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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글 모음(창고 정리) 스크랩 문서 한국천주교회사 연표
별나으리 추천 0 조회 106 09.01.06 15: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천주교회사

 

▲1645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 샬(湯苦望)로부터 천문˙산학(算學)˙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을 받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 옴.     

   [소현세자 [昭顯世子, 1612~1645]
  
이름 왕(). 인조의 장자, 효종의 형이며, 어머니는 한준겸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1625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부인은

   강석기(姜碩期)의 딸인 민회빈강씨이고 보통 강빈(姜嬪)이라고 부른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

   한 이후,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이후 9년간 심양(瀋陽)의 심관(瀋館)에 머물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동시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서 창구역할을 맡아 조선인

   포로 도망자의 속환문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병력 ·군량 ·선박 요구, 각종 물화의 무역 요구 등 정치 ·경제적 현안을 맡아 처

   리 하였다. 또 청나라 인사들이 벌인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하고 청나라 황제의 사냥 등에도 동행하였다.
   1640~1642년 인조의 병문안을 위해 잠시 귀국하였고, 1644년 청나라 도르곤[多爾袞]의 원정군을 따라 베이징[北京]에 들어

   갔다. 베이징에서 독일인 선교사 샬 폰 벨[湯若望]을 만나 그로부터 서양 역법과 여러 가지 과학에 관련된 지식을 전수받고

   천주교에 관해 소개받았다.네이버백과사전 인용.
▲1758년 해서˙관동 지방에 천주교가 크게 보급 됨.
▲1784년 이승훈, 중국 북경 북당성당(연경 남천주당에서 그라몽신부로부터)에서 세례받고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귀국.

   이벽(李檗)˙권철신(權哲身, 1736~1801조선 후기의 성호학파의 학자. 1777년 경기도 양주에서 정약전·정약용 등의 남인의 실학자들과

   함께 서학교리연구회(西學敎理硏究會)를 열면서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 세례명은 암브로시오) 등이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음., 명례방 신앙공동체 탄생.
▲1785년 한성에 천주교교회가 생김(진고개 김범우.(세례명:토마스)의 집).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 경남  밀양 단장으로 유배,  1786년 순교.
▲1786년 가성직제도 실시. 정약종 영세. 윤지충, 권상연 입교.
▲1789년 조선교회, 윤유일을 북경에 파견해 가성직제도와 제사문제  등에 관 해 문의.
▲1790년 조선교회, 가성직제도와 유교식  제사 금지해야 한다는  북경교구장  주교의 답변을 들음.
▲1791년 신해박해 일어나 윤지충과 권상연 제사문제로 전주에서 참수됨.
▲1792년 북경 주교 구베아가 교황 비오 6세에게 조선교회 창립을 보고.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 압록강 건너 입국해 서울에 들어와  역관 최인길 집에 거처.
▲1795년 주문모 신부, 부활주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 집전.
▲1795년 천주교도 김시삼(金始三)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포교사실을 밀고.
▲1796년 주문모 신부, 황심을 시켜 북경교구장 주교에 조선교회의 형편을 서한을 통해 전달.
▲1801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 등 이승훈, 정약종, 홍낙민,  최필공, 최창현, 강완숙  등 300여명이 서울 서소문밖  네거리

   와 새남터, 공주  황새바위, 여주 등지에서 참수 치명. 되는 ‘신유교난(辛酉敎難)(신유대박해)일어남.

▲1803년 권계인, 신태보, 이여진 등 조선교회 재건 도모.
▲1811년 권계인, 최신덕, 신태보, 이여진 등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선교사 파 견을 요청.
▲1813년 이여진, 밀서를 가지고 재차 북경 방문.
▲1814년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해미옥에서 순교.
▲1815년 을해박해 일어나 청송 모래산과 진보  머루산 교우촌에서 신자 300 여명이 경주 및 안동 포교들에게 체포돼 대부분 옥사.
▲1816년 김대건 신부의 종조부(작은  할아버지) 김한현(종한) 등 29명,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1821년 최양업은 충남 청양 다래골에서,  김대건은 충남 당진 송산리(솔뫼) 에서 각각 탄생.
▲1824년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등 북경으로  교구장 주교를 찾아가 사제를  보내줄 것을 호소.
▲1825년 무신의 승교(乘轎)를 금함. 정하상˙유진길(劉進吉) 등, 교황청에 서한 발송, 조선천주교의 수난사실을 보고.
▲1826년 정하상 등은 사제를 보내주겠다는  북경교구장의 약속에 따라 의주 변문에 가서 기다렸으나 북경교구장 대리 리베이로

