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거짓을 버리라는 말씀은 곧 진리가 아닌 거짓은 멀리 떼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돕기 위해 그와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 한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서만 거룩해지고
하늘에 속한 거룩한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지체의식을 갖습니다.
진리를 알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맛본 사람은 거짓말이 싫어집니다.
만약 손이 발에게 거짓말을 하면 당장 자신의 몸이 곤란해 질것입니다.
교회에서 먹는 것이나 다른 용무로 대화를 하면 밀거래한다고 놀립니다.
참 교회는 육신을 위해 유행과 건강이나 음식 등의 정보를 나누는 곳이
아니고 오직 진리로 서로 유익이 되도록 피차 안위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허락이 된 언어는 오직 한 가지 진리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오르기제스데)은 열망하다 또는 무엇에 빠지다는 뜻입니다.
곧 의분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의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방송 채널을 통해 욕까지 해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령
의분이라 할지라도 죄를 짓지 않도록 화를 풀어야 합니다. 화를 푸는 회복력도
성령 안에서 진리의 스위치를 켤 수 없으면 긴 시간 끙끙대다가 풀게 됩니다.
분을 품는 것은 옆으로 샜다는 말인데 바로 감정적인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의 기운이 새는 거죠. 따라서 해가 떨어지도록 하지 말라입니다.
마음속의 빛이 어두워지도록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드려 육신이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자리로 옮기셨는데 분을 내다가
다시 육신의 자리로 끌려가서 오랫동안 분노와 적개심을 가진다면 주의 자비를
얻은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윽박지르다 그만 옥에 갇히게 되는 꼴이 됩니다(마18:34)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받은 적이 없어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용서를 모르거나 일용할 생명의 양식을 구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약골이기 때문일 겁니다. 생각보다 이런 약골이 많습니다.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이는 마귀와 논쟁할 감을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신문지상에 서로 이편저편 옥신각신 치고받고 논쟁하는 것을 보세요.
교회가 원형교회를 이루지 못하므로 그 기준으로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라는
이름을 붙여 반대편에서 서로 치고받는 추태를 보이므로 사회가 분열이 됩니다.
노회 총회 등을 보면 편을 갈라 상대에 대해 화를 품고 있으므로 마귀가
공격할 틈을 주므로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치고받으니 사회도 따라갑니다.
세상을 향해 교회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28절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적질은 몰래 가져가는 것입니다.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하라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영육 간에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양식(구제)이 있도록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
도둑질은 남의 것을 몰래 가져오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논에 물꼬를
슬쩍 돌려 자기 논에 물을 대듯 물질의 게임에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저질적인 설교도 포함됩니다. 말이면 다 말인가? 듣기도
거북한 메시지는 내 뱉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말 곧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말씀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듣는 자들에게 은혜가 되고
성도의 성장에 유익이 되는 말씀을 전하라는 의미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 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그 거룩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안타깝게 하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반대편에 버티고 육신의
예법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려 하므로 성령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붙잡고 계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보증인이 바로 성령이시므로 그 분이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31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모든 악독은 쓴 것, 노함과 분을 냄, 그리고 떠드는 것입니다.
비방(evil speaking)을 모든 악함과 함께 제거해 버리라고 합니다.
떼어내서 버리라고 권합니다. 이런 것들이 성령님을 자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싫어져야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된 겁니다.
32절 “서로 인자(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인자하라 2) 불쌍히 여기라 3) 서로 용서하라(용납)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납하신 것 같이 하라입니다.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직분을 주신 다음 그 직분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자신이 신령한 복을 다운 받는 자리에
서 있는지 파악하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에 다다르는 방법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지 항상 점검을 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가 크고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