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봅시다 / 이시향]
몇 달 동안
일자리 구하지 못한 아빠지만,
여전히 바쁘다.
벚나무에 매달린 빨간 버찌
찍고 와서 자랑하고
또, 하루는
초록 매실도 찍어오고
주렁주렁 매달린 풋복숭아도
찍어서 보여준다.
집에서
한숨만 주렁주렁 매단 엄마
오늘도 노랗게 익은 살구 찍어 와서
세월 빠르다며 보여주는 아빠에게
한마디 한다.
살구 봅시다.
살구!
l해설l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전해지는 여러 가지 특징, 즉 형질(동식물의 모양 · 크기 · 성질 등의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 내는 인자로 유전 정보의 단위를 ‘유전자’라고 합니다. 이시향 선생님의 신작시 “살구 봅시다”를 읽어 보며 시인도 역시 유전자의 영향이 있다는 가설이 들어맞는 시입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남편의 의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역시 경제적인 면인데 아마 잠시 공백기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뭔가 활동하는 척 경제적인 면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과일들을 들이밀며 그의 존재를 확인 하려 하지만...
시적 감정이 풍부한 어머니의 한마디 “살구 봅시다”는 지금 제철인 “살구”를 “살고”에 빚대어 한 마디 톡 쏘는데... 이런 한 마디를 아무 것도 없이 사각의 링 위에서 치고받는 권투에서는 럭키 펀치라 합니다. 한 방에 상대를 넉 다운 시키는 주먹이라는 뜻이죠! 어퍼컷인지 라이트 훅인지 어머니의 한 방이 들어간 이시향 선생님의 한 편 詩 감상해 보이소~
-맹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