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둑 작은 도둑
며칠 전 회사에서 한 사원이 석유를 훔치다 발각되어 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 석유를 연료로 쓰는 공정에서 실무를 맡아보는 사원이 자신이 취급하는 석유를 훔치는 도둑이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도둑은 석유를 훔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석유통을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싣다 현장에서 잡혔다. 도둑은 자신의 집 보일러 연료로 쓰기 위해 훔쳤다고 실토 했다. 이런 전력이 몇 차례 있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는 그 도둑질로 권고사직 당했다. 쪽팔리는 일이다. 그가 훔친 석유는 값으로 따지면 몇 만원 밖에 안 나간다.
요 근래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져 스스로 사직한 사원이 몇 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 퇴근 하는 승용차트렁크를 일일이 검문검색을 한다. 이 일이 전산 메일로 뜨고 전 사원에게 교육이 실시되었다.
몇 푼 안 되는 물품을 훔쳐가다 해고되면 집에 가서 뭐라고 변명할까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자그마한 물욕이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비단 이런 일 뿐만 아니다. 탈의장에서 동료의 지갑을 털다 덜미를 잡혀 회사를 떠난 사원도 여럿이다. 모터를 훔쳐가다 발각되어 해고된 간부도 있다. 이런 좀도둑질이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큰 실익이 없으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도둑으로 한 번 낙인찍히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된다.
얼마 전에는 우리공장에서 니켈을 훔쳐가는 도둑을 잡은 일이 있다. 고철을 싣고 왔던 차량의 운전기사가 니켈 몇 통을 자신의 트럭에 싣고 가는 사건이었다. 이 일은 천장기중기운전자가 목격하고 정문경비에게 연락하였으나 그 때에는 도둑이 이미 정문을 나간 후였다. 이 일로 공장은 발칵 뒤집혔다.
경비가 현장담당부장에게 보고를 하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일이 이렇게 되면 현장실무자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장실무자는 신고를 한 목격자를 찾아와 "도둑맞은 일이 없다. 네가 잘 못 본 것이다."며 신고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달래고 어르고 애원하다 통하지 않으니 천장기중기운전자도 관련되었다면서 협박까지 하였다.
지상15m의 높이에 있는 천장기중기운전실에서는 공장 안 구석구석까지 보인다. 전에도 천장기중기운전자에 의해 도둑을 잡은 예가 몇 차례 있다. 이번에 현장을 목격 한 이 친구는 쇳물주입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목격하였다. 도둑의 현장은 고철장이며 고철장은 이 친구가 운전하는 천장기중기운전실의 정면에 있다. 고철을 싣고 온 차량기사는 마그네트기중기가 고철 하역작업을 마치자 차량을 밖으로 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쌓여있는 니켈 한 팔레트를 차량에 달린 집게로 집어 올려서는 차량에다 쏟아 붓고 철판을 덮어서 유유히 나갔다는 것이다.
신고는 이 상황에서 했어야 옳으나 쇳물주입작업을 하느라 할 수가 없었다. 이날따라 휴대폰도 가져오지 않았다. 천장기중기에 설치된 사이렌을 울렸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작업을 마치고 조괴 룸에 내려가 신고를 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도둑차량이 정문을 나간 후였다. 정문에서 도둑을 잡았으면 문제가 없었겠으나 도둑이 나간 후였기에 문제가 복잡했다.
목격자와 니켈을 관리하는 현장실무자는 한 공장에서 20여년을 같이 일해 온 동년배다. 목격자는, 자신의 얼굴을 봐서라도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애원하는 현장실무자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장자재를 총괄하는 자재담당자와 창고 자재담당자는 재고파악을 해 봤지만 숫자가 맞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니켈을 도둑맞지 않았다고 핏대를 세웠다. 빈 니켈 통이 증거물로 남아있지만 이것마저 의미 없다는 것이다. 용해, VOD, LF 등 제강공장에서 니켈을 쓰는 곳이 한두 공정이 아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목격을 하고 신고한 이 친구만 난처하게 되었다. 목격자 한 사람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도둑집단과 맞서 싸우는 꼴이 되었다. 일이 이쯤 되면 이미 회사 내에 도둑이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간 큰 고철차량운전기사라도 현장작업자들이 돌아다니는 공장에서, 더구나 대낮에 값비싼 니켈을 훔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훔치는데 성공한다 하여도 정문을 무사히 나갈 수 없다. 이런 일은 현장실무자와 현장자재담당자 자재창고직원과 정문경비와 연계되어있다고 봐야한다. 이들이 눈감아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 전 회사설립초기 때의 일이다. 정문에서 경비를 서는 경비원 한 사람이 밖에서 들어오는 석유를 누군가 차떼기로 갈취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 경비반장을 비롯해 회사실무자들이 조직적으로 연계되었다는 것까지 밝혔다. 그리고 세밀히 보고서를 작성하여 전무에게 전달했다. 큰 기대를 걸고 기다리던 경비원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이런 사실을 놓고 따져본다면 회사 내에 얼마나 큰 도둑집단이 조직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날 도둑맞은 니켈은 다섯 통이다. 한 통에 100만 원짜리 질이 낮은 니켈이다. 다섯 통이면 500만 원이다. 이 금액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그러나 이 금액이 회사를 망하게도 할 수 있고 흥하게도 할 수 있다. 니켈도둑질이 어찌 오늘뿐이었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해먹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니켈뿐일까? 우리공장에서 쓰는 합금철은 그 종류가 많다. 니켈보다 몇 곱 비싼 것도 부지기수다. 이번 일을 철저히 밝혀 책임질 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운다면 회사는 흥할 것이고 유야무야 넘긴다면 회사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기업이 자재만 제대로 관리해도 적자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회사든 자재과에 몇 년 근무하면 집이 한 채 생긴다는 이야기는 헛말이 아닐 것이다.
