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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카페문학상 작품 심사 의뢰
* 공모 제목 - 생명
* 1. 작품을 다른 작가들로 하여 평을 받아 봄으로
작품쓰는데 도움을 주려 함입니다.
2. 본인이 생각하는 작품이 다른 작가와의 의견이 같은가도 비교하여 보기 바랍니다.
3. 작품심사 과정의 수련도 쌓게 하기 위함입니다. (심사평 짧게 써보기)
( 주제성이 미흡하면 당선작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4. 심사결과 4. 25까지
5. 보낼곳 :hekimk@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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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청보리
입춘이 지나고 나니 청보리밭에서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듯 초록의 작은 물결이 보인다.겨울잠을 자던 생명의 꿈틀댐이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 식물은 따뜻한 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하나 보리는 늦가을에 씨를 뿌리기 때문에 모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어야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보리는 겨울이 겨울답게 추워야 더 잘 자란다고 했다.
요즘은 지구 환경의 변화로 여름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덥고 겨울은 큰 추위 없이 지나간다.언제 왔다가 가는지 짧은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이 슬며시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내가 어렸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밖의 샘가에서 세수하고 방 문고리를 잡으면 잠시 손이 쩍 붙을 정도로 추웠다.그때마다 할머니는“매섭게 추운 것이 내년에는 보리가 풍년이 들겠구나.”하셨다.그 추위에도 차가운 눈 이불을 덮었던 보리다.작은 이파리가 벌써 깨어나 훈풍인 바람에 나비처럼 나풀대는 것 같다.아직 언 땅에 붙은 작은 초록의 보리밭 위에는 나비가 춤추고 황금물결이 춤추며 종다리가 찾아들고 동네 처녀와 총각의 사랑이 상상되었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보리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본이다.인내로 겨울을 이겨낸 보리는 어려운 시절 이른 봄,최고의 식량이었다.파릇파릇 자라오른 보리 새순은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나물로 무쳐도 먹었다.가난한 사람들이 춘궁기 보릿고개를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식재료가 되었다.봄이면 식량이 떨어져 채 익지도 않은 푸른 보리 이삭을 따다가 가마솥에 볶아 말려 보리쌀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청보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살아남는 우리 민족성과도 닮았다.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나라를 지켜냈던 우리의 조상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월이 되니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일했던 조상들이 생각났다.우암산 자락에 자리한3‧1공원에 갔다.안개비 속에 나라를 지킨 영웅들은 우두커니 그때의 기개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잠시 뭉클한 마음에 숙연했다.
조상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되어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그중 일부는 강제로 사할린에 이주 되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다.그들 중 영구 귀국한 일 세대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마을이 우리나라 여기저기 늘어나고 있다.충북 제천에서도 그들을 받아들여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그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보리만큼이나 강인했다.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고국이라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던2, 3세대의 애국심은 하늘을 찔렀다.할아버지 할머니의 그 나라를 동경하며 그냥 고국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고려인3세는 자기와 같은 또래의 한국 고등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르게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도 않는 것 같다고 했다.그뿐 아니라 사할린에 살고 있는 고려인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오히려 사할린에서 살던 우리 동포3세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더 관심이 컸고 더 잘 알고 있으며 자긍심 또한 대단했다.그곳 사할린에서는 학교 교육으로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들은 고국의 이야기가 그대로 역사였다.그 이야기만으로 굳건해진 마음은 이미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었다.한편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매섭게 추위를 견뎌낸 보리처럼 사할린 땅에서 온갖 고초와 역경을 이겨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우리나라와 조상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셨단다.후손들을 통하여 사할린 이주 동포 일 세대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그들의 끈기와 인내,강인함은 조국을 지키고 자식들을 지켜내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었다.할머니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면서 자란 동포3세대는 할머니가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2세와3세의 스승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을 했다.그 후 사할린의 가족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대한민국으로 왔다.할머니께 이야기로만 들었던 고국에서 나의 스승이었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싶은 생각에 가족의 영구 귀국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은 땅 고국에서 가족이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우선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아버지의 습득 속도가 제일 느려 소통이 잘되지 않았다.고등학생 딸이 아버지 대신 구청을 찾고 출입국관리소를 찾아다니며 영구 귀국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정말 장하고 마치 추운 겨울을 이겨낸 보리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을 준비하는 소녀는 우리나라 아리랑 보존회를 찾아 할머니께 듣고 배운 사할린 아리랑을 가르치기도 했다.아리랑은 우리나라 정통민요로 우리 국민이 살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부르는 민요다.어쩌면 우리 국민의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노래는 아닐까?
