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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莞島) - 빙그레 웃는 섬
섬 이름은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장보고가 완도읍 장좌리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45%)을 겸한다. 간석지가 넓고 기후 조건이 좋아 전국 제일의 수산양식지로 꼽힌다.
완도 문화관광 http://tour.wando.go.kr/
국립공원 기행 보길도
http://tv.knps.or.kr/vod/vod_sub_t.aspx?muCode=15&vIdx=1494&Page=1
국립공원 기행 청산도
http://tv.knps.or.kr/vod/vod_sub_t.aspx?muCode=15&vIdx=1487&Page=1
보길도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35102
조약도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75814
청산도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74876
고금도(古今島)
문화재로는 묘당도 이충무공유적(廟堂島李忠武公遺蹟:사적 114), 우수영 전진도첩(戰陣圖牒:전남문화재자료 163), 옥천사(玉泉寺), 덕동리 패총(德洞里貝塚), 가교리 석성지(駕轎里石城址), 청룡리(靑龍里) 가마터와 고인돌[支石墓] 등이 있다.
고금도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께서 1598년 본영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초유의 대 수군 재건에 온 힘을 기울인 곳으로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본영(정유재란)이며, 노량대첩에서 전사한 장군의 영구를 아산으로 모시기 전 83일 동안 봉안하였던 고장이다. <고금도 유자>
보길도 윤선도 유적(사적 제368호), 원림(園林명승 제34호)
문화재청 사이버문화재탐방 보길도[甫吉島] 윤선도 유적
http://www.heritage.go.kr/visit/cyber_2008/index.html
윤선도는 1637년(제16대 인조 13)부터 1671년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이나 이곳에 드나들며 글을 쓰며 생활 했는데 햇수로는 13년이나 되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많다.
윤선도는 지금의 종로구 연지동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시인.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가문에 태어나서 집권세력인 서인 일파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황급히 강화도로 피신했다. 이때 해남에 낙향해 있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왕을 돕기 위해 수백 명을 이끌고 강화도로 향했으나 도중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세상 볼 면목이 없다며 뱃머리를 제주도로 향하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보길도 황원포에 상륙했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아예 눌러앉았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보길도의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격자봉(格紫峯.425)에 올라 지세를 살핀 윤선도는 마치 연꽃이 피어나는 듯 한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는 산 아래에 살림집 낙서재(樂書齋)를 짓고서 유명한 시가와 저서를 집필하였다.
낙서재(樂書齋)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서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곳이다.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석실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다. 무민당(無悶堂)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
곡수당(曲水堂)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이다.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석정(石亭)·석가산(石假山)·연못·화계(花階)·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造苑)이 베풀어진 곳이다.
동천석실(洞天石室)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독서처로 동천석실이라는 한 칸 집의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변의 석문, 석천, 석폭, 석대도 장관이다.
세연지(洗然池)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판석(板石)으로 만든 보(길이 11m, 너비 2.5m의 돌다리)를 설치하여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이다
세연정은 유희의 공간이었다. 닭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윤선도는 독서를 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오후가 되면 가마에 술과 음식을 담아 무희와 함께 세연정으로 향했다. 악공들의 연주소리에 인공의 연못 사이로 작은 배를 띄워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며 술과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신선들의 놀이터 같았을 세연정의 풍경은 현재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상상할 수 있다. 낚시를 즐기던 칠암바위, 인공폭포와 구름다리의 구실을 겸한 판석보, 악공들의 연주를 위하여 석축으로 쌓은 단상인 동대, 서대 등이 자리 잡았고 산 중턱의 옥소암으로 악공과 무희를 보내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이 연못에 비추는 모습도 즐겼다 하니 생각만으로도 대단하다.
판석보(板石洑)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며,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한국 정원의 독특한 유적이다. 이것은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사투암(射投岩)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한 바위.
전라남도기념물 제37호인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은 윤선도의 유적지이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중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심취되어 부용동에 연못을 파고 세연정(洗然亭)을 세워 선유를 즐기며 불후의 명작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남겼다.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유적지로 유명한 완도군 보길도에 관광정보센터가 건립된다. 완도군에 따르면 세연정 인근에 전통한옥 형태의 전시동과 관리실, 매표소 등을 건립할 계획으로 내부 전시물은 보길도의 자연과 고산 윤선도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운다는 것.
보길도 송시열 글쓴바위
『여든세살 늙은 몸이 만경창파를 해치며 바다를 가는 구나......』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시로 표현하여 바위에 새겨놓았다. 이후 우암의 후학인 임관주라는 사람이 1707년 같은 바닷길로 유배를 가다 이곳에 들러 『동국의 』라는 오언 절구를 남겨 오늘에 전하고 있다.
글쓴바위는 보길도와 소안도 사이 해협으로 소안도가 손에 잡힐 듯이 바다에 떠있으며 주변은 해조류가 풍부하고 해식애가 발달한 천혜의 바다낚시터이다.