범죄현장을 목격하고 신고를 한 이 친구는 성격이 보통이 아니다. 사무실에 불려 다니고 현장실무자에게 시달리면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낌새가 보이자 부장을 찾아가 진상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으면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며칠이 지나 긴급회의가 열렸다. 신고자, 현장실무자, 자재담당자, 정문경비, 도둑질한 차량기사 등을 앉혀놓고 부장은 신고자에게 도둑을 지목하라 했다. 도둑을 면전에 앉혀놓고서 말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신고자는 다행이 니켈을 도둑질한 운전기사의 얼굴을 알고 있다. 몇 년째 드나드는 기사다. 결국 이 사건은 고철차량운전기사가 도둑질한 사실을 인정하고 훔쳐간 니켈을 다시 갖다놓는 조건에서 마무리 되었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간의 여죄는 물론 관련자도 밝히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무야유야 넘어갔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도둑질한 차량기사를 긴급회의 때 회사로 불러들이기 위해 자재담당자 세 사람이 기사를 찾아가 애걸복걸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현장실무자는 부장을 찾아가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확 불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일에 가장 책임이 큰 현장실무자에게 어떤 문책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책은 고사하고 모범사원 표창장이 수여되었다.
이번 일은, 도둑질을 하려면 크게 하라는 말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몇 푼 가치도 없는 좀도둑에게는 해고라는 사형을 내리고 중벌로 다스려야할 도둑에게 표창장을 주는 회사다. 한 치의 부조리도 발붙이지 못한다는 투명경영과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정신으로 원가절감만이 살길이라던 이념이 헛구호였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회사가 바뀌면서 혹시나 했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부조리 없는 투명경경은 참으로 이루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제 누가 원가절감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저울에 일일이 달며 애를 쓰겠는가. 이번 도둑사건의 미숙한 처리가 부패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여 씁쓸하다.
첫댓글 도벽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저의 오래된 고민입니다. 생계형 도벽의 아이들이 있고 심리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빈부격차가 만연한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별로 현장별로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큰도둑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리고 아무 생각없는 작은 도둑, 병든 아이들을 보면 온몸과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큰도둑들을 잡아야 작은 도둑들도 처벌할 명목이 생길텐데, 큰도둑질을 하는 지배계급을 손도 못대고 있으니, 무슨 면목으로 어리고 작은 아이들을 처벌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니 매번매우 고민...
3년 전, 창원기능대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는데, 수업 중 교수가 사람이 해선 안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누가 "도둑질이요." 교수는, 그럼 굶어 죽을 상황에서도 얌전히 굶어 죽을 것이냐고 반문하더군요.
이 문제는 깊이있는 토론으로 해결책을 찾아봐야 할듯....
사람 사는 곳에는 꼭 도둑이 들끓습니다. 큰 도둑은 보호를 받고 작은도둑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지요.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겠지요.
진짜 노동자의 이야기를 써서 올려달라고, 저번 달에 한걸 형님께 부탁을 드렸는데....드디어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산문방 하나 별도로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언제 또 뵙고 싶습니다.
나도 생산현장의 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다는 것은 알지만 질이 문제겠지요. 부족하지만 가끔씩 올릴 것이니 쓴소리 좀 해 주구료..
태초에 도둑이라는 글자를 만든 놈들은 큰 도둑들이었죠. 수많은 작은 도둑들의 안녕을~~~~~~ ^^*
이런 세상 속이 당연한 듯 살고 있습니다. 부조리죠. 부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