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해운대해수욕장이 개장했다. 라디오에서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러시아워 출근길. 여름 휴가는 요원하고, 바다는 아직 엄두가 안 난다.
경남 함안군은 이맘때 훌쩍 다녀오기 괜찮은 곳이다. 함안을 아라가야의 고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절반밖에 몰랐던 것이다. 낭만적인 '둑방' 꽃길과 초록이 짙어지는 저수지 숲길이 부산에서 한 시간 반이면 눈앞이다.
■함안 둑방길 함안군과 의령군, 창녕군을 나누는 것은 남강과 낙동강이다. 이 물길을 따라 338㎞의 둑이 조성돼 있다. 국내 최장 길이다. 악양 둑방길이나 뚝방길, 군청이 '에코싱싱로드'라고도 부르는 함안 둑방길은 이 중에서도 악양루 주변으로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 있는 수변공원 구간이다. 내비게이션에 악양루나 악양교를 치고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이 절정, 길 옆에 흐드러지게 만개
고개 들면 산자락, 내리면 넓은 초원 펼쳐져
남강 최고 전망 악양루, 처녀뱃사공 노래비도
산림욕장 산책로·출렁다리·아이들 놀이터…
여름휴가 전 훌쩍 다녀오기에 안성맞춤
남해고속도로를 함안IC에서 내려 군의 북쪽 경계 끝, 둑방길에 들어서면 길 양 옆으로 피어 있는 붉은 양귀비꽃이 먼저 시야를 잡아챈다. 둑방길을 6월에 가기 좋은 여행지로 만드는 바로 그 전망이다. 5월부터 피는 양귀비는 지금이 절정이라 접시 같은 꽃잎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는 대로 벌어져 있다.
조금 걷다보니, 붉은 꽃물결 사이로 분홍색과 흰색 양귀비꽃과 푸른색 수레국화가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오전부터 햇살이 뜨거운데, 이따금 바람이 불어오더니 꽃잎인 양 숨어 있던 바람개비도 돌기 시작했다. 둘이 손 잡고 걸어가면 딱 좋을 만한 너비의 흙길 산책로를, 풍차를 바라보고 걷는 구간이 둑방길의 하이라이트다.
꽃길만 있다면 금방 싫증이 났을 것이다. 꽃길 아래로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초원과 갯버들 군락지가 운동장처럼 깔렸고, 그 너머가 남강이다. 고개를 위로 들면 산자락이, 옆으로 돌리면 초원이 펼쳐지는데, 그 초록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까지 청량해졌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오두막이 있어 햇살을 피해 쉬어 가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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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둑방길의 경비행기 체험장에 경비행기가 서 있다. 주말에는 실제로 난다. |
풍차 근처에는 경비행기
체험장이 있는데, 장난감 같은 경비행기는 주말이면 실제로 난다. 둑방길에서는 매년 5월 초 에코싱싱함안둑방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하프, 10㎞, 5㎞ 코스가 있다. 계절마다 청보리, 유채꽃, 코스모스가 피고, 갈대군락지와 모래사장 강변도 즐길 수 있다.
남강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정자 악양루와 처녀뱃사공 노래비도 둑방길에 포함돼 있다. 풍차
주차장에서 출발해 비행장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한 뒤 갯버들군락지, 악양루 앞을 지나 풍차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2.2㎞ 거리, 1시간 코스다. 출발과 도착 지점은 같되 둑방길과 서편주차장, 강변흙길을 지나 비행장삼거리에서 우회전하는 경로를 택하면 1시간 20분이 걸린다.
함안 둑방길은 출사족들 사이에서 먼저 알려졌다. 취재를 간 날에도 모자와 햇빛 가리개로 무장한 아주머니 두 분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 "우리는 마산에서 어제도 오고, 오늘도 왔어요. 원래 여기는 새벽 다섯 시가 제일 좋아요. 물안개가 깔리고, 웬 아저씨가 소 한 마리를 몰고 나오거든. 오늘은 꽃이랑 나비, 벌들 찍으려고 일곱 시쯤 일부러 느지막이 왔어요. 날씨가 쨍하니까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꽃들이 아주 예뻐요."
"사진 찍은 지 오래 되셨나 봐요." "한 20년 됐지. 이제 아들딸 다 시집 장가 가고, 사진 찍으러 다니면 아주 재미있어요. 찍으면 찍을수록 어려워. 이름이오? 민경이 할머니. 예순여덟이에요." 두 분은
자동차 트렁크 뚜껑을 젖히고 작은 상을 꺼내 펼친 뒤 보온병에 타온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일어섰다. "입곡군립공원? 거기는 출렁다리 찍으러 갔지. 우리 차 따라서 와요."
