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책 읽기 소감】
시와 수필과 그림과… ‘그리고 사랑’
― 우희정의 신간 시화집 《그리고, 그리다》 讀後記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시와 수필과 음악과』라는 문학 프로그램이 있었다. 1990년대 현직 경찰관 시절이었다.
야간 비상근무가 잦았던 현직 경찰관으로서 밤 11시 10분부터 자정까지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없었다. 필자의 시와 수필이 방송되는 날은 집사람이 녹음해 주었다.
▲ 즐겨 듣던 라디오 문학 프로그램 - KBS 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방송됐던 필자의 시와 수필을 집사람이 녹음해 주었다. 필자 소장용 테이프와 CD.(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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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세 번 다시 들어도 좋은 방송 녹음 테이프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등단했다.
갑자기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생각난 것은 우희정 수필가가 보내준 저서 덕분이다. 《그리고, 그리다》 우희정 지음.
◆ 저자 우희정 :
수필가, 계간 문예지 《문학시대》 발행인, 도서출판 《소소리》 대표, 한국수필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 우희정 수필가가 친필 서명하여 보내준 신간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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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집’이라는 표기도 없다. 그렇다고 ‘수필집’이나 ‘산문집’이라는 표기도 없다. 저자 이름과 책 제목만 있을 뿐.
그래서 떠오른 것이 과거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다. 『시와 수필과 음악과』. ‘과’라는 글자 뒤에 따라붙어야 할 수식어가 없다.
그렇다. 생략해도 좋은 것이 문학의 멋이다. 예술이다.
우희정 수필가의 신간 저서가 그랬다. 《그리고, 그리다》 . 무엇을? 어떻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는 짐작한다. 그게 문학이고 예술이다.
『시와 수필과 음악과』 역시 ‘과’에서 멈췄다.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한 독자의 소감 제목은 무릎을 탁 쳐도 좋을 만큼 신선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시와 수필과 그림과… 그리고 사랑》이다.
▲ 금실 좋았던 성춘복 · 우희정 부부 문인(그림=저자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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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화가였던 남편이 그림을 그렸다. 고인이 남긴 그림에 수필가 아내가 시와 수필을 썼다.
고인은 그 유명한 성춘복(成春福) 시인(1936.3.14. ~2024.5.22.)이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니, ‘대한민국 문인’이라면 그분의 함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성춘복 시인이 생시에 부인인 우희정 수필가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현장 스케치한 그림. 한두 장이 아니다.
시인이 돌아가신 뒤 아내인 우희정 수필가가 남편의 그림에 시어(詩語)로 된 해설을 붙여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 시인 남편은 여행기(旅行記)를 그림으로 남기고, 수필가 아내는 거기에 시와 수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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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그리다>라는 서문의 제목에도 저술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이자 화가인 남편과 동행하면서 굳이 카메라로 인상적인 풍광을 잡지 않았다.
카메라에 담지 않아도 추억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겼다. 시인이자 화가인 남편이 스케치한 인상 깊은 현장이 여행기(旅行記)로 남았다.
인화된 사진보다 문학적이다. 여행하면서 스케치한 고인의 그림이 소중한 사진첩이 됐다.
아내인 우희정 수필가의 섬세한 감성에 의해 시인 남편이 남긴 그림은 첨단 미디어 영상 시대에 고풍적인 앨범으로 태어났다.
▲ 책의 표지화로 삼은 본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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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혼자 운전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죽이 맞는 동지가 생겼다.』
시인이자 화가인 성춘복 시인을 처음 만나던 시절을 우희정 수필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밝혔다. 부부의 인연이자 작가의 인연이요, 출판인으로서의 동반자였다.
『만년필 하나로 손바닥만 한 종이에 함께 본 풍광이 살아나는 게 신기해서 나는 옆에서 메모를 했다.』
<저자의 말>이 책의 잉태(孕胎) 과정을 설명한다.
『20여 년 동안 그렇게 동행해 주던 그가 어느 날 홀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시인 남편이 먼 길 여행을 떠났지만, 아내인 우희정 수필가는 외롭지 않다. 남편의 사랑이 그림 속에서 고스란히 재생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남편의 환생이다.
『1주기를 맞아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들과 그가 안식에 든 묘원에 소풍을 가기로 했다. 그날 그의 체취가 담긴 선물을 하고 싶어 책으로 묶는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얼마나 부러운 문사(文士) 부부의 멋스러운 작품 활동인가.
▲ 밤에도 빛나는 우희정 수필가의 신간 저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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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그리고’는 시인 남편이 남긴 그림을 뜻하고, 책의 나머지 제목 ‘그리다’는 수필가 아내의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는 어느 쪽에 더 큰 무게를 둘까? ‘그리고’일까? ‘그리다’일까?
하지만 그 어느 독자도 무게를 저울추로 달 수 없다. ‘사랑의 무게’를 저울로 달 수 없듯이. ■
2025. 5. 10.
윤승원 讀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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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산에서 이양자 교수님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에서 저자 우희정 수필가 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05.12. 06:47
참으로 멋지고 훌륭한 신간 책 소개의 글을 읽었습니다. 윤 선생이 글 쓰는 모습을 아련히 생각하면서 선망의 마음을 가집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문단에서 훌륭한 인품으로 존경받았던 고 성춘복 시인(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은 그림도 잘 그렸지요. 부인인 우희정 수필가와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계간 문예지도 펴냈습니다. 금실 좋았던 두 부부의 모습이 신간 서적의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이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주시니 책을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카페 댓글
◆ 김영훈(작가, 대전문총 명예회장) 2025.5.13. 00:54
우희정 수필집을 받고 우 수필가를 추억하는 내용의 독후기를 쓰셨군요,
고 성춘복 문협 이사장님의 미망인이신 우 수필가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춘복 이사장님은 잡지 <문학시대>의 출판인이기도 한데,
우리 <대전문학시대>와는 우여곡절이 있는 분이라
본인이 대전문인총연합회장 시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재봉 시인이 등단한 잡지여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윤승원 수필가님을 통해 그의 배우자 우희정 수필가를 다시 알게 됩니다.
한 시대를 살면서 문학으로 자기 삶을 구현하고 사는 우리로서는 윤승원 님의 독후기를 통해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저자가 정성껏 서명하여 보내준 책을 받으면 나름대로 소중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인연의 고리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남달리 인상 깊은 대목을 발견하면 독후기를 쓰지요. 우희정 수필가는 그동안 저에게 여러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우희정 수필가와 성춘복 시인이 운영하는 계간 문예지 회원도 아닌데 책을 받습니다. 부부 문인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보내주시는 작가의 신간 저서를 받으면 독후기 형식의 답장을 보내드리지요. 김영훈 회장님께서 저의 독후기를 세밀하게 살펴주시고, 고 성춘복 시인과의 과거사까지 들여주시니 문단의 인연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졸고 독후기를 따뜻한 눈길로 살펴주시고 귀한 소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