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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도 나오고 성경에도 언급되고 있는 ‘시바여왕’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는 시바여왕은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있는 시바(사바)왕국의 여왕 바루키스를 일컫는 말이다.
성경에는 시바(스바 또는 사바)라고 일컬어지고 코란이나 아랍 전승에는 바루키스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솔로몬왕과의 관계 등 전승 내용을 보면 두 사람 다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성경(열왕상기)에는 (바루키스로 알려진) 시바여왕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테스트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솔로몬왕과의 회담 결과 솔로몬의 지혜에 탄복하고 존경하여 많은 진기한 금과 보석, 향료를 선물로 주고 돌아갔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아라비아 전승이나 에티오피아 전승설화를 보면 성경 내용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바루키스(시바여왕)는 아라비아 남부(지금의 예멘)에 있는 크고 부강한 왕국의 통치자였고 시바왕국은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솔로몬왕이 편지를 보내 태양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고 충고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을 가해왔는데 이에 바루키스(시바여왕)는 조정 대신들을 모아 놓고 논의한 결과 자신들의 나라는 가장 부유한 왕국이므로 금과 보석 등을 이스라엘로 보내어서 솔로몬왕을 회유하기로 하고 막대한 금은 보석과 항료를 보내어서 회유하지만 오히려 솔로몬왕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었고 솔로몬왕의 거듭된 독촉에 결국 바루키스로 알려진 시바여왕이 직접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고 솔로몬왕을 방문하였는데 보석을 실은 낙타 행렬의 출발이 3일 동안 이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솔로몬왕을 대면한 바루키스(시바여왕)은 솔로몬왕과 사흘 밤낮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솔로몬의 총명과 지혜에 탄복을 하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으며 상당한 호감을 품게 되었는데 솔로몬왕의 충고대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였으며 그 와중에 바루키스(시바여왕)는 회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회임을 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고 전한다. 시바여왕은 솔로몬왕과 일종의 기싸움으로 여겨지는 지혜겨루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 지혜겨루기에서 결국 솔로몬왕의 탁월한 지혜에 굴복하게 되고 그를 흠모한 나머지 예정된 기간 보다 더 길게 수개월 동안 예루살렘 궁에 머물면서 솔로몬왕과 동침까지 하게 된 것이다.
포인터가 그린 시바여왕의 솔로몬 방문 그림
귀국길에 오른 시바여왕은 솔로몬왕과의 사랑의 결실인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아이는 바로 에티오피아의 정통 황제가문의 시조인 메넬리크 1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바여왕과 솔로몬왕 사이에 출생한 메넬리크(현자의 아들이라는 의미) 1세가 B.C 10세기부터 1974년까지 에티오피아를 통치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집안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전승은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 등 아랍 전승에서 오랫동안 문헌과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바루키스로 알려진 시바여왕이 다스렸다는 시바왕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 지방인데 지금의 예멘 지역이다. 그런데 시바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가 통치한 나라는 에티오피아의 악숨 지방이다. 악숨은 에티오피아의 동쪽 홍해 부근 지역인데 시바여왕의 왕국이 위치한 지역과 그 아들인 메넬리크 1세가 다스린 왕국의 위치가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바의 왕국인 예멘과 메넬리크 1세의 왕국인 에티오피아는 홍해라고 하는 극히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는 나라로서 과거 고대국가 시대에서는 국경선이 지금처럼 확정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교역과 왕래가 빈번하게 일어난 지역이었던 것인 만큼 두나라가 동일한 하나의 세력권 안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라비아의 남부에 있었던 시바의 왕국이 각종 토산물과 값진 항료를 바탕으로 주위의 국가들과 활발한 교역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바탕으로 국력을 떨쳐 주위의 나라 즉, 아프리카 동서부 지역을 복속시켜 그 곳에 식민지 국가를 세웠으며 그 중 하나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에티오피아의 악숨이었을 것이고 그 지역의 패자로 군림했던 시바왕국의 시바여왕의 자신과 솔로몬왕 사이에서 출생한 메넬리크 1세를 식민지였던 에티오피아의 악숨 지역의 영토를 할당해주어서 그의 왕국 창업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바루키스 즉, 시바여왕의 왕국이 아라비아 남부(지금의 예멘)인가 아니면 에티오피아인가의 논쟁은 기원전 고대국가 시절의 중국처럼 - 남중국과 북중국의 관계라든지 만주와 중국의 관계 또는 고대 한반도와 만주와의 관계처럼 하나로 통합되었다가 분리되었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 이웃한 두 나라가 하나의 동일한 세력권에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고 판단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뭏튼 지금의 에티오피아에는 시바왕국으로 알려진 유적지와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악숨 지역에 시바여왕의 왕궁터와 시바여왕의 목욕탕, 거대한 오벨리스크 등이 유물로 남아 있다.
시바여왕의 왕궁터에는 왕의 접견실과 침실 그리고 샤워시설, 배수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어서 당시 여왕의 상당했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해주고 있고 100m 길이의 사치스러운 여왕의 목욕탕은 식수가 부족한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 주민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고마운 식수원을 공급해주고 있는 것이어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바여왕의 사치품이 오늘날 만성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에티오피아 지역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니 시바여왕의 선견지명일까 아니면 단순한 호사스러운 사치의 소산일까?
오늘날 에티오피아인들은 솔로몬왕과 시바여왕의 아들인 메넬리크 1세를 자신들의 국조로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에티오피아에는 종교상 중요한 유물이 4가지가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舊 성 마리 시온 교회, 新 성 마리 시온교회, 성궤 보관소, 성서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구 성 마리 시온 교회가 이곳에 있는데 이곳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거룩하고 신성시하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며 또한 마지막 황제 때 새로 신축한 돔 형태의 신 성 마리 시온교회가 있으며 이 교회 안에는 양피지로 만든 오래된 성경이 보관되어 있으며 구 시온교회와 신 시온교회 사이에는 성궤보관소가 있는데 이곳에는 십계명을 담아 두었던 성궤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예루살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에티오피아의 악숨 지역은 종교역사상 정말 미스테리한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이 악숨 지역의 성궤보관소에 있는 ‘성궤’는 십계명의 석판 원본과 그것을 담은 궤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두가지 전승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데 <1> 메넬리크왕이 아버지인 솔로몬왕을 찾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솔로몬왕과 상봉한 후 돌아올 때 솔로몬왕의 명으로 언약궤도 함께 가져왔다는 전승 <2> 메넬리크왕이 타나호수에 숨겨져 있던 언약궤를 찾아내어 보관소를 만들어 보관해오고 있다고 하는 전승이 함께 전해진다. 한 때 이곳 악숨의 성궤보관소에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소재가 되었던 ‘성궤’와 ‘성배’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가 유행처럼 나돌기도 하였다.
에티오피아의 성궤보관소
이 악숨 지역의 성 마리 시온교회와 성궤보관소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종교상 중요한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교상의 유물과 관련된 솔로몬, 시바여왕, 메넬리크왕의 전승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역사사실인지는 전문가들의 정밀하고 객관적인 조사와 검증을 받아야만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은 이같은 악숨 지역의 전승을 자신들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로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판목에 금칠을 한 성궤의 추정 이미지
첫댓글 아..이런 사연이 있었네요. 많은 걸 알고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