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온갖 찬미를 마땅히 받으시리이다.”(복음환호송)
교회는 오늘을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낳아 기르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로 지냅니다. 이 같은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 평생을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아 기르신 분. 사랑하는 아들,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세상에 낳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이 모든 이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서 처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전례의 말씀은 바로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이르기까지의 예수님의 족보를 구구절절이 밝히면서 처녀였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게 된 경위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형식의 다소 긴 이 족보의 내용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고, 굳이 이 족보의 내용이 성경, 그것도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오 복음서의 가장 첫 장에 담긴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에프라타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태어날 것임을 예언하며 그 아기의 탄생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가능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족보 내용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의 배경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두고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을 통해 그 모든 일련의 일들이 모두 하느님의 능력, 곧 거룩한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요셉에게 마지막으로 구약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 안의 임마누엘 하느님, 곧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일이 가능해지게 된 것임을 다음의 말로 설명합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신 말씀(이사 7,14)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2-23)
오늘 독서의 미카 예언자와 오늘 복음에 등장한 천사 모두 공통되게 임마누엘 하느님을 이야기합니다. 임마누엘 하느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앉거나 서거나 언제나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그 어느 때나 우리의 모든 것을 헤아리시는 분이시며 정녕 말이 우리의 혀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이미 계시며,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가 새벽 놀의 날개를 달아 바다 맨 끝에 자리 잡는다 해도 거기에서도 하느님의 손이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와 언제나 항상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 바로 그 하느님이 바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 바로 옆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우리와 함께 고통 받으시며 죄로 고통 받는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기 위해 이 세상에 오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함의 가장 극한의 선택이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선택하신 이가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의 순명을 통해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바로 그 기적을 통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그 실존의 절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 오늘 복음의 그 지루한 족보의 내용은 바로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제시됩니다.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 그 역사의 장구한 순간 그 어느 때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은 때가 단 한순간도 없었으며 그 함께 함의 가장 절정의 모습이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성모님을 가리키는 여러 칭호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거룩하신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 하늘의 고매하신 여왕 성모 마리아,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 그리고 바다의 찬란한 샛별이신 성모 마리아. 이 가운데 가장 마지막 칭호인 바다의 찬란한 샛별이라는 성모님의 칭호는 성모님 그 분이 망망대해 바다를 떠도는 배가 하늘 위에 떠있는 찬란한 샛별이 비추는 빛을 통해 좌표를 잡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좌표를 잡을 수 있듯이, 우리 역시 우리 인생이라는 항로에 성모님 그 분이 우리 삶의 방향과 좌표가 되어 주시는 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성모님 그 분을 통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찾아 올바른 항로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그 분을 바라보며 언제나 그 분으로 빛나는 별빛을 통해 하느님께로 올바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또한 성모님의 믿음을 본받아 성모님과 같이 믿음의 순종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세,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그 분이 낳으셨네.”(입당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