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차
대화, 이야기를 주고받자
1. 대화어법의 전통
『시경』에 대화법을 사용한 시가 보입니다. 인용할 시는 정풍의 시입니다. 정풍은 정나라에서 불린 노래입니다. 『논어』에 정나라에는 음란한 노래가 많다고 했습니다. 『시경』에서도 정풍을 음란한 시로 해석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경』에 음란하고 난잡한 노래를 실었을 이유가 없고, 『시경』에 실린 정풍은 음란한 시로 볼 수 없으며,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¹²⁸⁾
진수와 유수가 출렁거리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꽃송이를 들고 있다
여자가 말을 한다 “가 보았나요?”
남자가 대답한다 “그럼 가 보았지요.”
“또 한 번 가볼까요? 유수 저쪽에
거긴 참으로 넓고 아름답지요.”
사내와 여자 사이는 이렇게 무르익어
그래서 헤어질 때는 꽃을 선물한다.
진수와 유수가 맑게 흐르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왁자지껄 모여든다
여자가 말을 건다 “가보았어요?”
남자가 대답한다 “그럼 가 보았지요.”
“또 한 번 가볼까요? 유수 저쪽에
거긴 참으로 넓고 아름답지요."
사내와 여자 사이는 이렇게 무르익어
그래서 헤어질 때는 꽃을 선물한다.
-「진수와 유수」 전문¹²⁹⁾
이 시는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하는 방법을 채택하였습니다. 남녀가 강가에 모여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남녀의 시점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경』의 「여자의 속삭임」 역시 ”여자가 속삭인다 ‘닭이 우네요’/사내가 말을 한다 ‘아직 어두운 걸’”로 시작되는 대화 형식의 시입니다.
중국의 왕유는 「춘계문답」이라는 시에서 “봄철 계수나무에게 묻노니, 복숭아꽃 자두꽃은 지금 활짝 피었고 봄빛은 이르는 곳마다 가득한데 너는 어찌하여 홀로 꽃이 없느냐?/ 봄철 계수나무가 답하길, 춘화가 얼마나 오래가리요/ 바람에 서리가 흩날릴 때/ 홀로 빼어남을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하고 문답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봄꽃은 소인이 득세하여 부귀를 누리는 것을, 계수나무는 다른 초목들이 모두 시드는 가을에 꽃이 피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선비가 궁지에 있을지라도 절조를 굽히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규보는 신라 이래 오랜 인습을 지켜온 문벌 귀족의 권력을 공격하고 특권의식, 사대의식, 형식주의, 보수적 문학관을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 문인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시마(詩魔 : 시의 마귀)에 걸린 광객(狂客 : 미친 손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규보는 술 마시고 시를 짓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인로를 중심으로 하는 불투명하고 위선적인 지식인인 죽림칠현을 공격하였습니다. 죽림칠현은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의 가문에다 공부를 잘하던 보수적 엘리트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관직을 바라면서도 그러지 않은 척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기생과 놀고 방약무인하여 민중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계급이었습니다. 벼슬살이와 시 창작을 적극적으로 한 이규보의 재미있는 시 한 편을 보겠습니다.
牡丹含露眞珠顆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美人折得前過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含笑問郎君 살짝 웃음 띠고 낭군에게 물었다
花强妾貌强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檀郎故相戲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말했다
强道花枝好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美人妬花勝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踏破花枝道 꽃을 밟아 뭉개며 말했다
花若勝於妾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今宵花同宿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절화행(折花行)」전문
여성 주인공의 기지가 엿보이는 시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시가 전개됩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꽃이 더 예쁘다는 말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상황입니다.¹³⁰⁾ 이규보가 쓴 이 재미있는 대화체의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웃음을 터뜨릴 것입니다. 유교는 물론이고 불교경전까지 외울 정도로 두루두루 공부를 많이 한 상당히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이규보라는 선비의 시입니다. 이규보는 시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흥을 느껴 들뜨고, 다른 사람도 들뜨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쌍하도다, 가엾은 카로리나.
그 모습 세월이 지나면 잊으리.
상여가 오는 것을 보고
안타까이 사람들은 말한다.
신부-혼자 찬미가 부르고,
의사-지금이사 아무 괴로움도 없도다.
아버지-가슴을 저미는 슬픔이여!
어머니-나도 어서 죽을 지어다.
남자-좋은 장례식이군.
여자-정말로 미인이었다.
노파-후생이 부러웁다.
”고히 편안히 가시라“고 몇 사람 말하고,
”오! 잘가거라“며 남은 사람들 말한다.
철학자만이-한 사람 줄고,
시인은---천사 또 하나 늘었다고 말한다.
-라몬 드 캄포아모르, 「사람들 이모저모-딸을 여읜 여동생에게」전문
라몬드 캄포아모르(1817~1901)는 정치가로 활약한 박학다재한 스페인의 시인입니다. 그의 대화적 형식은 깊은 여음을 갖지 못하였지만 그 재치는 스페인의 근대시가 일어나기 전에 인기를 독점하였다고 합니다. 위 시의 부제를 보면 시인의 여동생 딸 카로리나가 죽은 모양입니다. 번역문이라 좀 애매하지만 여동생의 이름이 카로리나일 수도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여러 사람이 모였습니다. 모인 신부, 의사, 아버지, 어머니, 남자, 여자, 노파, 철학자, 시인은 장례식에서 한마디씩 합니다. 역시 시인이 최종적으로 ”천사가 하나 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대화법을 사용한 재치가 넘치는 시입니다.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대화를 통하여 지혜를 배우듯 농사에서도 대화를 통하여 농사의 지혜가 학습되는 모양입니다.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새가 날아와서 씨째로 낱낱 쪼아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벌레가 기어와 잎째로 슬슬 갉아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나머지 내 먹을 만큼만 남는다.
-하종오,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전문
묻고 대답하는 대화체의 시입니다. 어린아이로 추측되는 숨어 있는 화자는 고정된 질문을 하고 있고, 어른 혹은 지혜로운 자로 추정되는 청자의 대답이 점점 진전되는 형식의 시입니다. 생태주의적 사상을 배경에 깔고 있습니다.
시에서 여러 사람이 등장하여 각자가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은 전달이 화자를 지향해서 언어의 정감적 기능이 우세해지는 경우에 해당되고, 2인칭 시점은 전달이 청자를 향해 언어의 사동적 기능이 우세합니다. 3인칭 시점은 언어의 지시적 기능이 우세하여 객관화를 유지하는데 적합합니다. 시 속에 여러 가지 시점을 사용하면서 시가 진행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를 다중 시점이라고 하는데요. 시 속에서 1인칭과 2인칭, 1인칭과 3인칭 시점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다중 시점은 현대시의 새로운 기법으로 복잡하고 개인화 되어가는 세태를 반영하기에 알맞은 형식입니다.¹³¹⁾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 놓은 거여
- 이정록, 「의자」 전문
어머니가 ‘큰애’에게 하는 당부를 대화체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의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관념의 상징입니다. 관념적 당부를 의자라는 사물로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비유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의자를 놓는 일은 사소한 것이나 인간의 안녕과 안전, 세대 계승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
128) 이기동 역해, 『시경강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4, 193쪽 참조.
129) 이기동역해, 231쪽.
130) 공광규,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푸른사상, 2006, 32쪽 참조.
131) 이지엽, 379~386쪽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1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