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떠밀린 민초가 끝내 선택한 최후의 땅
-인제 둔가리약수숲길 3구간 미산동길-
옛날 어지러운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외진 땅을 물길 따라 이은 길이 둔가리약수숲길이다. 내린천과 방태천을 따라 방태산(1444m) 서쪽 기슭을 훑는 길은 늙은 나무와 웃자란 풀, 풀숲의 벌레와 냇물의 물고기 차지다.
둔가리약수숲길 3구간 미산동길은 인제군 상남면에 있다. 하남리 미기교에서 미산리 개인약수교까지 걷는 동안 미산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여럿 지난다. 중간지점인 송개교 밑으로 내린천이 시원하게 흐른다.
●걷는 거리: 12㎞
●걷는 시간: 4~5시간
●걷는 순서: 미기교~후평교~송개교~왕성동교~개인(미산)약수교
▶걷기여행 TIP
-화장실: 이동식 화장실이 3~4㎞ 마다 있다.
-식수: 중간에 물을 살 수 있는 슈퍼나 매점이 없다. 미리 챙겨가야 한다.
-식사: 코스에 식당이 없다. 상남면이나 인제읍에서 먹고 나와야 한다.
-기타: 인적이 드문 오붓한 숲길이다. 풀에 살을 쓸릴 수 있으니 긴 바지와 긴팔 티셔츠를 입기를 추천한다. 깊은 숲에 들어가면 휴대전화도 먹통이 된다.
산림청에서 만든 이정표가 갈림길마다 있어 길을 찾는데 수월한 편이다. 방태산 자락을 훑어가는 길로 숲과 마을을 번갈아 지난다. 약 4㎞마다 마을이 있어 탈출이 가능하다. 평지를 걸어 큰 무리는 없지만 숲 속에서 가끔 뱀이 튀어나온다고 하니 주의하자.
-코스문의: 인제국유림관리소 산림경영팀 033-460-8036.
●대중교통: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인제 상남면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다섯 번 운행한다. 상남면에서 3구간 출발지인 하남리 미기교까지 미산행 농어촌버스를 타고 간다. 하루 두 번 운행해 콜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상남인제콜택시 070-4715-9266.
●자가용: 서울에서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IC에서 나온다. 44번 국도∼451번 지방도로∼31번 국도를 차례로 타고 35㎞ 더 가면 인제군 상남면 하남리 미기교에 닿는다. 주차 공간이 따로 없어 마을에 양해를 구하고 갓길에 차를 세운다.
# 삼둔사가리
길은 숲과 마을을 넘나들었다.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니 인적이 거의 없었다. 휴대전화도 먹통이 됐다. 대신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에 흐느끼는 나뭇잎소리가 줄곧 함께했다.
둔가리는 삼둔사가리의 줄임말로, 삼둔사가리는 3개의 둔과 4개의 가리를 합쳐 만든 말이다. 내린천 상류의 살둔ㆍ월둔ㆍ달둔과, 방태천 계곡의 적가리ㆍ아침가리ㆍ연가리 그리고 방태산 동쪽에 있는 명지가리를 묶어 이른다. 둔과 가리는 각각 사람이 살 수 있는 둔덕과 계곡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삼둔사가리를 난을 피하는 곳, ‘비장처(秘藏處)’라고 소개했다. 아침가리는 아침에만 잠깐 해가 든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깊은 계곡이란 뜻이다. 온갖 난리를 피해 숨어든 사람은 “여기면 살 수 있겠다”는 뜻에서 ‘살둔’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삼둔사가리 곳곳에 피난굴도 있었다고 한다. 삼둔사가리를 ‘조선의 마지막 피난처’라 부르는 이유다.
삼둔사가리에서 따온 길이지만, 둔가리약수숲길은 삼둔사가리를 직접 거치지 않는다. 내린천 줄기를 따라 길은 방태산 자락을 반 바퀴 정도 에운다.
# 방태산 깊은 산골
후평동을 지나자 농수로를 따라 길이 이어졌다. 활짝 핀 찔레꽃이 반겼다.
후평동에는 주민 84명이 20㎡(약 6만 평) 면적의 논에 벼를 심고 살고 있었다. 옛날 조상이 파놓은 농수로가 여태 활용되고 있었다. 농수로를 옆에 끼고 걷는 길은 송개동까지 약 4㎞나 이어졌다. 후평동을 통과하고 숲에 들었다.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어 비밀의 정원 같았다. 하얀 찔레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늘이 드리워진 나무 터널을 무연히 걸어 나갔다.
송개동에 다다르자 수로 위로 데크로드가 나타났다.
“자, 이제부터 물 위를 걷게 됩니다.”
길 안내를 맡은 북부지방산림청 송동현 주임이 수로 위로 올라갔다. 공간이 좁아 수로에 콘크리트로 얹어 그 위를 지나게 한 것이다. 내린천 건너 자동차가 가끔 지나갔지만 우렁찬 계곡물 소리에 묻혔다.
# 길섶에서 만난 멧새 둥지
미산계곡은 메기ㆍ꺾지ㆍ피라미 등 온갖 민물고기 천지였다. 숲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대부분이었고 물가에는 버드나무 초록 잎이 그늘을 드리웠다. 생강나무ㆍ느릅나무ㆍ물푸레나무도 종종 눈에 띄었다.
대궐농원 신장호씨가 직접 설치한 곤돌라다. 농원에서 가장 가까운 다리까지 걸어서 40분이나 걸리지만, 곤돌라를 이용하면 3분 만에 내린천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
송개동과 왕성동 중간 지점에 대궐농원이 있었다. 농장주인 신장호(69)ㆍ안만수(63) 내외는 24년 전 이곳에 들어왔다. 대궐농원은 천과 산으로 앞뒤가 막혀 외딴 섬 같았다. 천을 건너 도로로 가려면 천을 따라 40분을 걸어가 다리를 건너야 했다. 해서 할아버지는 20년 전 직접 쇠줄을 설치하고 곤돌라를 매달았다.
갓 태어난 노랑턱멧새가 어미가 먹이를 물어온 줄 알고 입을 벌리고 있다. 나무 위가 아니라 길섶에 둥지가 있었다.
왕성동으로 향하는 길. 풀숲에서 노랑턱멧새 둥지를 발견했다. 새끼가 둥지 안에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는 기척이 나자 어미가 온 줄 알고 꿈틀댔다. 눈도 못 뜨는 새끼 새는 입만 벌렸다. 뭉클한 장면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은 이렇듯이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었다. 날것 그대로의 자연은 지친 인간에게 아무 말 없이 감동과 위안을 줬다.
●여행먹거리-미산막국수
미산계곡으로 래프팅 하러 오던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집이다. 미산리에서 나고 자란 사장님이 운영한다. 직접 뽑는 면발이 인상적이다. 메밀 비율이 70%로 툭툭 끊어지지 않고 적당히 차지다. 살얼음이 가득한 육수는 따로 통에 담아낸다. 기호에 맞게 조절해 먹을 수 있다. 김치는 세 종류를 낸다. 빨간 배추김치, 백김치, 열무김치. 전부 직접 사장 내외가 식당 근처 텃밭에서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들었다. 막국수 6000원. 인제군 상남면 내린천로 1691(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391), 033-463-0539.
손민호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