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구속
구속이란 말은 우리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단어이기는 한데, 그 의미나 정의를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이중에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질문) 구속이란?
1. 구속의 의미
구속의 의미를 알기 위해 우리가 타락을 이해할 때 도움을 얻었던 열차의 비유를 다시 한번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락이 무엇이라고 했죠? 열차가 레일을 이탈한 상태, 이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선한 목적에서 이탈된 것을 의미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구속은 바로 이 탈선한 열차가 어떤 큰 기계의 도움을 얻어서 원래의 철로 위로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서 이탈한 피조물들이 자력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하나님의 선한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망적인 영혼의 상태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
타락한 인간이 다시 원래의 선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구별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돌려지는 칭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태로 빠지게 된 인간을 구원해 내실 분이십니다. 그 메시야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의 많은 부분에서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처음으로 예언한 말씀이 바로 창 3:15절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15절을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을 했다고 해서 원 복음, 즉 최초복음이라고 이름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이란 말이 바로 동정녀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후손”이란 개념을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남자의 후손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는 것처럼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 즉, 남자의 성을 따라갑니다. 아버지의 할머니는 친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손이라고 말할 때는 남자의 후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처녀) 탄생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상적인 결혼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결합을 해서 낳으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 어떤 남자와도 정을 통하지 않고 예수님을 잉태했으며 예수님을 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창세기의 예언처럼 여인의 후손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게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한 사람이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 구출할 것이라고 창세기 3:15절은 예언 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어야 할 복음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받는 다양한 길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 종교는 수행을 많이 쌓으면, 모든 것을 절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그리고 전도하면, 선행을 많이 하면, 순교하면...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구원 사건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문을 여신 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당하고 죽어야 하는데 이 모든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다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구원이 진정으로 나에게 미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3.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
그러면 이 믿음은 무엇이며, 어떠한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가져야할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민수기 21:8-9절 을 보면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ex) 내용설명 : 불평하는 이스라엘 - 불뱀을 보내심 - 모세의 기도 - 처방을 내리심 -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면 살리라...
바로 “쳐다본즉 살리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3:14-15절에서 그것을 바로 구원받을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쳐다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냥 보는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을 목적을 가지고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매달린 뱀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알면 예수님이 왜 쳐다보다는 것을 믿음으로 보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을만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아니면 죽게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동의, 즉 아는 것으로만 머물러서는 우리에게 구원이 미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나를 이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인 것입니다.
4.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다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이 바로 구속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구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선한 의도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다시금 소망을 안고 진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회복되는 것입니다.
질문) 구약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모세, 다윗 등 수많은 구약의 인물들은 다 지옥에 떨어졌는가?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절에서처럼 죄로 인해 죽게 된 아담을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인류를 구원할 “여인의 후손” 즉 구세주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온 마음은 오직 태어날 아기에게 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낳은 첫 아들, 가인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가인의 태어남을 자신들의 구원과 연결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는 메시야, 즉 창세기 3:15절에 예언된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로 “메시야 대망사상”이라고 합니다.
범상치 않은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는 신앙은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가 자신들을 구속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질문) 하나님께서는 왜 꼭 그리스도를 그 극한 형벌 속에 처하게 하셔서 비참하게 죽게 하심으로 구원사역을 하게 하셨는가? 다른 방법이 있거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냥 구원을 베풀 수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방법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거나 심심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법칙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과 모순되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룩한 “공의의 성품”과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성품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로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공의의 성품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죄지은 인간들은 아무런 공로 없이 용서받게 되므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인 십자가의 형을 택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 값이 그토록 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고, 꼭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신 이유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할 만한 사람은 오직 아무런 죄 없으신 예수님이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