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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제, 경제현실, 그리고 경제학 원문보기 글쓴이: 시나브로
매우 긴 글이라는 점을 사전에 양해구합니다.^^;
정부가 지난해 9.19대책 가운데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을 매우 빠르게 실천에 옮기는군요. 저는 그린벨트는 무조건 묶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주택공급이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일시에 푸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린벨트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의 제약을 가져온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수도권 지역의 산림을 유지하는 기본 인프라이기도 합니다. 재산권 행사의 제약으로 해당 지역 주민이 입는 피해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적절하게 보상하는 구조를 만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 없이 ‘공익을 위한 것이니 네가 희생하라’는 식이니 그린벨트 주민들은 열 받는 것이지요. 정부가 재산권 행사 제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푼다고 한다면 이번에 풀리는 지역과 안 풀리는 지역 주민들의 형평성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요. 결국 그것은 핑계일 뿐 결국 싼 집을 공급한다는 게 주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렴한 주택 공급이라는 미명 하에 그린벨트를 일정한 사회적 합의 없이 이런 식으로 확 풀어도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린벨트도 사회적 조건이 변하면 필요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벨트 지역을 포함한 전체 지역의 공간구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치밀한 계획이 수반돼야 합니다. 오직 주택 공급이라는 목적 때문에 다른 도시계획상의 고려는 없이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을 공급해야 할 긴급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지금 그러한 긴박성이 있기는커녕 잘못하다간 2010년대 이후 이미 힘이 빠져 있을 주택시장을 더욱 침체로 몰아넣을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시 전체의 공간 구조 계획 측면에서도 한 번 봅시다. 정부가 해제를 추진중인 그린벨트는 서울과 경기도 경계 지역에 많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개발할 때는 서울 시가지가 경기도까지 광역화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하지만 실제 사업은 행정구역 단위로 쪼개져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그런 그린벨트 지역에는 인근 시가지와 전혀 연계되지 않은 주택 단지가 들어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들어서는 주택은 거의 100% 아파트일 것입니다.
주택은 한 번 지어지면 앞으로 최소 30~40년을 살아가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면 30~40년 후 서울과 수도권의 공간구조와 맞물려 개발을 진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린벨트의 개발 계획도 그러한 공간 기획 수립을 거쳐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시계획에 반영해 진행하는 게 옳습니다.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 시카고, 캐나다의 밴쿠버, 호주 멜번 등 선진국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 상하이조차도 우리보다 더 체계적인 공간 기획 및 도시 계획에 따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들 나라는 공간이 넓어서 그렇다고요? 그럼 싱가폴은 어떻습니까? 서울과 같은 고밀도의 조건에서 어떻게 도시 곳곳에 아열대의 녹음과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는 정원도시를 만들어냈을까요? 또 어떻게 시민들의 80%가량이 아무런 집값 걱정 없이 공공주택에서 질 높은 주거 수준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싱가폴은 50년 앞을 내다보고 5년을 계획한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치단체장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멋대로 이리 저리 온 나라를 헤집어놓을까요? 경기도 용인이나 수도권의 각종 뉴타운에서 보는 것처럼 공동체는 깨지고, 도시 기반 인프라는 부족한 가운데, 멋대가리라곤 하나도 없는 아파트 숲만 잔뜩 들어서게 되는 것일까요? 최소 30~50년 동안 우리의 도시 공간을 구성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도시 공간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채워나가도 되는 것일까요? 선진국의 잘 계획된 도시들을 여행해보신 분들은 다 느끼실 겁니다. 왜 우리는 우리 도시를 이렇게 멋있게 만들지 못할까?