■입곡군립공원 둑방길에서 나와 다시 차로 20여 분이나 달렸을까. 입곡군립공원
표지판을 따라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니, 발 아래 저수지가 주위 온도를 1도쯤 낮추는 느낌이다.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저수지는 총 면적 99만 5천466㎡로, 구불구불 협곡 아래를 흐르고 있다. 산림욕장 입구로 들어서기 전에 강태공들부터 만났는데, 저수량이 풍부해 고기가 꽤 잡히는 모양이었다.
산림욕장으로 들어서면
보도블록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낙엽 활엽수들이 늘어섰다. 나즈막한 초록 동굴 아래를 지나가려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뭇잎들은 아기 속살처럼 연한 5월의 초록을 지나 좀 더 짙은 6월의 초록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저수지 건너 왼쪽으로는 절벽 아래 송림이 우거져 있고,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서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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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입곡군립공원의 출렁다리 전경. 96m 길이 다리에 오르면 구불구불 긴 저수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친절하게 붙어 있는 풀과
나무 이름표를 읽고 가다가, 군데군데 조성된 저수지변 나무
데크에 내려섰다가, 쉬엄쉬엄 걷다 보니 산책로는 흙길로 바뀌고,
나무도 침엽수림으로 키가 높아졌다. 해변에서나 보던 누울 수 있는 나무 벤치들도 이색적이다. 도시락을 꺼내 들고 나무 데크를 찾아가는 커플, 반대편 산등성이를 넘어오던 등산객들과 인사하고, 출렁다리를 굽어보는
팔각정에 올랐다.
출렁다리는 입곡군립공원의 명물이다. 너비 1.5m, 길이 96m 길이 초록색 현수교로, 2009년에 만들었다. 저수지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르는데, 총 50명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혼자 걸으면서 발을 힘껏 굴러보니 진짜로 출렁했다. 양쪽으로 보이는 저수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다.
출렁다리가 끝나니 송림 그늘 아래 차들이 주차해 있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생과일주스와 아이스커피 따위를 파는 간이 트럭도 서 있는데,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제법 운치가 있다. 중년 여성 두 명이 주스 한 잔씩을 사 들고, 출렁다리가 보이는 나무 벤치에 앉아 시집의 사정이며, 아이들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누다가 다시 차에 올라타고 떠나갔다.
아스팔트길 옆으로 인도를 따라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1.2㎞, 총 35분 코스다. 돌아오는 길에는 체육공원과 미끄럼틀 같은 아이들 놀이터도 있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체육공원 운동장에서는 주말이면 각각 높이 10m와 35m, 폭 최대 26m인
인공폭포도 운영한다.
숲길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면, 출렁다리 삼거리에서 활엽수길, 소나무길로 이어지는 산림욕 쉼터를 지나 사육장에서 우회전해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된다. 3.2㎞ 코스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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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곡군립공원과 잇닿아 있는 입곡문화공원의 연못 풍경. 연꽃이 막 피었다. |
체육공원 운동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입곡문화공원도 둘러볼 수 있다. 6만 250㎡ 면적에 연못, 산책로, 유리온실, 미로원, 야생화 무늬화단 등을 조성해 놓았다. 원추리, 상사화, 쑥부쟁이, 꽃창포 등 우리꽃 17종류 총 3만 5천 뿌리를 심었다고 한다. 한두 송이 막 꽃을 피워 올린 연꽃을 보면서 연못가에서 서성거리다가 돌아왔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TIP
■교통·자동차: 남해고속도로~진주 방면~함안 IC에서 좌회전~법수면 윤외리 악양마을까지 4㎞가량 직진~함안 둑방길. 1시간 30분 소요. 함안 IC~군청 방향 우회전~함주교에서 산인 방향 좌회전~직진하다 입곡군립공원 표지판 보이면 우회전~입곡군립공원. 27분 소요.
·대중교통: 부산서부버스터미널(1577-8301)~함안시외버스터미널(055-583-2812) 버스가 약 9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있다. 1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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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및 이용 안내
·함안군 문화관광과 055-580-2344. 함안 둑방길 055-580-3424~5. 입곡군립공원 055-580-2582. 입곡문화공원 055-580-2581.
■음식 |
시장한우국밥의 불고기정식. |
·북촌리 함안면사무소 뒤편 한우국밥촌에는 대구식당, 한성식당, 시장한우국밥 등 국밥집들이 모여있다. 과거 함안시장이 섰던 곳이다. 한우 소고기국에 밥을 만 소국밥,
국수를 만 소국수, 밥과 국수를 같이 마는 소짬뽕이 있다. 각 6천 원. 시장한우국밥(055-583-5858)에서 돼지불고기와 밥, 국을 같이 내는 불고기정식(1만 원)을 먹었다. 주문을 받자마자
석쇠에서 구워내는 돼지불고기의 불향이 살아 있고, 국밥에는 큼지막한 소고기와 선지 건더기가 풍성했다. 칠원면 무기리의 한우별곡(055-586-1077)도 성인 2만 9천 원에 한우를 무한 리필해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블로거들 사이에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