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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하나님아버지마음TV https://youtu.be/2Pv1du3BweE
복있는 사람
마 5:1-12 순복음사직교회오후예배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복, 예수 2020년 2월 9일
(에베소서 1장 1-6절)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복을 주제로 설교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제가 많은 사람을 상담해 오면서 성경의 진리가 많은 분들에게 왜곡되게 각인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잘못된 인식에 대한 성경의 바른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오늘 설교 제목으로 잡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하나님도 세상에서 주는 동일한 복을 더욱 많이 주는 분 정도로 생각을 할 까봐서 오늘 설교를 듣고 다 이해를 못하시더라도 하나님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목을 하나님의 복, 예수라고 정했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복’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전에 설교할 때도 언급을 하였었는데 못들은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들으셨던 분들도 새롭게 생각되도록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과연 인간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는가?라는 질문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1. 돈에서 행복을 찾는다. 2. 지위와 명성, 인기 한자리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3, 또 다른 사람들은 외모와 아름다움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4. 그리고 쾌락을 즐기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현세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돈, 지위와 명성, 외모와 아름다움, 그리고 쾌락을 즐기는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소식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이 더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는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첫째 적응의 원리였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어도 사람들은 곧 적응을 해서 행복감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아파트를 사고, 새 차를 사고 나서 그 행복감이 보통 2주에서 6개월정도 간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욕구상승의 원리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어도 사람은 곧 그것보다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원하더라는 것입니다.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연립주택에 살 던 사람이 20평짜리 아파트에 이사해서 잠시 행복한 가 싶더니 화장실이 하나라서 불편해서 곧 화장실 두 개짜리 아파트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삶이 화장실 개수 늘리다가 하나님나라 가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상호비교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수입과 관련해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비교를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주로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이 더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럼 정말 타인도 인정하고 자신도 인정하는 행복한 사람들은 어떠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행복한 것인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4가지 요소가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1. 재정적인 안정, 2. 건전한 신앙, 3. 봉사하는 직업, 4. 사랑하는 관계 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바로 사랑하는 관계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반 사회학적인 연구 결과임에도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3절에서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고,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을 4절-6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6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광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쉽게 설명해놓은 소요리문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요리문답의 1번의 질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입니다. 예 그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서 내가 기쁘고 즐거운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어디에 제일 먼저 나옵니까?
예 창세기 1장입니다.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사용된 복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바라크’입니다. 이 ‘바라크’라는 단어의 뜻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이라는 것은 인간이 원하는 무엇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라크라는 단어는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인간보다 먼저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 그리고 모든 새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은 돈, 명예, 외모, 쾌락인데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들에게 돈, 명예, 외모, 쾌락이 필요할까요? 이들에게의 복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에서 사는 것이 바로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시는 복 역시 우리가 원하는 세상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말한 이 복은 아담 언약, 노아언약을 거쳐서 아브라함 언약에서 좀 더 구체화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고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이 언약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자손이 번성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아브라함이 복의 모형으로 일컬어진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구약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홀로 말씀하시어서 언약을 세우셨고 그 언약이 구약에서 일부 성취되었지만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 모형이었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고 믿고 살아가는 축복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며 우리의 능력이 되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오직 하나인 복, 오직 예수님을 우리가 믿고 우리 안에 성령하나님으로 내주하고 계신데 어떤 복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영어에서 복을 happiness와 blessing이라고합니다. happiness는 어원이 'happend' 즉 어쩌다 일어나는, 어쩌다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blessing은 어원이 bleeding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우리에게 복이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상은 잘한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우리가 잘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잘하신 것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즉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받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상이란 오히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지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말씀인 산상수훈의 8복에 대한 말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4장에는 예수님을 수많은 무리들이 따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고 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계속 사역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산으로 따로 부르셔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의도하신대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닌 이 땅의 축복만을 기대하면서 예수님께로 나아오기에 천국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바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산상수훈을 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산상수훈을 도덕성의 극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이 산상수훈을 매일 읽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산상수훈 설교는 매우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몇 번에 걸쳐서 성경이 말하는 산상수훈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성도님들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는 산상8복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복을 받기 위해서는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고, 애통해야 하고,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를 자가 되어야 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심령이 가난한 자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러나 이 말씀을 헬라어 원어를 직역하면 3절은 복있는 자여 너는 심령이 가난해지고 천국이 너희 것이다가 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미 복을 가진 자입니다. 복을 가진 자가 무엇을 더해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복을 가진 우리는 더 받을 복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 번 새벽기도 총진군 주제처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고 살아가면 되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받은 우리는 내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 있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 앞에서 어떤 장담을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난 베드로는 닭울음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심히 통곡하였다고 합니다(마 26:33-75).
