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사상
불교에 있어서 주요한 사상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 붓다가 깨달으신 진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서는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하거나 ‘발원하는 종교’, 혹은 ‘수행의 종교 ’등으로 나눌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마음의 종교라고 정의할 때면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론적인 접근이나 관념론적인 설명이 대두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이론적인 고찰을 불교에서는 특히 유식사상唯識思想이라고 하여 대승불교 교학의 한 분야로서 일찍부터 다루어져 왔다.
다시 말하면 이 유식사상은 불교사상 중에서도 우리들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마음을 자세하게 취급하고 있는 분야로서 일종의 불교 심리학과도 같은 것인데,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설된, 이론적인 면과 실천수행적인 면을 간추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는 세 가지 성질[三種自性]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를 결과적으로 생성케 한 우리의 마음에 관한 자세한 정의 등이 그 주요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이론적인 면이 강한 유식사상은 실천덕목인 유가행瑜伽行을 중점적으로 가미하여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가르침으로 그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식사상이 불교 교학적인 면에서 검토, 연구될 때에는 자연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업감연기설 등의 미비점을 알 수 있게 하며, 이보다 앞서 유행했던 「반야경」 계통의 공사상 등이 그 진의를 상실하고서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대승불교의 교의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유식사상이 흥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미륵(彌勒, 270―350)과 무착(無着, 310―390) 그리고 세친(世親, 320―420)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으며, 주요한 경론으로는 『해심밀경海深密經』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섭대승론攝大乘論』,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및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을 들 수가 있다.
아뢰야식 연기론
1. 아뢰야식의 내용
업감연기론에서는 우주만유를 생성하는 연기의 주체를 업이라고 하였고, 그 업을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러나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 볼 때 그 세 가지 업의 근원 즉, 업의 체성(體性)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원시불교에서는 여러 가지로 주장을 달리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행동을 명령하는 것은 마음이라고 했다. 흔히 말하기를 무의식중에 한 일이라거나 또는 아무 생각없이 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행동에 한해서 미리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 일이 아니라는 말일 뿐 우리의 행동은 언제나 마음의 통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것도 하나만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눈으로 보고 빛을 분별하는 마음[眼識], 귀로 듣고 소리를 분별하는 마음[耳識], 코로 냄새를 분별하는 마음[鼻識], 혀로 맛을 분별하는 마음[舌識], 몸으로 촉감을 분별하는 마음[身識],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직접 의지하지 않고 다만 그것들의 경험에 의해서 아는 마음[意識]의 여섯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을 육식(六識)이라고 한다.
업감연기론에서는 육식 이외에 다른 정신작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식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마음[前五識]은 눈·귀·코·혀·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根]을 통해서 외계의 모든 현상을 마음에 전달[表象]해줄 뿐, 이것 저것을 비교하거나 지난 일을 추억하거나 앞 일을 상상하는 등의 복잡한 정신작용은 하지 못한다. 다만 제6의 의식(意識)만이 겨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의식도 알고 보면 오근(五根)이라는 물질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존재하므로 우리가 죽게 되면 그 활동은 중단되어버린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가 죽은 뒤에는 업력(業力)이 어디에 남아 있게 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업력이 연속하기 위해서는 육식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유로 설정된 것이 제7의 마나식[末那識]과 제8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그리고 제8의 아뢰야식이 우주만유의 근원이라고 본 것이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이다.
아뢰야[阿賴耶]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Alaya)를 음사(音寫)한 것으로, 예부터 여러 가지 번역이 있지만 ‘쌓아둔다[含藏]’ ‘없어지지 않는다[無沒]’라고 한 것이 그 대표적인 해석이다. 즉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행하는 운동의 에너지가 하나의 씨앗[種子]이 되어 아뢰야식에 쌓여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마치 창고에 모든 물건을 저장해 두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여러 감각기관과 의식을 통해 사랑하고 미워하고 우쭐대고 업신여기고 의심하는 등 온갖 행동을 하는데, 그 하나 하나의 행동마다 그 세력으로서의 종자가 낱낱이 아뢰야식 가운데 저장되었다가 뒷날 인연을 만나서 다시 삼라만상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뢰야식도 역시 인연으로 생겨난 것으로 생멸하는 것이지만, 아득한 과거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현현(顯現)하면서 앞의 7식의 활동에 의해 자체 안에 저장해 두었던 선악을 전개시킨다. 이렇게 전개되기 시작한 종자는 다시 제6 의식의 선·악업의 영향력[熏習力]에 의해 인간계라든가 천상계라든가 또는 아귀, 축생, 지옥 등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가리켜서 6식의 훈습(熏習)에 의해 제8 아뢰야식 안에 저장되었던 종자가 현행(現行: 나타남)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아뢰야식은 생사윤회하는 미혹의 세계의 본체이고 주체이다. 또 비단 미혹의 세계만이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도 그 종자의 바탕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종자를 아뢰야식 가운데 함장(含藏)하고 있어, 그것이 6식에 의해 훈습되고 현행하여 여러 가지 세계를 전개시킨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미혹과 깨달음의 두 세계, 즉 전 우주의 근원이며 만유의 총체인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서 ‘삼계는 오직 마음이고, 모든 존재는 단지 식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라고 하기도 하고, ‘삼계는 거짓된 것으로 오직 마음[心]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