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 출판기념회
백남오
여기는 지리산 종석대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노고단산장이다.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13일,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하늘은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바람은 서늘하여 그 무엇을 하기에도 정말이지 설레고 좋은 날씨다.
산장주변에는 울긋불긋 단풍과 함께 인파라 할 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그 속에서 우리 진등재문학회 회원 43명도 분주히 움직인다. 가을 문학기행을 지리산으로 왔는데 특별이벤트로 나의 수필집『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귀 뜀이다. 주변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 어떤 형식의 기념식도 하지 않기로 정리를 끝냈는데 당황스럽기만 하다. 결과적으로 더 큰 부담을 준 셈이 되어 편치만은 않지만 되돌려 놓을 수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종석대가 잘 보이는 야외식탁 하나를 골라 준비해온 현수막을 분주하게 설치하는 문우도 보인다. 여러 종류의 떡으로 조화를 이룬 커다란 케익을 중심에 놓고 그 옆에는 작품집 5권도 배치하고 함께한 회원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둘러선다. 이장중 회장의 인사말씀으로 의식은 시작된다.
교수님의 4번째 수필집이 출간되었으나 기념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집 출판을 축하드리며 책의 중심소재가 되는 지리산을 여행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져, 가을 문학기행을 지리산으로 왔습니다. 표제작 종석대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노고단에서 기념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문운이 저 힘차게 뻗어 내린 무수한 지리 산맥만큼이나 왕성하게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다인 조경숙 선생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우전차로 다례를 올린다. 이 차는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곡우보다 약 10일전에 따서 아홉 번이나 찌고 말려서 정성을 깃들인 곡우차인데 신라시대 이름 있는 다례 때도 이 종류의 차를 사용했을 정도라 한다. 예의를 다하여 지리산 신령님께 3잔을 올린다. 술이 아닌 차로서 예식을 올리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이 설레고 긴장된다.
함께 축가를 부르고, 졸작「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가 여성문우의 낭랑한 목소리로 울려 퍼질 때쯤에는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도 모여들기기 시작한다. 나의 인사말 차례가 되어서는 감사함과 이곳의 유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정말 감동입니다. 어떻게 종석대를 바라보며『지리산 종석대의 종소리』 출판기념을 하려고 생각을 했는지 대견스럽고 기특합니다. 지리산 신령님께서 여기모인 문우님들께 빛나는 문운을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오늘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 회장님과 진등재문학회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은 참으로 유서가 깊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지리산을‘남악’으로 숭배하고 그 주재자인 산신께 제사를 올린 곳입니다. 당시 국가적 차원으로 제사를 모신 장소가 천왕봉이라면 민간차원에서 기원을 드린 곳은 이곳 노고단입니다. 통일신라 때는 그 사당인‘남악사’가 천왕봉 쪽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노고단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물론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인 정황이 고려되었겠지요. 중요한 것은 국가적 차원의 제사는 왕조가 멸망하면 소멸하지만, 민중에 의해서 계승 발전된 유산은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민초들의 그 끈질긴 힘의 흔적인 남악사가 전남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구례화엄사 옆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지요. 오늘 그곳에 가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기는 1920년대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선교사들이 수양관을 건립하여 여름휴가를 즐겼던 현장입니다. 한국전쟁 중에 폭격을 당해 그 잔해만 남아있습니다. 여름지리산의 시원함과 수려한 경치를 잊지 못한 그들은 1960년대‘왕시루봉’으로 옮겨 다시 별장을 지었습니다. 수영장 등의 위락시설물들이 지금도 있어 한때의 호화로웠던 역사를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인사가 끝나는 대로 떡케익 나눔 행사가 진행된다. 떡은 모인 모든 등산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진다. 그러는 사이 나는 준비해온 책 사인회를 한다. 다섯 권이 전부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상징성 있는 일인가. 의식을 마치는 대로 우리는 삼삼오오 웃음꽃을 피우며 기념촬영을 하고 행사를 마무리 짓는다.
빤히 보이는 종석대를 바라보고 하산을 하며 얘기꽃은 피어난다. 상상했던 종석대와 너무나 다르다는게 중론이다. 송 작가는 울컥해하며 눈시울을 적신다. 신비롭고 아름다워 전율이 흐른다고 몸을 떠는 문우도 있다. 엄청 큰 봉우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작은 뒷동산 같다는 이도 있고, 다정한 벗이 부르는 것만 같아 올라가 놀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오늘은 갈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오르고야 말겠다는 의욕에 찬 열렬 문우도 보인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생각도 느낌도 이렇게나 다르니 이 역시 이번 문학기행의 수확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는 사이 노고단의 가을하늘은 더욱 높아져 있다. 종석대 위로는 옅은 구름 한 무리 유유히 어디론가 흘러간다. 저 맑고 높은 하늘과 운무만큼 우리들의 문학을 향한 꿈도 무럭무럭 자유롭게 피어오르기를 소망해 본다.
첫댓글 엄마품처럼 따스함이 전해오는 감동적인 글입니다~올 한 해 교수님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지리산 전문가는 역시 다릅니다. 노고단의 역사와 문화를 단숨에 역설하시고......
스승님이 악천후를 이기고 수십년 갈고 닦아 얻은 것을 편한 자리에서 쉬이 받아먹는 것 같아
죄송하다는 생각을 가끔 했습니다.
몸소 실천하신 진실된 작품만 쓴 작가가 흔하진 않더이다.
진자리가 아닌 마른자리, 딱딱한 돌덩이가 아닌 폭신한 솜의자에 앉아 머리로만 가슴으로만 작품을 쓰는
작가가 더 많습디다. 오늘보다 더 매운 날씨에도 지리산을 들락거린 용기에 박수, 4번째 수필집
출간에도 다시 한번 큰 박수를 올립니다. 존경합니다.스승님^^
교수님의 지리산 저서들을 읽을때미다 노고단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그런 바램 뒤의 노고단은 참 감개가 무량했지요. 글을 써놓고도 파일이 없어지는 바람에 아쉬웠는데 또 이렇게 교수님 작품으로 만나게 되니 더 없이 좋습니다.
덕분으로 올해는 두번이나 지리산 자락을 밝게 되어 무한히 감사했습니다.
사정이 있어 참석치 못했지만 글을 통해 참석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