전, 명성산에서 발을 삐끗한 곰식이까지 따라간다고 고집을(?) 부려 출발 하루전날 저녁에야 마침내 7명의 선수가 정해지고, 문수와 민영이가 차를 내기로 했다.
2.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이것저것 챙기고 느긋하게 집을 나서는데 문수차가 다가온다. 아직 약속시간 10분 넘게 남았는데? 수원에서 여기까지 15분 만에 왔다고 한다. 역시 미금역에서 약속시간보다 10여분 일찍 나와 서성대던 곰식이를 태우고 송파팀과 만나기로 한 양수리쪽으로 달려간다. 정확히 8시 30분, 양평휴게소에서 만나 무전기를 한 개 뒷차에 건네주고 홍천을 향해 출발, 뒷좌석에 앉은 곰식이가 무전기를 들고 뭐라뭐라 조잘대지만 저쪽에선 응답이 없다. 나중에 알고 본즉 싸이클이 다르게 맞춰진 모양. 다행이다. 그 말 많은 곰식이가 무전기를 들고 한 시간 넘게 설쳐대었다면 아마 나는 산행에 낙오했을지도. 크크.
3.
가리산 휴양림, 입장료가 두당 2,000원이면 제법 비싸다. 주차비까지 2만원을 지출하고 10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대장 문수가 안내판 앞에서 코스를 설명하면서 가리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 덧붙인다.
“저기 저 꼭대기, 누구는 여자 가슴처럼 생겼다지만 저게 볏단을 쌓아둔 ‘가리’처럼 보인대서 붙여진 이름이고, 여기서 보면 봉우리가 2갠데 정작 가보면 3개야. 그 봉우리 타는 게 제법 위험하다하니 다들 조심하자고.”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데 이 가뭄에도 물소리가 상쾌하게 들린다. 참나무 낙엽이 많이 쌓인 비탈길은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군데군데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쭉쭉 뻗은 낙엽송이라는 나무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그 낙엽송 나무가 아직 윗부분은 노랗게 잎을 달고 있었지만 아래쪽에서 이미 떨어진 낙엽은 마치 카펫처럼 푹신한 감촉을 줘 걷기 좋다며 모두들 산을 잘 골랐다고 문수한테 고맙다고 한다.
민영이가 보약을 먹었는지 펄펄 날아다닌다. 뒷짐을 지고 자세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선두에서 쭉쭉 뻗어나간다. 어젯밤, 아니 밤 12시 너머까지 음주를 했던 덕영이는 숨소리에 홍시 냄새가 묻어난다. 그래도 이정도 코스는 거뜬히 해내는 체력, 정말 엄청 변했다.
능선에 올라서니 저 아래 안내판엔 가삽고개라 되어있었는데 정작 팻말엔 홍천고개라고 적혀있다. 사진 좋아하는 곰식이부터 한 장 찍어주고 몇 장 더 찍다보니 앞 팀은 저 멀리 가고 없다.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무전기를 통해 연락이 온다.
거기서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곰식이는 빵을 먹고 가자고 했지만 문수가 말린다.
“저 코스는 위험한 곳이니 여기서 배를 채우지 말고 일단 정상을 벗어나 좀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 거기서 점심을 먹자.”
모두들 위험한 바위를 타야한다니 호흡을 가다듬는다.
정말 바위는 위험해보였다. 하지만 쇠파이프로 난간을 설치해두고 높은 바위는 군데군데 발판을 하나씩 달아두었기에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군데군데 덜 녹은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2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올라왔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바로 1봉으로 넘어갈 수 있었으나 여기까지 왔는데 봉우리는 다 보고 가야한다는 문수의 말에 다시 3봉을 가고, 아찔한 바위 끝에서 사진을 찍었다.
얼마나 높은지 떨어지면 바로 사망이다. 다리를 덜덜 떨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방이 툭 터진 조망, 게다가 멀리 소양호도 보이고 정말 전망이 좋았다.