베드로는 닭울음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과 자신의 행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절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베드로에게 남는 것은 자신감도 아니고 자기 신앙도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용서와 긍휼일 뿐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경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죄인된 심령을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딤전 1: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고백을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사역 마지막 때에 쓴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시기에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을수록 자신을 죄인의 자리에 더 깊이 내려놓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같은 신자로서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신앙생활에 열심을 갖게 되고 선한 일도 행하면서 자신이 신자답게 되간다는 인식을 갖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더 깊이 들어갔을 때 자신을 두고 죄인의 괴수로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겸손의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행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한 말도 아니고, 통속적으로 내 뱉는 말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자신의 죄인됨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을 뿐인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걱정과 염려 속에서 하나님이 크고 풍성한 은혜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길로 자신을 인도하심을 잊고 있었음을 생각하고 애통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생으로 근심케 하는 것이 아니며 심판 대신 구원이라는 것을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잊어버리는자신을 두고 애통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자신을 부르시고 지금도 이런저런 어려움과 환난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으로 애통해야 합니다. 그러한 애통이 있어야 나같은 자도 택하시고 부르시고 복된 나라에 속하게 하신 긍휼과 자비하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복된 나라에 있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크신 위로로 그 심령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자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21장 겸손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이 헬라어로 온유라는 단어입니다.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셨느니라..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온유라는 것은 고난과 핍박과 억눌림과 낮은 자리 등과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자가 그 뜻이 성취 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 그 어떤 환난과 고통과 굴욕에도 담담해 지는 상태, 확고한 믿음의 자리에서 공고해지는 상태를 온유라 하는 것입니다.
모세 구스여인 미리암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의 도구로 쓰여 지면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이 세상 가치관과 세계관에 반하는 삶으로 끌려가는 상태를 온유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길들여지는 삶...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사람이 선행에 목말라하고 일평생을 선행을 하며 살았다고 해도 선행이 인간을 배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선행에 힘쓰는 사람들의 특징은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음만 있을 뿐 도와줄 수 없을 때 괴로워하게 됩니다. 마음에 짐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면 이러한 상태를 배부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롬 5 : 8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에 있는 것이 곧 배부름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신자가 세상을 볼 때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입니까? 큰 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사람입니까? 물론 고통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도 불쌍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알고 예수님의 피의 은혜만을 소망하는 신자라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그들이 불쌍한 사람입니까?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긍휼이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고 있다면 그래도 불쌍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에는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매를 맞으며 고난을 겪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했던 사도들이 불쌍하게 보입니까?
그들은 결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편히 살아가는 부자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자에게는 이러한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신자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그러한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두마음이 아닌 한 마음
7. 화평케 하는 자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 그리스도도 화평을 위해 죽으심
우리도 이 땅에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성경이 말씀하는 화목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화목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 그리스도의 용서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를 증거하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란 십자가의 복음만을 증거하는 자로서 복음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린 지금까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에 대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각각 독립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백성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에는 세상이 기대하는 현실적 형통이 전혀 없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복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께 속한 자가 되어서 자신의 영혼이 거룩하게 변화되며 이 세상을 영적인 시각에서 볼 줄 알게 되는 차원입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알기에 그 분의 긍휼함에 동참할 수 있는 은혜이고, 예수님의 의에 목마르게 되는 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의로 배부르도록 채워주시며 결국 의를 위해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