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칸 산사 방문
탁발이 있는 곳에는 많은 사찰이 있기 마련이다. 치앙칸 지역에도 ‘차이콩 로드’에 있는 ‘왓 씨큰 무앙’과 ‘왓 타크록’을 비롯하여 ‘왓 스리파놈우맛’, ‘왓프라 풋타밧푸 콰이 느곤’ 등 여러 곳이 있다. 치앙칸 강변 가까이에 있는 ‘차이콩 로드(chai Kong Rd.)’의 중심부에는 2 개의 사찰이 있다. 어느 사찰이 유명한 사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중에서 필자는 ‘왓 스리파놈우맛’에서 보름날 탁발 행사를 하였다. 그동안 산사는 한 곳만 방문하였기 때문에 치앙칸 외곽 산위에 있는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을 방문해 보았다. 태국의 방콕이나 수코타이 이런 지역은 평양지대인데 ‘러이’를 중심으로 한 ‘치앙칸’ 지역은 산으로 둘=러 쌓인 지역이었다. 이 산들은 한국의 산처럼 높지 않고, 위압적이지 않는 산들이었는데 산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촘촘히 자라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대나무도 보였고, 바나나 나무들도 보였는데 어쨌든 멀리서 보면 파란 색으로 보였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이 사찰은 큰 도로에서 차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금 들어가니 불상과 정령신앙의 모습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조형물들이 함께 줄지어 있었다. 또 중국 불교적인 모습도 함께 보였다.
일반적으로 태국의 사원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태국인들은 사원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수록 부처님에 대한 불심이 깊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이유 외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관심을 끌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한다.
숲속에 난 도로를 따라 차로 약 5분간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큰 건물이 보였는데 설법전처럼 보였다. 대탑은 최근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밑에서부터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계단은 약 40개 였다. 탑 입구 부근에는 복권을 파는 사람 한 명과 향이나 부처님 공양물을 파는 여신도 한 사람이 있었다. 탑안은 15평정도 되어 보였는데 4개의 문이 있었다.
이 사찰의 상징인 소(버팔로)가 탑 문의 문양에도 있었고,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태국은 코끼리, 거북 등 동물을 숭상하는 민간신앙이 곳곳에 있다고 한다. 이런 영향인지 모르겠다. 사찰은 탑과 설법전은 낮은 지대에 있었고, 높은 지대에는 버팔로 동상과 커다란 불상을 모신곳, 화장실 등이 있었다.

왓 스리파놈우맛 탁발 후 식사

사원 경내에 살고 있는 토끼들
화장실은 아주 깨끗한 상태로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불상이 있고, 산토끼가 아닌 사찰에서 기르는 토끼들이 아주 많았다. 많은 토끼를 기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신도들이 매우 드물게 찾아 왔는데 내가 나가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스님들은 볼 수가 없었다.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사원은 1757에 설립되었다. 과거에 폐허가 되었던 사원이었으나 순례길에 오른 승려들이 중간에 짐을 오래 사용한 우산을 고치거나 기도를 하기 위해 들리곤 했다. 1937년 종교부에서 사원으로 승격하였다.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사원에는 성스러운 보배가 있는데 바로 부처님의 발자국(불적도)이다. 이 불적도는 숫돌 위에 보존되어 있는데 갈라진 틈들이 보이고 설명이 적혀 있지는 않다. 그 모양으로 볼 때 정말 부처님의 발자국으로 보이는데 대리석에 새겨진 부처님의 원래 발자국 모양과 같다. 란창 문명 시대인 22-24대 불교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에 보수되고 장식이 더해진 것 같다. 발가락의 모양이 같으며 소용돌이 문양의 장식이 있으며, 발바닥 가운데는 법륜모양의 꽃잎 모양의 패턴 장식이 그려져 있다. 1935년 3월 8일 역사적 유적지로 등록되었다.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 전경