이젠 1봉, 정상석 앞에서 출석부용 사진을 찍고 한참 구경을 한다. 우리가 올라온 길도 보인다.
벗은 나무들이 쭉쭉 뻗었는데 군데군데 노란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곳을 보고 광열이가 내 소매를 끌어당긴다.
“정말 좋네, 저게... 놀놀한 기 진짜 멋있다. 저거도 사진 찍어봐라.”
놀놀한거? 그 참, 내야 금방 알아들었지만 참 오랜만에 듣는 부산 사투리다.
정말 놀놀한 것도 좋고, 나뭇잎 다 떨어진 나목들로 푸근하게 보이는 가리산 전체가 다 좋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눈이 쌓였는지 꼭대기가 하얗다. 12월 말에는 태백산에 가서 눈을 실컷 보고오자고 약속을 한다.
4.
좀 내려오니 양지바른 곳 큰 바위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진다. 나뭇잎을 바위틈에 끼워두어 물 받기 좋게 해두었고 아래에는 바가지까지 두었다. 물맛도 좋다.
둘러앉아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병욱이는 늘 준비해 오는 음식이 많다. 행여나 조금이라도 남을까봐 걱정이다. 남겨 가면 다시는 안 싸주니까 억지로라도 다 먹고 가는 게 우리들의 불문율, 결국 모두 다 처리하니 배가 너무 부르다.
앉았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기본 매너, 제일 졸병인 광열이가 모든 쓰레기를 봉지에 담는데 막걸리 통이 부피를 잡아먹는지 배낭에 잘 안 들어간다. 다시 꺼내는 걸 보고,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산에서 고참인 덕영이가 광열이더러 “꾸개라!”라고 외치면서 발로 밟는 시범을 보인다.
“그래, 꾸개라! 그 얼마나 알아듣기 쉽고 간편한 말이고? 이쪽 사람들은 와 그걸 못 알아 듣노?”
그래놓고 아까 그 ‘놀놀한 것’부터 시작해서 ‘디비라’, ‘공깄나? 안 공깄나?’ 등등 사투리를 가지고 또 한참을 놀았다.
천천히 한 시간을 내려오니 산행 시작한지 4시간 반 만에 휴양림에 닿는다. 아까 올라갈 때 봐두었던 지압코스에서 신을 벗고 맨발로 걸어본다.
처음 해보는 덕영이와 문수가 발아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 깔깔대며 즐겁게 웃고, 하도 우리가 웃으니까 신 벗기가 귀찮았던 민영이와 곰식이도 사진 한 장 찍어 달랜다. 발 안나오게 해준다고 마치 지압하는 것처럼 웃으라 했더니 저렇게 연기를 잘 한다.
뒤에 온 병욱이와 광열이도 동참했는데 병욱이 폼이 마치 고래 잡고 오는 아이처럼 다리를 쩍 벌리고 엉거주춤 오는 바람에 많이도 웃었다.
온천을 하고 올까했지만 다수의 의견이 일단 서울까지 가잔다. 마침 혼자 삼각산에 가 있던 박대장한테서 산행 잘 하고 있느냐는 연락이 온 김에 나중에 서울에서 하산주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달려달려 방이동 사거리에 도착, 숯불갈비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술자리에서 누구보다 마음씨 좋아 술과 담배가 헤픈(?) 병욱이 놀려먹는다고 다들 즐겁고, 오늘은 1차만 하고 헤어지는 걸로 했다.
“한잔 더 할래?” 그런 말 꺼내면 ‘펭’이라는 칭호를 받고 술값을 그 사람이 계산한다는 룰을 정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들으니 송파팀은 늦게 합류한 박대장이 호프를 쏘았다네?
착한 곰, 곰식이가 대리운전을 하고 집에 오니 8시 40분. 적당한 취기에 적당한 다리의 피로, 좋은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