매사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소녀는 겨울을 이겨내고 초록의 잎으로 노래하는 청보리와 닮았다. 청보리의 생명력을 보면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민족성을 생각했다. 그런 민족성으로 살아온 사할린 동포들의 나라 사랑하는 굳건한 생명력을 요즘 나약하기만 한 청소년들이 느끼고 배웠으면 좋겠다.
따스한 햇살이 청보리밭의 윤기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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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두 시간의 외출
입춘에 비가 내려 촉촉한 대지는 보이지 않는 태동으로 꿈틀거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처음인 것처럼 새싹은 움트며, 단물이 흐르는 나무의 줄기는 통통해지고 뿌리는 생명을 지탱하려고 땅을 더욱 깊이 움켜잡는다. 아직은 봄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발길을 디딜 때마다 저 땅속 기운이 전해져 오는 것 같은데 그녀의 손은 겨울처럼 차기만 하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지고,뭉툭한 엄지손가락과 도톰한 손은 부지런히 일할 운명이라고,여고시절부터 나는 그녀를 어지간히도 놀렸었다.종달새처럼 목소리가 명랑한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여전하다.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는 이제 내겐 예전처럼 들리지 않는다.아직도 웃음 끝에는 일상과 몸의 변화를 끌어 안으려는 몸부림이 섞인 듯하다.그녀는 조금씩 엄습해오던 병마를 진통제로 버티며 집 안팎으로 맑고 명랑한 기운을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던 사람이었다.
봄빛 가득한 어느 날,일하다가 주변 동료들의 이름과 사무실에 왜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나 어떡하지”를 연신 해대며 내가 일하는 의원으로 진료 받으러 오겠다고 알려 왔다.그런 그녀의 전화 목소리는 평소 냉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급히 와서는 이것저것 검사 받았지만,다시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그녀는 의사의 의뢰서와CT영상물을 챙겨서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직장에서 두 시간 외출을 받고 나왔다는 그녀에게,큰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더디 가는 나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몇 시간이 흘러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침은 바짝 마르고 온갖 상상으로 마음이 불안해져 왔다.
꼬박 이틀이 지나서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제야 일반병실로 옮겼다며 그동안의 일을 알려 왔다.그간 겪었던 두통과 어지러움,급작스레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은 뇌경색 전조 증상이었다.다행히도 빨리 내원해 응급조치를 했던 바람에 좋지 않은 상황은 피해 갔단다.신장에 이상이 생겨서 온 증상이라 보름 동안 재입원해서 힘겨운 정밀 검사를 받다가,또 다시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잠깐 진료 받으러 나왔던 시간이,집으로 돌아갈 기약을 알 수 없는 길이 될 줄 그녀는 짐작이나 했던가!집 안팎으로 잘하려고 애쓰던 시간에서 오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약으로 달래던 것이 신장을 상하게 했으리라.