   신부의 사망으로 성직자 영입 무산.
▲1827년 1827년  전라˙경상도 각지에서 천주교도 탄압사건 일어남(정해교난).정해박해 발생. 곡성, 상주,  안동 등지에서 500여

   명 체포돼  10여명 처형당함.
▲1828년 교황 레오 12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사업 위촉.
▲1831년 9월9일 로마 교황청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대목구 설정, 초대 대목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
▲1834년 중국인 여항덕 신부, 정하상 등의 안내로 조선 입국.
▲1835년 브뤼기에르 주교, 조선 입국에 실패해 만주 펠리구 교우촌에서 병사.
▲1836년 모방 신부,의주(義州)를 거쳐 밀입국.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신학생 발탁.
▲1837년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 조선 입국.
▲1838년 11월26일 최방제 신학생, 마카오에서 병사.
▲1839년 기해대박해(己亥敎難)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 유진길˙정하상(丁夏祥) 등  70명이

   참수되거나 교수형을 당하고, 옥중에서 순교.
▲184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교회 수호자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와 성 요셉을 지정.
▲1843년 제3대 조선대목구장에 페레올 주교 임명.
▲1845년 김대건 부제, 중국 상하이[上海] 금가항성당에서 사제로 서품 신부가 되어 밀입국. 그해 10월12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전북 익산군 나바위에 도착해 6개월간 경기도 용인 지방에서 전교.
▲1846년 프랑스 세실 해군소장,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 끌고 충청도 외연도(外煙島) 정박, 왕에게 항의 서한 전달.

   병오박해로 그해 9월16일 김대건 신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 현석문·임치백·우술임·김임이·이간난·정철염·한이형 등 순교.
▲1849년 4월15일 최양업 부제, 중국 상해 서가회성당에서 사제서품받고 입국.
▲1853년 페레올 주교 사망
▲1854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에 베르뇌 주교 임명.
▲1856년 베르뇌 주교와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 입국. 충북 제천시에 배론신학당 설립.
▲1857년 교황 비오 9세, 김대건 신부 등 조선 순교자에게 가경자 칭호 내림.
▲1861년 12년간 조선에서 사목하던 최양업 신부, 41세를 일기로 전교길에서 선종.
▲1866년 병인대박해로 베르뇌 주교를 비롯해 선교사 6명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됨. 정의배·유정률·남종삼·전장운·제5대 조선대목

