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문과 규한이가 모처럼 애비노릇 하기 위해 남해바다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충 부산-통영-남해 일대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두 가족이 함께 가려면 렌트카로 움직여라”
김남수의 조언으로 스타렉스를 빌렸다. 운전은 종문이, 조수는 규한이다.
어라~ 상어가 머리 위를 헤엄치네
종문네 집에서 장장 다섯시간을 달려 부산 해운대 아쿠아리움에 도착했다.
지하 3층 구조로 되어 있는 아쿠아리움은 사방이 거대한 수족관이다. 상어가 머리 위에서 헤엄치고 온갖 크고 작은 물고기가 자태를 뽐내며 무리를 지어 유유히 떠다닌다. 아이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물고기 떼를 쫓아간다. 달리는 아이들 옆에서 펭귄들이 헤엄치며 따라온다. 그 장면을 뱀 목 거북이가 긴 목을 쭈욱 빼고 쳐다본다. 조금 머리가 굵은 종문의 아이들은 사진 찍기보다 물고기 관찰에 열중하더니 금세 흥미를 잃는다. 이런 수족관엔 많이 다녀 봐서 시시하단다. 철없는 딸내미들은 신기한 물고기들이랑 눈을 마주치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 일곱 살짜리는 물고기랑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한다.
새우깡에 환장한 부산 갈매기
아쿠아리움에서 빠져나오니 바로 해운대 모래사장이다. 드문드문 거니는 사람들 옆에 갈매기떼가 엄청 많다. 새우깡을 던지면 수십마리가 순식간에 달려든다. 그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은 계속 새우깡을 던진다. 파도를 헤치며 물고기를 잡는 야생은 상실하고 사람이 던져주는 모이만 찾는다. 그런 점에서 부산 갈매기는 이미 하얀 비둘기일 뿐이다. 여하튼 해운대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넓다. 해수욕장 바로 옆에 고층 빌딩들이 솟은 풍경은 외국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모습과 비슷하다.
우정이 넘치는 통영 자연산 회
저녁때가 되어 가거대교를 건너려다 길을 못찾아 좀 허둥댔다. 몇바퀴 같은 길을 돌다가 가거대교는 포기하고 통영으로 바로 내달렸다.
통영에 들어서니 금옥 친구가 달려와 전복과 돔 등 맛있는 자연산 회를 잔뜩 건네주고 “오늘은 바쁘니 내일 보자”며 돌아간다. 숙소인 금호리조트에 도착해서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은 바다 회는 차라리 감동이다. 어린시절 고향을 떠나 머나먼 통영에서 빚어낸 지고지순한 향수다. 이것보다 더 진한 정이 또 있을까. 금옥 친구의 정성이 듬뿍 담긴 회를 한입 가득 넣고 찬 소주 한잔 마시니 살살 녹는다.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봄은 이미 상륙해서 힘찬 북상을 준비 중이다
둘째 날, 금옥 친구에게 전화로 여행 조언을 구했다. 거제도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외도와 해금강을 둘러보란다. 유람선 출발 시간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선착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근처에 있는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아담한 언덕에 자리잡은 조각공원엔 봄이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야자나무가 시퍼런 잎을 펼치고 바닷바람을 즐긴다. 탱글 탱글한 동백꽃 봉오리들은 잔뜩 부풀어 올라 살짝만 건드려도 붉은 꽃을 톡 터트릴 것 같다.
해금강을 왜 이제야 왔던가
조각공원 산책 후에 유람선을 타고 돌아본 해금강은 환상이다.
사자바위 십자동굴 독수리바위 등 온갖 기암괴석들이 수십미터씩 깎아지른듯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푸른 파도를 받아내고 있다. 바위 꼭대기엔 가마우치 몇 마리가 듬성듬성 앉아서 물고기사냥에 지친 날개를 쉬고 있다. 남해의 바닷물은 정말 맑다. 고려청자는 아마 저 바다색에 가장 가까운 것이 진품일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바다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풍경과 에메랄드 빛 바다에 한참을 취해 넋을 놓았다. 찬 바닷바람은 일상에 찌든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준다.
