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주년 기획 '6ㆍ25 순교자 믿음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성당' - ⑤ 서산 동문동성당
| ▲ 6ㆍ25 전쟁 당시 두 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서산 동문동성당은 대전교구에서 처음으로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아름다운 성당이다. 평화신문 자료 사진 |
옥녀봉으로 유명한 서산 부춘산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동문동성당(옛 서산성당)은 뿌리 깊은 순교 신심을 반석으로 세워진 성당이다. 이 본당 신자들은 1935년 4월 현재 해미 순교탑이 서 있는 해미 하천변 생매장지를 발굴,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을 수습, 상홍리 순교자 묘지를 조성해 안장했다. 또 1956년에는 병인박해 때 형구로 사용된 해미 자리개 돌을 해미 서문 밖에서 성당으로 옮겨왔고, 해미성지를 조성했다.
해미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 신심으로 세워진 동문동성당은 순교자의 삶을 닮은 듯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절제된 건축미를 보여준다. 단순 명료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 때문에 성당은 대전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2007년 4월 30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로 지정됐다.
서산 동문동성당은 제6대 주임 바로 신부에 의해 1937년 10월 5일 신축, 봉헌됐다. 바실리카 평면 구조에 고딕양식 종탑이 있는 지극히 단순한 모양이다. 장미창 하나 없고 벽돌 한 장 얹지 않은 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바닥은 마루이고 외벽은 흰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너무나 간결한 성당이다.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문동성당을 지은 바로 신부는 1946년 1월 초 전염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신자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성체를 영해 주던 중 환자가 성체를 삼키지 못하자 대신 영하고 감염돼 선종했다. 환자의 입에서 나온 성체를 자신이 영하면 분명 전염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 성체께 봉헌된 거룩한 죽음이었다.
이후 1948년 8월 제9대 주임으로 부임한 콜랭(한국명 고일랑) 신부는 6ㆍ25 전쟁 당시 1950년 8월 16일 인민군에 체포돼 대전 목동 수도원으로 압송, 감금돼 있다가 9월 23~26일 사이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그러나 대전으로 압송되던 중 폭격을 받고 폭사했다는 증언도 있다.
동문동성당엔 또 한 명의 6ㆍ25 순교자가 있다. 상홍리공소 백낙선(요한 사도) 회장이다. 피신 중이던 그는 본당 주임 콜랭 신부가 인민군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성체와 성당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성당으로 돌아왔다. 수차례 체포와 석방을 반복하다 1950년 9월 12일 밤 11시께 서산 음암면 도당리 일곱 거리로 끌려가 공산당을 지지하던 남녀 주민 150여 명에게 몽둥이와 삽,곡괭이 등으로 전신을 맞고 순교했다.
서산 동문동본당은 2007년 7월 본당 설립 90주년을 기념해 성당 뒤편에 '바로 동산'을 조성하고 바로 신부 묘비와 6ㆍ25 순교자 콜랭 신부 추모비를 세웠다.
2007년 본당 설립 9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 동문동본당은 1년 후인 2008년 10월에는 10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해 주변을 의아하게 했다. 이전까지는 안학만 신부가 금학리에 부임한 1917년을 설립연도로 알았으나 1908년 5월 9일 공리에 설립된 수곡본당이 본당 역사의 시작으로 알고 바로잡은 것이었다.
여하튼 서산 동문동성당은 2008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성당 소제대에 안치하고, 1937년 현 성당 준공 당시의 옛 제대와 옛 감실을 복원하여 축복했으며, 100주년 기념비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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