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사회적 책임에는 고용의 질도 포함되어야 한다.
남우근 /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정책위원
“일터의 코로나 바이러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는 시국을 빗대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외치는 구호이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전염병처럼 일터의 비정규직 문제도 위험사회의 한 징후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 만큼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사회 양극화의 핵심 요인이며, 적극적인 대처가 없으면 전염병이 그렇듯 노동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대학도 비켜가지 않는다. 대학을 일컬어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미 대학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이유가 법적 사용자 책임 회피와 비용절감을 통한 초과이윤 획득이라고 했을 때, 교육기관인 대학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인력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서는 작년에 경기도 소재 대학교를 대상으로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대학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고용의 질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본다.
대학의 비정규직은 직접고용(무기계약직, 기간제 직원, 단시간 직원, 비전임교원, 조교 등)과 간접고용(용역, 파견)으로 구분되며, 간접고용은 대체로 청소, 경비, 시설관리, 주차관리, 식당조리원 등으로 구성된다. 이외에 대학이 설립해서 운영하는 산학협력단에서도 다수의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의하면 경기도에는 대학교 37개, 전문대학 34개, 대학원 대학 15개 등 86개 대학이 소재하고 있다. 전국 대학 463개 대비 19%에 달한다. 대학알리미 공시자료 중 ‘직원 현황’을 살펴보면, 경기지역 4년제 대학교 36개의 계약직 직원은 2018년 기준 1,466명으로 전체 직원의 36.4%를 차지한다. 임금은 정규직 연봉의 56.1% 수준인 2,712만 원이다. 전체 인원은 2016년 대비 2018년에 6.2% 증가했다. 이 중 계약직은 2016년 대비 2018년에 18.4% 증가했다. 계약직 중심으로 충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지역대학 직접고용인력 현황>
<경기지역대학 직원 연봉 비교(2017년, 천원)>
대학알리미에는 직접고용 인력현황만 공시되어 있다. 따라서 간접고용까지 포함된 비정규직 현황은 파악하기가 어렵다. 연구소는 전체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경기도 소재 59개 대학을 대상으로 인력현황 조사를 진행했다. 대학알리미에는 없는 간접고용 인력과 산학협력단 인력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조사 결과, 전체 인원 중 정규직은 13,358명(37.5%), 직접고용 비정규직 19,159명(53.8%), 간접고용 비정규직 3,078명(8.6%)이다. 비정규직이 합쳐서 62.4%를 차지한 것이다. 산학협력단만 구분해서 보면, 전체 조사 인원 1,247명 중 정규직은 150명(12.0%)에 불과했다. 무기계약직이 74명(5.9%), 기간제가 1,023명(82.0%)이다. 비정규직이 88%인 것이다. 대학의 비정규직 비율이 놀라울 정도다. 정의를 추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역할이 상실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인력활용에서 시장논리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대학이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서 국공립대학의 비정규직은 간접고용을 포함하여 정규직화 되었다. 물론 정규직화라는 것이 대개는 무기계약직 형태여서 아직도 개선할 여지는 있지만 대학의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계기가 마련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국공립대학에 머물러있다. 경희대, 동국대 등 일부 사립대에도 간접고용으로 활용하던 청소, 경비업무를 직접고용을 전환한 사례가 있지만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국공립대학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사립대에도 준용되어야 한다. 대학은 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크고 작은 재정적 지원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공공영역의 한 부분이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듯 대학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대학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무이다.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대학 내의 노동법 위반 문제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작년 설문조사 대상자의 절반 정도가 최저임금 미달자로 분류되었다. 최저임금 경계선에서 임금이 지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9년 1월에는 대학 산학협력단의 노동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 언론화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 36개 대학 산학협력단에서 총 182건의 법 위반 사항을 확인하고 179건은 시정지시를, 나머지 3건은 과태료를 부과한 것이다. 대학교가 노동법의 사각지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산학협력단만이 아니라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 대해 노동법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위반시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둘째, 경기도가 주도해서 정규직 전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국공립대학 정규직 전환 사례를 준용해서 사립대에도 간접고용의 직접고용 전환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다.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용역 형태로 수행되는 업무의 경우, 용역비용의 15~20%(부가세 10%, 일반관리비 5% 내외, 이윤 5% 내외)는 직접고용 전환시 절감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총 비용의 상승 없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면서 직접고용 전환을 할 수 있다. 대학이 직접고용을 꺼려하는 이유는 노무관리에 대한 부담이다.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임금체계 수립, 인사관리 방식에 대한 교육 등 지자체가 지원을 해주면 대학이 보다 안정적으로 직접고용 전환을 할 수 있다. 경기도가 매년 관내 40여개 대학에 총 80억 원 정도를 지원(1개 대학 당 2억원 정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직접고용 전환 협약 체결 대학에 지원금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대학을 견인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용문제에 대한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 고용의 질 지표’를 개발해서 사회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여론화를 통해 고용의 질 개선을 위한 대학의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그 동안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임교원 확보율, 전임교원1인당 학생수 등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평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용주체로서의 대학의 책임도 강조되어야 한다. ILO의 일자리 질 측정 지표 등을 참조해서 고용형태 개선, 노동권 보장 등의 내용을 포함한 평가지표를 만들고, 대학정보 공시제를 활용해서 사회적 확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기관의 고용이 안정되었을 때 학생들이 노동의 가치를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에서 먼저 시작해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