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진료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어서 늦게 오셨는데 마침 나가시는 시장님께
이성자미술관이 꼭 진주에 하루라도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는데 관하여 설명하고 계심
시간이 되었으면 한 말씀을 하시려고 준비해 온 원고를 여기다 올립니다.
★ 이성자 화백을 그리며 ★
3월 8일 이성자화백의 추모전이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짧았지만 소중한 만남을 통해 그분의 열정과 아픔을 알게 되어 그리워하는 팬이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첫 만남은 환자와 의사로 이루어졌고 두번째 만남은 2009년 벚곷이 필 무렵,
3월 12일 일년만에 진주여고 교정의 빈소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만남은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유작을 통해 만나볼 예정인데... 생전에 원하던
이성자미술관이 아니라 아쉽지만 꼭 가까운 미래에 처음 약속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2008년 벚꽃이 질 무렵에 이성자 화가 할머니가 진주에 오셨습니다.
제가 쉼터일로 정행길관장님을 자주 만나는친분으로 알게 되었는데
진주여고를 나와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으로(남편의 외도) 가족과 헤어져 6.25 때 만난
프랑스 대사관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갔습니다.
동경대 가정과를 나왔고 미술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자식과 생이별한 아픔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토애를 승화시켜 동양적 기풍의 프랑스
거주 화가로서 한국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상을 두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설사를 한다고 영양제를 놓기위해 방문했는데 90세 할머니게서 빨간 제 안경테와 같은색이라
안경테 덕분에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예술가도 의사처럼 세상을 치료하여 밝게하는 동료라 하더군요. 그 뒤 두번 더 찾게
되었고 영양제를 맞으면서 몇시간 대화속에서 할머니께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되었나 봅니다.
할머니가 아들 3명과 생이별을 하고 프랑스로 홀홀단신으로 건너가 그 아픔을 승화시켜
아름다운 작품이 나왔고, 진주여고 출신의 후배 중 작품 상속 대리인으로 쉼터 정행길관장님을
선택한 것이 자신도 예전에 피해여성과 같은 처지였기에 그분을 믿을 수 있다고 한 말씀이
기억에 남고 미술관 명칭으로 마음이 상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90노인분이 소녀같은
순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림속 환한 색채를 담아내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고향 진주에 수백억원의 가치가 있는 자신의 전 작품을(300여점?) 기증했고
기념미술관의 명칭때문에 오해가 생긴 와중에 돌아가셨습니다.
3년전 진주시장님의 약속은 이성자미술관으로 명칭을 하기로 하였는데...
경비와 명칭 등 여러 이유로 아직 삽도 못 떠고 있는 처지입니다.
유족들은 만일 진주시에서 2014년까지 약속이행이 안되면 수백억 재산을 가져가기를
원하고 있는 뭔가 사연?이 있나 봅니다.
미술관 설립을 위한 법인체를 만들기 위한 진주시민 모임에 대표님들이 정말 큰 일을 하셨는데
저는 할머니와의 짧은 시간 속에서 호감만 받았는데 과분하게 저에게 그림을 한 점 주고 가셨습니다.
물론 완성품이 아닌 습작(판화 전 단계)이지만 그 분이 직접 싸인가지 하고
제 이름을 넣어 주셨습니다.
2008년 벚꽃이 질 무렵 유명한 분을 가까이 했던 영광스러운 순간과 전 재산을
사회에 남긴 아름다운 그림같은 화가할머니를 제 마음속에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이 분과의 인연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큰 영광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고향 진주에서 그 분의 작품들이 살아 숨쉬며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는 좋은 인연이 올 때
하늘나라에서 활짝 웃으시도록 우리 후배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첫댓글 이화백님과 권현옥의사선생님이 이렇게 깊은 사연이 계셨군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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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열정이 모여 좋은 성과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