조경예술의 종결자 외도!
해금강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외도는 잘 가꿔진 식물원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조경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섬. 오를수록 다양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풍경에 그저 감탄을 연발할 뿐이다. 이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엄청난 노동과 인내와 눈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입구부터 오르막을 따라 향나무와 측백이 풍만한 모습으로 환영한다.
잔뜩 부푼 동백꽃봉오리들은 이제 막 그 붉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아~ 숨 막히는 유혹이다. 꽃봉오리가 어떻게 저렇게 농염하고 섹시하게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을까. 바람이 저 동백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고 파도 소리가 그리움을 참지 못하게 했으리라. 저 꽃봉오리가 곧 툭 터질텐데, 그때 외도를 찾는 선남선녀들 큰 일 났다. 자칫 저 동백에 홀려 진짜 외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동백나무에서 한모퉁이 돌아가니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아폴론과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네 여신이 나란히 자태를 뽐낸다. 둥그런 콜로세움이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둘러 서 있다. 전망대에서는 희미하게 대마도가 보인다. 조선 세종시절 이종무가 정벌한 옛 우리 땅이다. 또 다른 전망대에는 풍요의 상징인 데메테르 여신이 바다를 굽어본다. 평소 외도를 보고 싶다던 아내는 꽃피는 봄에 아이들 떼어놓고 둘이서 꼭 다시 오잔다. 종문이가 “기둥뿌리 뽑을려고 작정을 한다”며 놀린다.
유럽을 닮은 바람의 언덕
외도에서 통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동 몽돌해수욕장과 바람의 언덕을 들렀다. 몽돌해수욕장은 파도가 동글동글한 검은 돌만 실어다 놓은 신비의 해변이다.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크기다. 물수제비하기 좋을 정도로 한손에 쏙 들어온다. 한겨울인데도 뜨거운 피를 주체 못하는 젊은 친구들은 괴성을 지르며 바다 속으로 달리기를 한다.
가까운 거리에 ‘바람의 언덕’이 있다. 말 그대로 바람이 너무 불어 바람의 언덕이다. 꼭대기에는 네델란드 풍차가 쉴 새없이 날개를 돌린다. 완만한 잔디 둔덕과 풍차가 어울려 유럽의 어느 시골 풍경을 그려낸다.
다도해 섬들의 숲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황혼녘의 낙조가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웠다. 하늘이 황금색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먼 섬에서부터 어둠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섬 그늘이 어둑어둑해져도 바닷물까지 황금색으로 물들여 불 태운 다음에야 태양은 제 역할을 다하고 서쪽 섬 저쪽으로 뜨거웠던 하루의 몸을 감춘다.
세명의 동창, 옛이야기에 밤이 짧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통영 중앙시장에 들러 싱싱한 꼴뚜기와 굴, 멍게를 샀다. 금옥 친구가 오기로 했다. 종문과 통화해서 우리를 집으로 몇 번이나 초대 했는데 내 마누라가 초면에 너무 실례라며 극구 사양했다. 콘도에서 돌아다니느라 배고팠던 아이들에게 오리고기를 구워주니 게 눈 감추듯 다 먹어치운다. 어른들의 술상을 차려놓자 금옥 친구가 둘째아들과 함께 방문했다.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데도 복스러운 얼굴이 옛모습 그대로다. 꽤 젊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보다 몇 살 아래인 마누라가 “정말 젊어 보인다”며 금옥친구가 돌아간 다음에 부러움을 가득 담은 한숨을 폭 내쉰다.
방금 바다로 들어간 고성 공룡 발자국
마지막 날은 고성 공룡박물관을 거쳐 남해로 향했다. 공룡박물관 아래 바다는 우리를 수백만년 전으로 데려갔다. 바닷가엔 수많은 세월을 잘라놓은 층리 절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절벽 아래엔 평평한 바위 위에 물 속으로 걸어들어간 공룡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발자국이 어찌나 선명한지 방금 육중한 몸의 공룡이 바위를 딛고 지나간 것 같다. 아이들은 공룡 발자국을 따라 걷더니 이내 바위에 붙어있는 수천마리의 홍합덩어리를 더 신기해 했다.