생기 가득한 봄날에 받아들여야 하는 진단은,아침이면 단장하고 출근하며 주말에는 운동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던 평범한 일상 대신 생명 줄처럼 뱃속으로 통하는 관을 삽입하게 되었다.신장이식 대신 집에서 밤새도록 해야 하는 복막 투석을 선택했다.가족들 신장도 내 것도 받지 않겠다고,살아있는 생명의 것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아무도 꺾지 못했다.몸속으로 들어가는 맑은 수액만이 그녀의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방편이 되었다.투석 액에 섞여 나오는 수분과 노폐물속에는 지쳤던 마음과 새 삶에 대한 갈망,주변의 모든 생명을 지키려는 그녀의 고집이 진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절기에 다다라 봄이 되면 마치 처음인 듯 만물이 소생하는데,그녀의 몸과 마음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가볍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 욕심일까?한 사람 살리기 위해서 살아있는 남의 몸을 건드릴 수 없다고 의연하게 말하던 그녀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만해(萬海)는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고,해는 지는 빛이 아름답다고 했다.이렇듯 생명은 화려함을 다하고 나면 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나무가 되고 깊은 밤에 달이 밝듯 가만히 커 나가고 차오르는 것이다.차디찬 땅을 뚫고 나와 기어코 꽃을 피우고 잎을 내는 나무처럼 뱃속으로 연결한 관과 수액주머니는 그녀의 생명을 희망의 봄처럼 지켜주고 있다.여전히 종달새처럼 말간 목소리로 생기를 전달해주는 그녀는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생명 배라 우긴다.
봄은 한 계절 와서 대지의 생명을 틔우지만,새로운 학업에 도전한 그녀는 두 시간 외출하고 삶의 깊이를 얻었다며,나를 보고 꽃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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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생명이 움트는 소리
'쪼르륵 쪼르륵'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주변의 정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 조심스럽게 다가온다.꿈결같이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리듯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온통 어둠 속에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작은 항아리가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다.그 항아리는 얼마 전부터 슬그머니 아랫목에 똬리를 틀었다.그날 이후로 밤낮으로 작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다.마치 우리 집의 식단은 자신이 다 책임지고 있다는 듯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기색이다.
이러한 풍경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아마90년대까지도 시골의 여느 가정의 안방에서 쉽게 보았던 장면이다.이것은 가장의 밥상에 찬거리 하나라도 더 보태고자 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다.새벽녘에 일어나자마자 항아리에 물을 골고루 뿌려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저녁에 잠들기 전 물을 주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한다.며칠을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는 먹기 좋게 잘 버무린 콩나물무침이 되어 아침 밥상에 올려진다.가장에게는 맛있고 든든한 먹거리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빔밥의 재료로 자신의 쓰임을 다하고 사라진다.
콩나물 기르는 법을 살펴보자.먼저 널따란 용기를 준비하여 물을 반쯤 채우고,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얹는다.항아리 안에는 물에 불려 싹을 틔운 콩이 들어앉아 무럭무럭 자랄 준비를 하고 있다.빛을 차단하고 수시로 하루에 세 번 내지 다섯 번의 물을 준다.간단하게 공장을 가동할 준비가 끝나면 이제부터는 가족들의 관심과 정성이다.모든 생물은 쏟은 정성에 비례하여 그 성장과 풍미가 차이가 있다.맛있고 싱싱한 콩나물로 자라 밥상의 품격을 높이는 그날을 기다리며 매일 정성을 기울인다.콩나물이 밥상에 올려지기까지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다.잔뿌리 하나하나 깨끗이 다듬고 껍질도 정리하여 먹기좋게 마무리짓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그 모든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이 걸어 오신 고단한 여정旅程이다.
아내가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콩나물을 한 봉지 사 올 때면,나는 어김없이 식탁에 앉아 아내의 수고로움을 대신한다.비록 어머니 식탁에서는 보이지 않던 행동이었지만 이젠 아내의 식탁에서는 콩나물을 다듬는 것으로 어머니께 못다 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먹음직스러운 콩나물무침을 푸짐하게 양푼이에 넣고,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버물린 비빔밥은 최고의 만찬이다.한 그릇 쓱 비워낸 밥심으로 시작한 날은 하루가 힘이나고 든든하다.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는 경제이론을 몸으로 체득하는 순간이다.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 때 펼쳐놓은 반찬들 중에 어김없이 콩나물무침이 보인다.그당시 최고의 반찬은 소시지,계란말이였지만 그래도 콩나물무침은 빼놓을 수 없는 상위 레벨을 차지한다.지금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여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풍경을 상상할 수 없겠지만,그때 그시절 도시락에 얽힌 추억과 낭만은 무궁무진하다.그 추억의 한 모퉁이에 콩나물이 머리를 치밀며 일어선다.