사원 경내에 있는 버팔로 조형물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 대탑

왓프라 풋타밧 푸 콰이 느곤 불적도

대탑의 문에 새겨진 버팔로 문양
불적도는 산 정상의 가운데 이 지방의 방언으로 “웁뭉”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물 안에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동쪽의 마을 이름이 웁뭉이 되었고, 훗날 변형되어 반우뭉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내려오는 전설에 들소들을 먹이러 사찰 근처로 가곤하던 농부가 있었다. 순례중인 스님들이 그곳을 지날 때면 이 농부는 스님들께 음식 공양을 하곤 했다. 스님들께 음식 공양을 올린 공덕이 쌓여 이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농부는 자신을 도와 열심히 일한 들소에게 감사한 마음을 실어 들소를 콰이 느곤 (돈들소)이라 불렀는데, 그래서 이 사원의 이름이 ‘왓 프라 푸타밧 푸 콰이 느곤’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농사지으면 잘 살게 된다 하여 많은 농부들이 이 사원 근처로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니 그 이름이 누뭉 마을이 되었다. 누뭉이란 발음은 위에 말한 웁뭉 (부처님의 거룩한 발자국을 보호하고 있는 건축물의 이름) 이 살짝 변형된 것이다. 그 산은 “푸 콰이 느곤” (돈 들소 산) 이라 불린다.
아래의 글은 불적도에 관한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글이다.
‘고대’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부처님은이처럼 항상 걸어 다니며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고, 걸어 다니며 자신의 가르침을 폈다. 그래서 그런지 가르침에 귀의한 사람들이 부처님께 올리는 최상의 예경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는 - 이를 ‘불족정례(佛足頂禮)’라 한다 - 것이었다. 적지 않은 경전에 나오듯 부처님의 발을 물로 씻어주는 것도 최상의 예경에 속했다. 부처님이 ‘가 계시는 곳’에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기에, 부처님의 발은 곧 진리를 전하는 표상(表象)이었던 것이다.
이런 전설도 있다. 〈장아함경〉 권4 ‘유행경’, 〈사분율〉 권54 ‘집법비니오백인’ 등에 따르면 상수제자 대가섭 존자는 부처님이 열반할 때 곁을 지키지 못했다. 입적 소식을 듣고 500제자를 거느리고 달려왔을 때 부처님 몸은 이미 입관한 뒤였다. 장의(葬儀)를 주관하는 아난존자에게 “부처님의 열반하신 모습을 보여 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했지만, 아난존자는 “이미 입관했기에 불가하다”며 거절했다. 대가섭존자가 다비(茶毘)하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 모셔놓은 관 앞에 나가 예배하는 순간, 나무와 천 등으로 겹겹이 쌓인 관 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나와 - 곽시쌍부(槨示雙趺)라 한다 - 대가섭존자에게 유훈(遺訓)을 남겼다고 한다. 부처님 발에 대한 이러한 사모(思慕)와 예경(禮敬)은 ‘불족적(佛足跡)신앙’을 낳았다. 부처님이 입적하고 불상이 탄생하기 전까지 - 불상이 없던 이 때를 ‘무불상(無佛像)시대’라 부른다 - 불족적은 보리수.법륜.빈 대좌 등과 함께 부처님을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파키스탄 스와트의 붓카라 제1사원지에서 출토돼 스와트박물관에 보관된, 1세기경 조성된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 조각의 계단에, 부처님을 대신해 새겨진 ‘작은 발자국’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불족적 신앙이 형성됐다.
불족적은 대승불교권 보다는 남방불교국에서 더 성행하였다. 아래는 이에 관한 글이다.

사원 경내에 있는 불상

치앙콩Wat Srikhun Muang 사 거리사찰

치앙 콩 거리에 있는 Wat Srikhun Muang 사찰

치앙콩거리끝사찰입구

치앙콩사찰거리끝에 있는 사찰
1. 불족적의 유행
탑과 더불어 무불상시대(불상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예배드렸던 대상이 불족적이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뜻하는 불족적(佛足跡)은 주로 돌 위에 새겼기 때문에 불족석(佛足石)이라고도 불린다. 불족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누구나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고 존경하고 기뻐하면 한량없는 죄업을 소멸한다고 하여 예로부터 이것을 만들어 숭배하고 공경하는 일이 유행하였다.’고 되어 있다.(『불교사전』, 동국역경원)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의 남방불교권에서는 불족적을 돌에 새기거나 그리는 것이 대단히 유행한 반면 중국, 한국, 일본 등 북방불교권에서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방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고 존경하거나 기뻐하지 않아도 죄업을 소멸시킬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지역 환경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남방불교권과 북방불교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연 환경일 것이다. 남방불교권은 날씨가 따뜻해 겨울에도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지만 북방불교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릴 정도로 북방불교권의 한겨울 추위는 혹독하다. 자연히 두 발은 양말이나 신발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다보니 맨발의 중요성이 반감된다.
그렇다면 남방불교권에서는 어떠한가. 날씨가 따뜻해서 맨발로 다녀도 무방하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수행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도 맨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므로 불족적의 유행을 단순히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고 존경하고 기뻐하면 죄업이 소멸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맨발로 다닐 수 있는가, 없는가의 환경과의 관련성에서 찾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부처님의 상징( 조정육 글 )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필자는 아유타이와 방콕의 많은 사찰에서 열반상을 볼 수 있었다. 이중에서도 방콕의 ‘왓포’사원의 거대한 열반상 불적도는 많은 관람객들의 참배의 대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