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나들이
신 영 이
어느새 7월 중순이다. 여유로운 시간이 나서 꿀맛 같은 나들이를 계획했다. 소수서원(紹修書院)도 가고 싶고 맛난 먹거리도 있는 영주를 목적지로 택했다. 무더위조차 나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어딜 간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우리 세 식구는 소수서원을 먼저 가고 점심 먹는 거로 짧은 일정을 잡았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소수서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배흘림기둥을 보려고 부석사에 간 기억은 있지만, 소수서원은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한적한 시골에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 있는 걸 봐선 소수서원의 역사적 의미를 가늠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무더위를 피해 일찍 서두른 까닭도 있지만, 몇 대 없는 차들과 드물게 보이는 인적들로 지금이 코로나 시국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편으론 소수서원을 맘껏 편안히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서원 초입부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소나무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수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서원을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300년에서 길게는 천 년 정도 되는 870여 그루의 적송이자 노송들이다. 선비들이 소나무의 기상을 닮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은 나무로 학자수(學者樹)라고 한다. 유생들은 소나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유교 사상으로 조선 오백 년을 이끌었던 원동력과 함께 그 올곧은 기개가 이 소나무에서 나온 건 아닐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많은 보살핌이 있었겠지만, 아직도 소나무는 굳건하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사액 서원이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은 고려 말 성리학을 들여온 순흥 출신 회헌(晦軒) 안향(安珦)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강당을 건립하여 백운동 서원을 세운 후 유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건의하여 1550년(명종5) 임금께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의 의미는 ‘학문을 이어서 닦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현존하는 서원이 670개이고 그 가운데 9개의 서원이 201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정도이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조상들에게 받은 것들로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선조들의 희생과 강건한 정신은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지 않은가? 고즈넉한 서원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매표소에서 홍전문까지 오는 길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해 마음을 달래며 걷기에 그만이다.
서원은 학교 기능의 강학당과 제사 기능의 사당이 있다. 서원 초입에 있는 경렴정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강학당(보물 1403호)이 보인다. 강학당에서 유복을 갖춰 입은 유림들이 앉아 경전을 배우고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시다. 선비의 고장답게 지금까지도 인(仁)과 예(禮)를 실천하려는 모습들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작은 소리라도 낼까 살며시 발걸음을 바로 옆 문성공묘로 돌린다. 목조건물들은 단아하면서도 수수하다.
문성공묘에는 안향, 안보, 안축, 주세붕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매년 제향 의례를 시행하는 곳이다. 남편은 순흥(順興) 안씨(安氏) 찬성공파 28대손으로 안향 선생의 후손이다. 더 각별한 마음으로 목례를 드려 참배했다.
사료전시관은 안향 선생의 일대기와 성리학의 발전 모습들을 잘 전시하고 있다. 뿌리를 깊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들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소수서원을 에둘러 흐르는 작은 냇가는 죽계천이다. 죽계천 너머에 취한대라는 정자가 있는데 퇴계 이황 선생이 공부에 지친 유생들을 위해 잠시나마 자연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든 곳이라고 한다. 그곳 주변들 또한 경관이 수려하다. 소수박물관과 특별전시관을 관람 후 선선한 어느 계절을 기약하며 서원을 나왔다.
쫄면이 유명해 지나가다 몇 번 영주에 들른 적은 있다. 퇴계 이황의 후학들과 유생들이 소수서원에서 많이 배출되었고 조선 선비 정신의 꽃이 이곳이란 것도 알지 못했다. 남편이 제를 지내러 두어 번 왔던 것도 흘려들었다. 단편적 기억들이 오늘에서 조합이 되며 선명해진다. 뿌리를 찾은 여행이 되었다. 수험생이라 함께 하지 못한 딸아이와도 의미가 깊은 이곳을 손잡고 와야겠다.
영주 시내로 들어와 간단히 쫄면으로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파는 맛난 먹거리를 사서 손도 마음도 풍족하게 영주를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