지금부터 열심히 바꿔나가도 선진국 도시처럼 멋있고 쾌적한 도시로 만들려면 몇 십년이 걸릴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전체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한 계획은 없이 여전히 개발시대 마냥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 지어대기 바쁘다면 언제 그런 선진 도시들을 따라잡습니까? 수십 년 후에도 대부분 선진국에서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멋대가리 없는 아파트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린벨트를 풀겠다는 정부의 계획에서 그런 근시안적 단견밖에 읽히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지금 같은 식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에 급급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난개발입니다. 도시 공간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주택정책도 경제적, 공간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건전한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드는 한 부분으로서 추진돼야 합니다. 따라서 수도권 주변의 산림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보전할지에 대해서는 치밀한 연구 아래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린벨트 해제는 그런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당시 집권자와 행정부처의 판단에 의해 거의 일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설사 그린벨트 지역의 해제를 통한 개발이 필요하고 하더라도 막무가내로 추진할 게 아닙니다. 쾌적한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기 위해 중장기 도시계획에 반영하고 공공이 제공해야 할 기반시설 설치계획을 수립한 뒤 시기를 조절해 추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린벨트를 해제한 뒤 공급 물량 맞추기에 급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7월 국민임대주택건설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국민임대 주택 공급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이슈가 됐던 판교신도시의 경우 공영개발을 통해 100%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우리 연구소는 주장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 같은 방식의 주택사업이 재무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며 이론적 모델까지 만들어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판교를 로또 투기판으로 만들어 투기세력에게 먹잇감만 제공했습니다. 정부 스스로 벌린 로또 투기판 때문에 판교발 집값 광풍이 일자, 정부는 전량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해제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역의 절반을 분양 물량으로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당시 건교부가 내세운 명분은 ‘판교급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집값은 어땠습니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해당 지역까지 투기가 극성을 부렸음은 물론입니다. 결국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개발이 정부의 단기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나 요동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값을 잡겠다는 단기적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 단위의 주택 사업 추진도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큰 문제를 낳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접 지역이 아무런 연계 없이 추진되는 것이 대표적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서울시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은평뉴타운지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바로 인근에 있는 경기도 고양시 삼송지구에서도 그린벨트를 해제한 뒤 주택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은평뉴타운에서 1만5000호, 삼송지구에서 2만2000호 등 약 3만7000호의 주택이 공급됩니다. 두 지역을 합치면 작은 신도시급 개발이 이뤄지는 셈입니다. 이렇게 인접된 두 지역은 수도권 정비계획 차원에서 사전에 조율돼 추진돼야 했으나, 지자체장의 정치적 욕심과 중앙정부의 방치로 개별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인접한 지역을 개발함에 따라 고려해야 할 도시 기반시설 설치라든가 도시 기능의 연계 및 분화에 대한 고려는 애초부터 들어설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각각 그린벨트만 지어 아파트 물량만 채우는 단시안적 접근에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니 도시 디자인이니, 주거 유형의 다양화라는 등의 주장은 사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린벨트를 풀어 지은 주택 때문에 집값이나 안정됐을까요? 그린벨트 풀어서 저렴한 주택 공급한다는 말을 적어도 이 정권이 한다면 믿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직접 추진했던 은평뉴타운 지역을 예로 들어봅시다. 은평뉴타운 사업지구는 대부분 그린벨트 풀어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평당 토지 보상비가 판교신도시의 평균 3.5배가량 됐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서울과 수도권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라고 보상비가 더 적게 들어갈까요? 더구나 황당하게도 아파트 짓는데, 턴키방식(길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상위 재벌건설업체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게 해주는 발주방식입니다)으로 발주를 해서 엄청난 고분양가 만들었습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이 똥바가지 뒤집어썼지만,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사태로 주변 집값 들썩이게 만들었죠. 은평뉴타운 인접 서대문구나 은평구의 아파트 가격이 평당 700만~800만원이던 시세가 1200만~1300만원으로 수식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린벨트 지역에 짓는다는 보금자리 주택도 모두 턴키 방식으로 짓는다고 하는군요. 그러면 보금자리 주택 가격이 정말 낮아질까요?
그리고 사전 치밀한 도시계획 없이 그린벨트 풀어서 급하게 만들었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도로나 학교가 제대로 확보 안 돼 언론에서 욕 엄청 먹었죠? 지금 입주 초기여서 그렇지 뉴타운 전체 세대가 다 입주하면 교통대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분양가심의위원회 가동해 분양가를 평균 12%정도 낮춘 덕에 분양은 다 됐는데, 지금 입주율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생활 인프라가 없어서 주민들 불만 대단하고요. 물론, 뉴타운 사업으로 추진됐다는 특수성을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지만, 그린벨트 풀어서 집값을 낮췄습니까? 그렇다고 도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주택단지가 들어섰나요? 사람은 그 사람이 해온 과거 행적을 통해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사기꾼이 어느날 갑자기 ‘난 사람 안 속여’ 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겠습니까?
저렴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저는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한심하다 못해 분노까지 느낍니다. 정말 ‘건설족’의 수괴 출신인 대통령이 집권한 정권 아래에서 ‘건설족’을 대변하기 급급한 국토해양부 아니랄까봐 뻔뻔스럽고 기만적이며 부도덕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무능함의 극치라고 해야 할까요?