남해의 은빛 파도 쪽빛 바다... 그 치명적 유혹
남해 미조항을 향해 한시간 이상 달렸을까. 삼천포 다리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탄성을 자아냈다. 은빛파도 넘실거리는 쪽빛 바다는 치명적 유혹이다. 이제껏 우리나라에 이런 경관이 있는 줄 몰랐다. 종문이는 운전하면서도 연방 셔터를 눌러댄다. 언덕위의 독일마을은 유럽의 시골 그대로다. 유럽식 고급 주택들이 뾰족한 황토색 지붕에 하얀 벽을 하고 남해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도착한 미조항은 그렇게 아기자기할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며칠만 푹 쉬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멀고 가까운 섬들이 먼 바다의 파도를 막아주고 그섬 사이사이로 그어져 있는 바다 수평선은 그대로 태평양을 향한다. 짧은 방파제를 둑 삼아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옹기종기 매어져 있다. 길가엔 꿰메다만 그물과 어구들이 듬성듬성 널려있어 한가롭다. 바닷물은 맑아 그 깊은 모래바닥과 해초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아내는 “이곳에 섬 하나 사서 이사 오자”고 조른다. 종문이는 “이제 남해를 절대 무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오길 잘했다. 여행은 이 맛에 하는 거다.
여행은 감동이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특별한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너무나 많은 감동을 안고 돌아왔다. 그렇다.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빡빡한 스케줄은 필요없다. 그저 떠날뿐이다. 한발 한발 충실히 내딛는 그 순간 속에 삶이 있고 멋진 풍경이 있다. 여행을 닮은 우리네 삶은 돌아서면 추억이고 이제 곧 다가올 미래는 희망이다. 그래서 여행은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번 여행을 함께한 종문가족과 우리 가족에게 고맙다. 특히 통영에서 우리 일행을 환영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금옥 친구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이번 여행의 MVP는 종문이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한번도 지친 내색을 하지 않은 그 묵직한 책임감에 박수를 보낸다. 숙소에서는 분위기 메이커로 모두를 즐겁게 해 줬다. 일행의 안전과 스케줄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이번 여행의 헌신상은 금옥이다. 친구의 환대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 무엇보다 주요 관광명소를 콕 찍어 조언해 준 덕분에 남해안의 진수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조언이 아니라면 아마도 우리 일행은 남해안의 그림같은 수많은 경관을 놓칠 뻔 했다.
첫댓글 이친구 글 정말 잘쓴다 글에 힘이 있다 드림니다 그리고 고맙네 친구야
그리고 항상 놀자 판인듯 싶어서 심심한
우정은 언제나 멋진 것~좋은추억 많이 만들었네..금옥친구 얼굴 보여줘서 고맙고 반가워~^^
^^*
명절에 주부들은 언제나 바빠~
조카들 모두 보내고 이제 청소하고 돌아서서 느긋한 마음으로 컴으로 고고씽~ ㅎㅎㅎ
친구들 만나서 내가 젤 방가웠던것 같애 나이들면서 친구가 그립다드만 그 말에 백만스물두표~!!인정하며
다음에 다시 만나길 소망해본다 ㅎㅎ
금옥아 !!얼굴보니 반갑네...
친구들 만나 좋아겠어~~여행다녀온 친구들 덕분에 좋은 구경했네~~^^
올 한해 웃음가득한 한해되길~~
어쩜 내가 다녀온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정감 있는 글귀네~~ 고맙네 칭구~~ 봄 꽃 만발할 즈음~~ 외도는 행복 그자체라네~~ 행보칸 여행~~ 좋은하루 되삼~~~
내가 본 통영이랑 그 맛이 천지차이군!!! 차라리 이 글을 읽으니 한층 반갑고 정겹고 좋구만...ㅎㅎㅎ 금옥이 옛모습 그대로야... 넘 방가*^^ 가끔 올라오는 여행기에 내마음 언제나 훌훌... 고맙네 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