완도난대수목원[莞島暖帶樹木園]
다육식물[多肉植物] 사막이나 높은 산 등 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을 말한다. 선인장이 대표적인 다육식물이다.
난대림[暖帶林] 열대와 온대의 경계에 있는 삼림을 말한다. 상록활엽수대라고도 하며 연평균기온이 14℃이상이다.
완도 대문리 모감주나무군락 군외면 대문리 산128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희귀수종으로 목란자(木欒子), 또는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사찰 주위에 많이 심었으며 검은색의 단단한 씨는 염주를 만드는 재료로 이용되었다.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 [莞島禮松里常綠樹林 ]
이 숲은 다양한 수종과 거대한 몸집의 나무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굵은 곰솔 1그루를 신목(神木)으로 택하여 음력 4월 12일에는 바닷일의 무사를 기원하는 해신제(海神祭)를 올린다.
이 숲은 약 300년 전에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방풍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닷바람을 막아 마을에 좋은 생활환경을 제공하였을 것이고 농경지의 작물을 보호해서 소출을 올렸을 것이며, 어장(漁場)을 양호(養護)하고, 아름다운 풍치와 쉼터를 제공하는 등 이 숲의 기능은 매우 컸을 것이다.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
황칠나무의 수액은 황금색이며, 주로 궁궐에서 사용하였던 고급 도료이다. 정자리의 황칠도료는 특히 이 마을의 특산품이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 나무를 귀하게 보존·관리해 왔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신들린 나무라 하여 땔감으로 베지 않고 지금까지 귀히 여겼다. 예로부터 건강약재와 최고급 도료로 사용됐던 황칠(黃漆)나무(사진)를 이용한 ‘황칠차’가 상품으로 출시됐다.
국내에서 전남 화순·해남·장흥·고흥 등지에 자생하는 황칠나무는 수액이 누런 금빛을 내는 최고급 도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자금성의 금빛이 모두 황칠나무 수액으로 칠한 데 따른 것이다.
완도타워 : http://www.wandotower.go.kr
2층에는 이미지 벤치, 포토존, 완도의 인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망데크에는 완도의 인물인 최경주 선수와 장보고 대사를 모형으로 제작하여 관람객들에게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였다.
전망층에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 영상모니터와 전망쌍안경이 설치되어 있다. 야간에는 완도타워의 경관조명이 켜지고, 매일 환상적인 레이저 쇼를 연출하게 된다.
청산도[靑山島] http://www.chungsando.co.kr/ 미국 CNN - 한국서 가봐야 할 50선정
4월이 되면 섬의 들판을 뒤덮는 유채꽃이 유명하다
영화 <서편제>에서 돌담 사이 황톳길을 따라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흥에 겨워 부르며 내려오던 바로 그곳이다<사진>. 봄이면 돌담길 안쪽으로 푸른 보리밭과 노란 유채꽃이 만발해 남도의 정취를 전해준다
청산도에는 ‘초분(草墳)’이라는 독특한 장례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짚을 묶은 이엉으로 덮었다가 2~3년 뒤 뼈만 추려 땅에 묻는 이중 장례 풍속의 하나다. 초분 풍습이 아직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예전에는 부모상이 나도 상주가 먼 바다에 나가있을 때가 많아 바로 장례를 치르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현재까지도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초분을 하면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고, 후손들에게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들장논도 청산도를 대표하는 독특한 삶의 문화다. 구들장논이란 마치 한옥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돌로 구들을 만든 뒤 그 위에 흙을 덮어 논을 만든 것을 말한다. 다진 흙 위로는 농사에 필요한 만큼의 물이 고이고 남는 물은 아래쪽 논과 돌 틈으로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이는 돌이 많아 물이 고이지 않는 청산도의 지형조건을 극복한 것으로서 주민들의 지혜와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다.
슬로푸드 체험관 농협은 최근 폐교인 청산중학교 동분교 1층을 리모델링해 슬로푸드 체험관을 조성했다.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달팽이전망대에 있는 "느린우체통", 이 우체통에 사랑의 편지를 부치면 일년 뒤에 배달된단다.
범바위는 청산도에 살던 호랑이가 바위를 향해 포효한 소리가 자신의 소리보다 크게 울리자 이곳에 더 큰 호랑이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놀라 섬 밖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범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
청산도 전복은 육질이 쫀득쫀득해서 자연산에 가까우며 세계최초로 전복으로서 지리적 표시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청산도의 전복은 참전복으로 청정미역, 다시마등을 먹고 자라서 타우린 메티오닌이 풍부하며 비타민과 미네랄도 타지역 전복보다 높다고 한다.
청산여객의 버스기사 김봉안씨 청산버스의 출발은 1977년 12월. 버스의 등장은 섬마을에서 ‘역사적 사건’이었다. “35년 동안 딱 나흘 쉬었어.” 그 나흘이란 자식들 결혼식 치르던 날. 결혼식 때마다 식장에 참석만 하고 바로 섬으로 돌아왔다
청해진 유적[淸海鎭 遺蹟]
828년(신라 흥덕왕 3) 그는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어 군사 1만명을 이끌고 청해에 진을 설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해상무역의 패권도 장악하였다.