그는30년 전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이다.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은 얼굴을 보며 지낸다.세월이 흘러 각자 다른 회사에서 생활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살다보니 자주 보게 된다.나보다6살이 많은 형이다.형처럼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다.그 형이 시골 고향에 텃밭을 가꾸며 농작물을 키워 이웃들과 나누며 지낸지도10여 년이 되었다.작은 텃밭에서 철마다 제철 채소들을 재배하며 소소한 재미를 보고 있다.시간이 되면 가끔씩 주말에 따라나서 흙냄새를 맡고 돌아오곤 한다. 3년 전부터는 직접 심은 배추로 김장을 하여 먹고 있다.덩달아,나와 아내도 김장하는 날이면 캠핑하듯1박2일 동안 김장을 하고 트렁크 가득 김치통을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떠나올때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는 것이 꼭 시집간 자식을 챙겨주는 친정 어머니같은 마음이다.
비록 힘들고 고단한 하루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시간을 지내다 보면 나름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그런데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형수가 내년부터는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절인 배추를 사서 손쉬운 방법으로 김장을 하겠다고 한다.어느 가정이든 안 주인의 입김이 여러모로 세다.김장을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텃밭에 아무런 채소도 심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형은 상추나 고추 등 먹을거리를 조금 심어 주말농장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어떠한 채소도 심지 말라는 형수의 입김에 형은 몇 가지 채소만이라도 심겠다고 소심한 반항을 한다.서로 고집을 부리며 각을 세우고 있으니 뭔가 일이 꼬이는 기분이다.
형은 주말을 이용해 작은 수확이지만 나름 농사를 짓는 추억과 즐거움이 컸다.조금이라도 텃밭을 가꾸며 그 즐거움을 지속해 보겠다는 농심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형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어떠하랴!나는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이방인인걸......사소한 생물이든,식물이든 정성을 다해 키우다 보면 어느덧 그 일에 몰두하게 되고 그것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게 된다.공을 기울인 시간만큼 그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비례하리라.텃밭 한 모퉁이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는 넝쿨 속 옹색한 오이로 키웠을 망정,내년에는 더 잘 자라게 키울 도전 의식과 열정이 생길 것이다.주말이면 짬짬이 누려보던 여유도 올해는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있지만 겨울을 보내고 새싹이 돋는 남은 시간동안 두 부부가 잘 타협하여 작은 즐거움을 계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콩나물이 어둠 속에서 주부의 손길에 무심히 자라듯 텃밭에서 기러지는 채소도 농부의 발걸음 소리에 무심한 듯 고개를 내어 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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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새싹
햇살 고운 정원에서 노란 생명 싹트는 산수유 꽃의 비밀을 알아보려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은 정지 되었으면 하는 시간이다.
등 뒤로 겨우내 움츠렸던 찌꺼기를 증발 시켜 버리듯,햇볕이 내리 쬐어 개미가 지나듯 스멀스멀 햇살이 기여 가는 간지러움은 봄날의 햇볕에서나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느낌이다.눈이 시려 반쯤은 감아야 앞을 볼 수 있고,아른거리는 신기루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분명 봄철만이 가능한 햇살이다.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봉긋한 꿈을 간직하고 웨딩마치가 울리길 기다리며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신부처럼 다소곳이 꽃망울이 한줌의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그 봉우리 속에는 어떤 색깔의 꿈 조각들이 숨어 있을까.얼마나 많은 꿈과 설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가.궁금한 마음에 미리 까 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있으려니 조바심이 난다.발바닥이 가려운 것처럼 움찔 거린다.
봄볕이 바람 가득한 풍선처럼 온 누리에 가득 찼다.곧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살금살금 살 곁을 간질이는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텃밭에 나섰다.손바닥만 한 밭을 갈아 비닐을 씌웠다.작년에는 재배하기가 쉽다는 고구마와 들깨를 심었다.수확의 이득보다는 새 생명이 처음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 때의 신비로움을 맛보기 위해서다.새싹들이 발산하는 연녹색의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올해에는 작물수를 더 늘려 땅콩,옥수수도 같이 심기로 했다.먼저 옥수수와 땅콩을 심었다.새싹이 잘 움틀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심었지만 미숙한 솜씨는 감출 길 없다.