수도권의 주택은 이미 실질적으로 공급 초과 상태입니다. 이미 김광수소장님께서 ‘한국경제의 도전’에서 이를 설명하셨습니다. 또 미분양물량이 급증하고 아파트 입주율이 낮아지는 등 공급 초과 상태임을 보여주는 징후는 현실 속에서도 이미 매우 뚜렷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 그린벨트를 풀어서 지어지는 주택이 공급될 2010년대 이후에는 엄청난 공급 초과가 이뤄질 것이라는 것은 19일자 글에서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분들이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공급을 늘려서 집값이 떨어지게 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도 걸리고 앞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을 낳습니다. 녹지 공간의 훼손과 그린벨트 해제지역의 투기 조장 등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제가 그래서 무모하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것이고, 그래서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안타깝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 주택 문제의 핵심은 국토부 표현대로 ‘괜찮으면서도 저렴한 주택(decent and affordable housing-미국에서 공공 주택 문제와 관련해 관용구처럼 나오는 표현입니다)’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형성된 집값이 너무 높아서 웬만한 고소득자도 빚을 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급자인 건설업체의 사기적 폭리 분양가와 수요자의 투기 행태가 빚어낸 거품 집값입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는커녕 허황된 ‘시장원리’ 운운하며 실제 건축비보다 약 2배나 높은 표준건축비를 승인해주는 등 거품 집값을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로서는 결국 일반 국민들이 큰 부담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을 낮춰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집값 거품이 수도권 상당수 지역에서 붕괴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애써 나서지 않아도 집값이 많이 빠지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제대로 된 정부라면 계속 해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괜찮은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서민들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현 정부처럼 한편에서는 ‘시장 원리’를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건설사들 주택 사업 물량 챙겨주고, 미분양 물량 처리해주는 식으로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 정부는 말로는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건설업체 챙겨주기가 1차 목표인 것처럼 보입니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는 범위 안에서 건설업계의 발전과 건전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데 완전히 본말이 전도돼 있습니다. 이는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임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가 추구해야 할 주택정책의 목표는 서민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나타난 서민 전세난에서 보듯이 뉴타운 사업은 말로는 ‘강남북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강북 지역 주민들의 집값을 올려주기 위해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친 정말 나쁜 주택정책입니다.) 두 가지 목표 가운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서민들에게 주거비를 보조해주거나 서민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장기(또는 영구) 임대주택 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장기 임대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매매 수요를 흡수하거나 매우 저렴한 가격에 공공 분양 주택을 공급해 민간 집값이 낮아지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주변 시세가 높게 형성될 경우 분양자에게 개발 차익을 독점하게 할 수 있으나, 10년 이상 전매를 제한하고 엄격히 집행하는 전제 하에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선순위에서 볼 때 공공분양보다는 장기 임대 사업에 더욱 치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위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네 가지 가운데 지금까지 역대 정부들이 제대로 한 것이 있는지요? 주거비 보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고, 공공 임대주택은 전체 주택 재고의 4%도 안 될 정도이고, 그나마도 빈민촌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중산층 장기 임대주택은 서울시의 ‘장기전세’ 형태로 이제 막 시작이 됐습니다. 공공분양주택은 주공을 통해 주로 하고 있으나 민간 분양 주택 대비 집값이 그다지 싸지 않습니다. 정부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대로 된 방법을 쓰지는 않고, 계속 건설업계에 각종 특혜와 인센티브를 줘가며 공급만 늘리면 된다는 식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각종 주택 공급 대책도 다 이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집값을 안정시키기는커녕 건설업계의 배만 불리면서 집값 폭등을 사실상 용인하거나 방조해온 것이 지금까지 국토부의 역할입니다. 이번에도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저렴한 집을 공급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지금 같은 주택 공급 구조라면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요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도 집값을 낮추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냐고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장기전세’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장기전세는 주변 전세 시세의 60~80%선에서 공급합니다.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와 취등록세 등 세금 부담도 없고 주거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는 매우 좋은 주거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미분양이 속출하는 데도 장기전세는 최고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매매할 수 있는 분양주택도 아니니 판교분양 때와 같은 투기도 전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주택을 전체 수도권 주택 재고의 20%까지 채운다고 해보십시오. 기존 매매 수요의 상당수가 장기전세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집값이 얼마나 안정되겠습니까?
우리 연구소가 펴낸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3권에서 이미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이론적 토대는 제공했습니다. 제가 4년전 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서울시의 ‘장기전세’ 제도로 현실화됐으니, 현실로도 일정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사실, 관련 제도만 갖춰지면 현재 장기전세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 분양도 똑같이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공공이 저렴하게 주택을 짓는 과정은 똑같고 지은 주택을 장기 임대(전세)로 주느냐, 분양하느냐 하는 공급방식만 다를 뿐이니까요.
