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할머니가 할머니에게 부과한 형벌이나 ,할머니의 열렬한 간청- 처음부터 질 줄 알면서도 헛되이 할아버지에게서 술잔을 뺏으려고 하는 할머니의 약한 모습, 이 모든 광경들은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져서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어 댔고 ,심지어는 즐겁고 단호하게 가해자의 편에 서서 이 정도는 학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그러나,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도 끔찍해서, 고모할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그렇지만 "바틸드, 와서 당신 남편 코냑 못 마시게 해" 라는 소리를 듣자, 비겁함에 있어서는 이미 어른이었던 나는 , 고통과 불의에 처했을 때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된다면- 하는 식으로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터뜨리기 위해 지붕 밑 공부방 옆에 있는 아이리스 꽃 향기를 풍기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깥벽 돌 틈 사이로 나온 야생 까막까치밥 나무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꽃핀 가지를 내뻗고 있어 향기로운 방이었다. 보다 특이하고도 속된 용도로 쓰이는 이 방은 낮에는 루생빌르팽 성탑까지도 내다보여 오랫동안 내 유일한 은신처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곳만이 독서,몽상,눈물,쾌락같이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을 요구하는 내 탐닉이 시작될 때마다 내가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슬프게도 오후나 저녁이나 시도 때도 없이 배회하는 동안 할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할아버지의 식이요법과 관련된 사소한 어긋남보다는 나의 나약한 의지, 허약한 몸, 그로 인한 내 장래의 불확실성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우리 앞을 지나가고 또 지나가면서 ,하늘을 향해 주름진 다갈색 뺨과 아름다운 얼굴을 비스듬히 쳐들곤 하셨다. 그 뺨은 기울어져 가는 나이와 더불어 , 마치 가을에 일구어 놓은 밭처럼 보랏빛으로 보였다. 외출할 때면 반쯤 걷어 올린 작은 베일을 드리운 뺨에는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서글픈 생각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 한 방울이 언제나 말라 가고 있었다.
잠을 자러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와서 키스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 인사는 너무도 짧았고 엄마는 너무도 빨리 내려갔기 때문에,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문짝이 두 개 달린 복도에서 밀짚을 엮어 만든 작은 술이 달린 푸른빛 모슬린 정원용 드레스가 가볍게 끌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내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에 올 순간을, 엄마가 내 곁을 떠나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을 예고해 주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난 그렇게도 좋아하는 저녁 인사가 되도록 늦게 오기를 ,엄마가 아직 오지 않은 이 유예 기간이 더 연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때로는 크스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엄마를 불러 세워서는 "다시 한 번만 키스해 줘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금방 엄마가 화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슬픔으로 상기된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양보해서 화해의 키스를 해 준다면, 이런 의식을 엉뚱하고 상식 밖이라고 생각하는 아머지 신경에 거슬릴 것이었고 , 엄마 역시 할 수만 있다면 키스에 대한 내 욕망이나 습관을 없애 주려고 애쓰셨기 때문에, 이미 방문까지 다 간 상태에서 한 번 더 키스해 달라는 내 요청을 받아 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조금 전에 엄마가 평화의 영성체에서 주는 밀떡처럼 내 침대 쪽으로 애정 어린 얼굴을 내밀고 기울인 순간, 내 입술이 엄마의 실제 존재와 잠들 수 있는 힘을 길어 올리려고 한 바로 그 순간, 엄마가 조금 전에 가져다 주었던 그 모든 평온함은 엄마의 화난 모습에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도 짧은 순간 내 곁에 머물렀던 이런 저녁들은 , 저녁 식사에 손님을 초대한 관계로 엄마가 저녁 인사를 하러 오지 못하는 날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손님은 거의 스완씨밖에 없었는데, 잠깐 들르는 몇몇 외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콩브레에서 우리 집에 찾아오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이웃 사람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 했고 (그러나 그가 저 형편없는 결혼을 한 후부터 이는 아주드물어졌는데,우리 부모님께서 그의 아내를 보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때로는 저녁 식사 후에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저녁때 집 앞 커다란 마로니에 나무 아래 놓인 철제탁자에 둘러앉았노라면 정원 한쪽 끝에서 종소리가 났다. '종의 줄을 당기지 않는" 집안사람들이 아무렇게 그냥 대문을 열 때 쏟아지는 차갑고도 멍하게 만드는 , 저 그치지 않는 요란하기 짝이 없는 쇠방울 소리가 아니라, 손님이 오면 수줍게 울리는 금빛 타원형의 종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두 번 들리면 우리는 곧 "손님이군 , 누굴까?"하고 물어보곤 했다.하지만 손님이 스완 씨일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고모할머니는 솔선수범하여 가르치려는 듯이 되도록 자연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수군거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찾아온 손님이 그걸 보면 자기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 여길 테니까 그보다 더 실례는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를 정찰병으로 밖에 내보냈는데 , 할머니는 늘 정원을 한바퀴 더 돌 구실을 얻은 데에 기뻐하시면서, 그 시간을 이용해 지나는 길에 장미꽃에 조금 더 자연스러움을 보여하려고 장미나무 받침대 몇 개를 슬그머니 뽑아 버리곤 하셨다. 마치 이발사가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 놓은 아들의 머리를 어머니가 손을 넣어 부풀리는 것 같았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 제 1편 스완네 집쪽으로'입니다.
위에 옯겨온 글은 소설 초반(민음사/김영희 옮김/p31~p35)에 배치되어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해 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옮겨온 글을 바로 이어가는 내용은 스완씨가 누구고 어떻게 우리집의 주요 손님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 어머니, 할머니,고모할머니의 성격이 어느정도 드러나고 스완씨의 등장이 예고되는데까지 옮겨왔습니다.
첫댓글 민음사에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