어린새싹들이 비닐 속에서 숨 막혀 허덕이지 않는지.비는 자주 왔지만 비닐에 가로막혀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여 씨앗이 제대로 싹을 띄우고 있는지.이래저래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어 시골집으로 향했다.
씨를 뿌리고 덮은 흙이 비닐 위로 봉긋 솟아 올라있었다.벌레가 그랬을까.
아님 두더지 작품인가.씨를 뿌릴 때는 부드러운 흙이었는데 비에 젖었다 말라서 인지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 씨앗을 뿌린 비닐구멍을 막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흙덩이가 위로 솟아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흙덩이 틈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살며시 들어본다.깜짝 놀랐다.두더지나 벌레가 숨어있나 했는데,여리지 여린 하얀 새싹이 흙덩이를 떠 바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흙덩이 사이로 비집고 나오고 있는 여린 잎 끝은 틈새로 들어오는 햇볕에 연초록색으로 물들고,밑줄기들은 아직 햇빛을 보지 못하여 하얗다.
신기하다.손끝만 닿아도 바스러질 듯한 여린 새싹이 돌같이 딱딱하고 무거운 흙덩이를 어떻게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일까.강인한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딱딱한 씨앗 속에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엿보던 씨눈에 물과 햇살이 주어지면 뿌리가 내리고 새 생명이 자란다.씨앗에 저장되었던 영양을 먹고 자란 새싹은 세상을 나오며,씨앗의 껍데기를 개선장군 모자인양 자랑스럽게 뒤집어쓰고 나타난다.막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의 모습은 신비롭다.마치 희귀한 보물을 보는 듯하다.함부로 만질 수 도 없다.손만 닿으면 금방 사그라질 것 같아 눈으로만 보아야한다.새 생명의 탄생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일반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과연 저 신비로운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어떤 선진 과학으로도 설명될 수 없을 것 같다.
종족보존을 위한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성애와 같은 것인가.초자연적인 힘이 새싹 끝에서 나와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은 차마 장엄하기 까지 하다.
어둡고 깊은 곳에서 새 생명을 틔워 있는 힘을 다하여 세상 밖을 향해 생명을 키운다.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이 너무 험난하여 있는 힘을 다해보지만 누르고 있는 흙덩이가 너무 버겁다.흙덩이를 이기지 못하고 바로 밑에서 머리가 뭉그러져 죽어 가고 있는 새싹들이 많았다.너무 깊게 심겨져 연약한 힘으로는 무리였나 보다.지난해처럼 가물어 싹을 틔우지 못할 것 같아 좀 더 깊게 심은 것이 화근이었다.여린 새싹을 죽어가게 만든 내손이 미웠다.
흙덩이 밑에 뭉그러져 죽은 여린 새싹을 바라보다 문득 차가운 물속에 잠긴 세월호의 모습이 떠오른다.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어린 생명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캄캄하고 차가운 물속에서 벗어나려 바동거렸을 아이들의 영혼은 어디에 떠돌고 있을까.두려움에 떨어지지 않으려 서로 몸을 묶어 바동거리며 죽어간 아이들이나,땅속에서 사그라진 새싹들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마지막 순간에 서로 무슨 말을 했을까.얼마나 출구를 찾으려 바동거렸으면 손가락까지 뭉개졌을까.죽어가는 새싹들 역시 밖으로 나가려 힘껏 머리를 들었지만 역부족으로 머리가 뭉개져 썩어 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가만히 있으라.”란 어른들의 말을 믿고 있던 아이들도,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깊게 심겨진 씨앗들은 그렇게 만든 어른들을 얼마나 원망하며 사그라졌을까.후회와 함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새싹을 부드러운 흙속에 다시 심었다.살아날 가망은 없다.이미 생장점이 썩어 불가능해 보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다시 심었다.
듬성듬성 이 빠진 듯 새싹이 나오지 못한 빈자리가 보기 흉하다.빈자리에 또 다시 씨앗을 심었다.이번엔 얕게 심었는데 너무 얕게 심은 건 아닐까.
다시 심으려다 돌아섰는데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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