   구장 다블뤼 주교·오매트르 신부·장주기·황석두 등 전국에서 순교.
▲1868년 제6대 조선대목구장에 리델 주교 임명.
▲1874년 샤를르 달레(프랑스) 신부, 파리에서 ‘대한성교사기(大韓聖敎史記)’ 발간.
▲1877년  천주교 조선교구 주교 리델(프랑스인) 및 두새˙로베르 신부 등 체포.
▲1878년 청의 요청으로 리델 등 프랑스 신부를 베이징으로 귀환 조처.
▲1884년 리델 주교 선종으로 블랑 주교, 제7대 조선대목구장 승계.
▲1885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흥골에 신학교 설립.
▲1886년 한불조약 조인 ‘신교(信敎)의 자유’ 보장. 가톨릭출판사 전신 ‘성서출판소’ 설립.
▲1887년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 조선교회 지도서 공포. ‘예수성심신학교’ 발족.
▲1890년 뮈텔 주교, 제8대 조선대목구장 임명.
▲1893년 최초의 서양식 건축양식건물 약현성당(현 서울대교구 중림동성당) 완공 축성.
▲1894년 뮈텔 주교, ‘황사영 백서’ 입수. 최초의 한옥성당인 전북 되재성당 완공.
▲1895년 876명의 순교자를 수록한 ‘치명일기’ 발간.
▲1898년 2월 9일, 서울 종현(鐘峴)에 천주교회당 건립.
▲1899년 교회와 조선정부, ‘교민조약’ 체결.
▲1901년 제주도에서 ‘신축교난’ 발생.
▲1904년 뮈텔 주교, 조선정부와 ‘선교조약’ 체결.
▲1906년10월 19일, 가톨릭교 주간지로 《경향신문》 창간.(1910년 일제에 의해 폐간).
▲1909년 안중근(토마스),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대구대목구로 분할. 초대 대구대목구장에 드망쥬 신부 임명.
▲1914년 대구대목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설립.
▲1920년 원산대목구 설정. 초대 원산대목구장에 사우에르 신부 임명.
▲1925년 교황 비오 11세,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927년 평양지목구 설정. 초대 지목구장에 번 신부 취임.
▲1928년 원산대목구로부터 연길지목구 분리. 초대 연길지목구장에 브레허 주교 임명.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32년 첫 조선수도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창립.
▲1937년 전주·광주지목구 설정. 초대 전주지목구장에 김양홍 신부, 초대 광주지목구장에 맥폴린 신부 임명.
▲1939년 춘천지목구 설정, 초대 지목구장에 맥폴린 신부 임명.
▲1941년 12월 8일, 외국 신부˙선교사 등 67명 스파이 혐의로 검거
▲1942년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 서울대목구장·평양지목구장·춘천지목구장에 임명.
▲1943년 홍용호 신부, 평양지목구장 임명.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세계평화회복 축하미사 봉헌.
▲1947년 초대 평양교구장이던 번 주교, 초대 주한 교황사절로 부임.
▲1949년 북한 정권, 평양교구 및 함흥교구, 덕원수도원 등 북한교회에 대한 탄압 본격화.
▲1950년 교황청, 김대건 신부를 한국성직자들의 주보로 정하고 축일을 7월5일로 결정.
▲1955년 9월20일 춘천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1957년 1월21일 광주·전주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부산대목구 설정.
▲1958년 6월23일 청주·대전대목구 설정돼 파디 주교와 라리보 주교 각각 초대 대목구장에 임명.
▲1961년 6월6일 인천대목구 설정, 초대 대목구장에 나길모 주교 임명.
▲1962년 3월10일 교황 요한 23세, 한국 교계제도 설정.
▲1963년 10월7일 수원교구, 서울대교구에서 분할돼 초대 교구장에 윤공희 주교 임명.
▲1964년 대건신학대학 공식 인가.
▲1965년 1월1일 한국어 미사경본의 시행 통해 전례 쇄신. 3월22일 원주교구, 춘천교구로부터 분할 설정돼 초대 교구장에

   지학순 주교 임명.
▲1966년 대한민국과 바티칸, 대사급 외교관 교환. 주디체 대주교, 공사에서 대사로 승격 임명.
▲1968년 10월6일 병인 순교복자 24위 로마에서 시복식.
▲1969년 3월28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 서임. 5월29일 안동교구, 대구대교구로부터 분할 설정돼 초대 교구장에

   두봉 주교 임명.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설립, 제1차 시국선언 ‘우리의 주장’ 발표.
▲1977년 3월21일 제주지목구, 교구 승격돼 교구장에 박정일 주교 임명.
▲1981년 10월18일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거행. 한국외방선교회, 첫 해외 선교사 4명

   파푸아뉴기니에 파견.msh53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 거행.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여의도에서 거행.
▲1992년말 한국 천주교 신자 300밀명 돌파.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잠실종합운동장서에서 개최.
▲1998년 서울대교구 최창무 주교, 첫 사목적 방북.
▲1999년 12월25일 2000년 대희년 개막과 한국 주교단 대희년 사목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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