유적으로는 해중에 나무 말뚝을 박아 두른 방책(防柵)이 있고, 1만 명의 식수정(食水井)으로 사용하였다는 청해정(淸海井)이 있어 지금도 맑은 물이 솟으며, 이 밖에 토성의 일부가 남아 있고,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2008년 2월, 이곳에 장보고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장보고기념관 http://changpogo.wando.go.kr/
특히 전시실은 장보고대사의 흔적을 보고, 듣고, 만지는 체험형 입체 관람시스템을 갖추고있어 흥미로운 관람이 가능하며, 장보고대사와 서남해안의 중심지 청해진 완도를 이해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것입니다. 장보고대사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재패한다. 라는 일념으로 해양을 개척하였습니다. 우리함께 청해의 꿈과 희망을 안고 바다로 미래로 세계로 나아갑시다.
장도 청해진유적지(사적 제308호)와 장보고 기념관, 해신 드라마 세트장, 장보고 공원, 장보고 동상, 어촌민속전시관, 완도관광정보센터 등 장보고의 흔적이 남아있는 관내 주요 관광지와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작성된다. 정도리 구계등은 명승지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1972년 7월 24일 지정)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장보고가 완도읍 장좌리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해상왕 장보고 대사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고 찬란했던 청해진의 옛 영광 재현하고 『해신』으로 부활하여 전국민들에게 새롭게 각인된 장보고대사의 해양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계승시킬 수 있도록 참배단의 설치로역사 교육장으로서 원활한 기능 수행하도록 함."
위 치 : 완도읍 장좌리 ⇔ 장도 유적지
장보고공원 청해진유적 입구에 위치한 장보고공원은 4,500여평의 면적에 완도군의 201개 섬에서 채집된 기기묘묘한 수석 200여점이 상록활엽수와 어우러져 전시되어 있다. 현재 장보고 기념관과 관광정보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 본부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광복 후에는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충무사를 짓고, 이충무공을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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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도(金塘島)
4개의 유인도와 1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금당8경은 기암괴석으로 수만년 간 파도와 풍우로 인하여 신비로운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금당8경은 부챗살을 펼쳐놓은 듯한 부채바위와 금강산의 천불전을 연상케 하는 천불전, 코끼리 형상을 그대로 빼닮은 코끼리바위, 초가바위. 범바위, 꽃섬 용머리, 흔들바위, 병풍바위 등 해금강을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다
어부사시사 고산 윤선도가 지은 연시조이다. 봄 노래(春詞)·여름 노래(夏詞)·가을 노래(秋詞)·겨울 노래(冬詞)로 나뉘어 각각 10수씩 모두 40수로 되었다. 속계를 벗어나 물외(物外)에 서서 자연에 합치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오우가[五友歌] 작자가 56세 때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속에 들어 있는 6수의 시조로,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서시(序詩)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自然愛)와 관조를 표백하였다. 이는 고산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으로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어 시조를 절묘한 경지로 이끈 백미편(白眉篇)이다.
완도 다시마, 톳 전국 다시마 생산량의 80%을 차지하고 있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다시마에는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을 내리는 데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고 있으며, 다시마에 듬뿍 들어 있는 ‘알긴산’이 변비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톳은 갈조류의 모자반과에 속하며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5~7월에 많이 생산된다. 완도는 전국의 톳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톳은 혈관 경화를 막아주고 치아건강과 변비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톳은 해풍에 말린 후 일본으로 수출된다(90%)
완도 유자[柚子] 중국의 양쯔강 상류가 원산지인 유자를 장보고가 당나라에 갔을 때 상인 집에서 선물로 얻어오다가 풍랑을 만나 남해에 안착할 때 도포자락 속에 있던 유자가 깨어져 그 씨앗이 남해에 전파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완도장보고축제 완도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축제로 한국 최초로 바다를 개척했던 장보고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청해진의 옛 영광을 재현함으로써 진취적인 해양경영사를 재정립하고 관광 완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해양문화축제이다.
전남 완도군 노화읍에 ‘사랑의 로맨스 공원’이 조성된다. 완도군은 전국 최대의 전복 생산지인 노화읍에 2013년까지 전통 시장과 로맨스 공원 등을 조성한다.
완도타워 완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표현되는 완도타워는 첨탑까지 높이가 76미터로, 완도가 품고 있는 다도해의 환상적으로 펼쳐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원동다리 처음 완도를 육지와 연결해 주었던 예전의 철교는 본디 아주...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한강인도교의 잔해랍니다.
대부분이 한강 철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역사적인 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폭격당해 부서진 임진강 다리를 뜯어다 재조립해 완도를 뭍으로 연결한 첫 다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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