그래도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큰 틀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주택 공급 과정에서는 엄청난 개발이익이 생겨나는데, 이 개발이익은 땅주인, 거주자, 개발 대행기관(토공, 주공, 각 지방도시개발공사 등),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 투기세력 등에 의해 배분되고 있습니다. 주택 공급 과정에서 생겨나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라는 갈비를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뜯어먹어, 결국 수혜자가 돼야 할 서민들은 앙상한 뼈다귀만 핥게 되는 꼴입니다. 그러면 이런 개발이익을 공공이 최대한 흡수해 그것을 저렴한 장기임대나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하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흡수하느냐고요? 현재 분양가 가운데 택지비가 보통 30~50% 가량 차지하고, 직간접공사비가 40~50%정도로 두 가지가 거의 90%를 차지합니다. 우선, 택지비를 봅시다. 지금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투기세력이 뛰어들어 땅값을 띄워 놓은 다음 감정평가를 통해 토지 보상을 하므로 개발이익이 땅주인과 거주자, 투기꾼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가 개발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사전 매입 후 개발에 들어가는 식으로 하면 보상비를 얼마든지 아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심 지역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판교나 용인, 동탄 정도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부지 확보까지만 정부가 하고 이후 주택 공급과정은 이를 통합해서 관리할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나 컨소시엄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해 사업을 맡깁니다. 따라서 택지 조성도 토공이나 주공이 하지 않고 CM회사가 가격 경쟁을 통해 선정한 민간 토목업체가 합니다. CM이 경쟁입찰을 붙여 시공사를 선정하면 실제 건축비도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입니다. 공기도 현재 26~30개월 정도인데 20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의 분양가보다 절반 아래로 훨씬 빨리 공급할 수 있습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묻고 통제하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은 이른 전문 CM이나 PM(Project Manager)들을 통해 얼마든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준표의 토지임대부 주택 같은 사기적인 ‘반값아파트’가 아니라 진짜 ‘반값 아파트’ 얼마든지 실현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국내에서 책임감리와 비슷한 역할 정도만 하게 하는 CM제도를 CM이 건설공사 전반을 관리하되 공사 전반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CM at full risk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요. 또 토지보상, 감정평가, 감리제도, 금융기관 공사보증 제도, 하도급 구조, 건설업역 제도 등 건설산업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기관과 관련 정부부처를 동원해 ‘방송장악’에 기울이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사기적 분양가의 거품을 뺄 의지도 없지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들 멋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도시 기반시설 과부하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용적률을 올려 겨우 집값의 15% 정도를 낮추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는 사실상 거품 분양가는 그대로 용인하면서 이번 정책을 서민용으로 포장하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제시하는 방법대로라면 지금 같은 방대한 구조의 토공, 주공 필요 없습니다. 토공, 주공은 정부의 기획에 따라 토지 매입하고 CM사 선정해서 정부 계약을 대행하고 계약 이행을 점검하면 됩니다. 또 향후 장기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임대주택 관리 업무 부문을 키우면 됩니다. 이처럼 공기업 개혁이라고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주체로서 공기업의 역할과 기능을 점검해 재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에 맞게 조직을 Redesign하고 Restructuring, Reengineering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공과 주공 통폐합 논의에서 보듯 그런 것은 전혀 없고, 그저 무식하게 Downsizing 개념밖에 모르는 게 이 정부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 물량을 봤을 때 토공, 주공의 반발이 심해지면 통폐합도 나중에 없던 일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설사 통폐합된다 한들 정부의 엉터리 정책 사업들을 계속 받쳐주는 도구일뿐이라면 그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요?
위에서 봤듯이 공공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면 사실상 방대한 공기업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공공의 목표를 훨씬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외치는 구호는 온통 통폐합 아니면 민영화밖에 없으니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선진국의 정부 개혁이 궁극적으로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민 전체의 후생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현 정부는 공기업의 영역을 줄이거나, 공공독과점 구조를 민영 독과점 구조로 바꿔 민간재벌기업의 사업 기회를 키워주는 것을 공기업 개혁으로 여기고 있으니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개념부터가 엉망인데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정말 서민의 주거안정을 걱정하는 도덕적이고 역량 있는 정부라면 그린벨트 해제 안하고도 얼마든지 집값 안정시키고, 서민 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개발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자기 임기중 생색낼 수 있는 거창한 계획 발표만 하면 된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는 서울시장 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실제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고위 간부는 “이 대통령은 정책 방향의 큰 틀은 없이 자기가 생색낼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 추진하고 포장하는 데는 선수”라고 말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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