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에게 명상이란 무엇인가. 간략한 답변을 요구하자 “뇌가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잠시 머리를 쉬는 거죠.”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의 힐링을 체험했다고 한다. 성적도 향상됐다. 하지만 명상은 눈에 보이는 승률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한두 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고 할까요.”
유교의 수기안인(修己安人·자신을 수양한 후 남을 편안하게 한다),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자기가 깨달은 후 남을 구제한다) 정신과 비슷하다는 기자의 질의에 박찬호는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적으로는 서양인들이 더 체화하고 사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야구를 통해 접목시키는데, 팀 미팅을 할 때 한국은 감독이나 코치·선배·주장 중심이에요. 미국에선 각자가 다 중심이에요. 그 다양함을 매니징해서 한 팀으로 만드는 게 감독과 코치 같은 매니저의 역할이에요. 굳이 그 사람을 숭배할 필요는 없어요. 존경할 수는 있어도.”
“처음 만났을 때 30분 정도 제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너의 얘기 좀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 언론 얘기, 고마운 사람, 밥 사줬던 사람, 어머니 등을 얘기했는데 다 내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라고 했어요, 마운드에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집어넣는 것. 타자를 못 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 집어넣는 거래요.”
투수들은 포수 미트에 공을 넣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하지만 게임에 나와서는 타자를 아웃시키려고 한다. 안타를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긴장을 가져온다. “타자는 내가 아니고 게임도 내가 아닙니다. 손끝에서 공이 빠져나갈 때의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만이 제것이에요. 그 감각을 찾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는데 정작 마운드에 올라서는 연습한 것을 안 써먹고 다른 것을 쓰는 거죠. 타자 생각, 관중 반응, 언론 반응 등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은퇴 이후의 명상가가 아니고, 그 훨씬 전에 명상을 했어요. 명상가였기에 124승을 할 수 있었고, 또 명상가였기에 124승에서 스톱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125승, 130승을 향해 달려갔을 거예요. 그건 집착이었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중요했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깨달았어요. 아시아 최고 선수 이런 수식어가 달갑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에. 안 없어지는 것은 거기까지 가는 과정 속의 저의 깨달음이에요.” 메이저리거는 야구를 넘어 ‘인생의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것 같다. 운동을 통해, 명상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성숙해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언젠가 일본 선수 누군가가 125승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또 다른 수치, 실망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해 124승 기록을 세우기까지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저스에서의 화려함도 있었지만 텍사스에서의 어두운 암울한 시간도 있었는데, 오히려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암흑 속에서 극복한 정신과 경험 이런 것들입니다. 다저스에서의 화려함은 언젠가 더 화려한 것 속에서 잊혀 가요.”
은퇴 이후 명상은 이제 그의 일상이 됐고, ‘박찬호만의 명상’도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명상이다. “제가 상당히 힘든 적이 있었어요. 극단적인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 몸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여기저기 매일 파스를 붙여야 하고. 내 몸에게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미안해’ 한 번 하고 호흡 길게 하고,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마워’ 그러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럽니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100% 따라준 것은 내 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 몸이 굉장히 고맙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사랑해’ 하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러지요.” 4년 전 남해 바닷가 소나무 울창한 사이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이 같은 명상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막 우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여기 온 분들이 박찬호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힐링을 하러 온 것이구나. 모든 사람이 다 상처와 고통을 겪는구나. 어떤 사람은 그걸 가볍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깊게 생각해 아프고 하는구나…. 명상을 통해 그게 뭔지를 알면 그런 고통의 상황이 또 올 때 그걸 가볍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거든요. 생각의 차이인데, 그 생각의 차이 하나가 굉장히 큰 에너지를 만들어요. 그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자기가 알게 된 어떤 성장이나 통찰력의 이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에너지의 패싱이라고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