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해석학 (時空解釋學, Space-Time Talk) (7) - 성공회 장정문 신부 著, 강덕창 신부 譯
공간 시간의 말 (Space-Time Talk)
張貞文 博士 著, 姜德昌 博士 譯
차 례
제 1 부 비판적 맥락
제 1 장 서론 : 문제와 방법
제 2 장 실존론적 해석과 공간 시간 언어
제 3 장 상징적 해석과 공간 시간 언어
제 4 장 언어적 상징론과 공간 시간 언어
제 2 부 분석적 해설
제 5 장 신약성서 신화 안에 있는 공간 시간 언어의 위치와 그 상징적 특징들
제 6 장 신약성서 신화의 공간 시간 언어 그 상징적 의미
제 7 장 신약성서 신화의 공간-시간 언어
제 3 부 통합적 결론
제 8 장 하느님 언어와 그 해석학적 적용
제 1 부 : 비판적 맥락
제 1 장 서론 : 문제와 방법(3)
ㄱ. 신약성서 신화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방법론적 문제
ㄴ. 현대 해석학적 이론 개관
ㄷ. 공간 시간 의미론을 제안함
ㄱ) 新約聖書 神話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方法論的 問題
우리의 주요관심사인 해석학에 있어서 신화적 언어의 문제를 취급하려면 해석학의 방법론 문제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본 장은 신약성서 신화적 언어의 해석방법론이 무엇인가를 斯界 학자들의 논의들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하면 그 신화적 언어를 해석하는데 어떤 방법이 적절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해석학을 주제로 하는 연구서들이 이미 세상에 많이 나왔고 그 해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문적 제시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다. 이제 그 문제의 성격을 논의 해보자.
우선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불트만의 주장대로 신약성서 안에 있는 구원의 메시지, 즉 케리그마(kerygma)가 신화적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케리그마가 현대인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신화적 언어로 감싸져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예수가 지옥에 내려갔다.’든가,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언어, 혹은 ‘마지막 날에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이다.’라는 표현들이 과학을 배운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 시간의 그 신화적 언어들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새로운 해석을 함으로써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질문이 생긴다. 그 공간 시간의 언어에 알맞은 해석이란 어떤 해석인가? 이 문제들은 뒤에 구체적으로 다시 취급하게 될 것이다.
불트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지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껍질을 제거하고 그 알맹이는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외적 표현인 신화적 언어는 이미 낡은 언어라고 생각했고 그 속의 알맹이는 理想的이고 人間論的인 종교적 倫理라고 보았다. 그러나 신화적 언어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그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구원메시지인 케리그마 자체까지 제거하게 되었다.주12)
자유주의 신학자들 다음으로 학계에 擡頭한 학파는 宗敎史學派(History of Religion school)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기독교를 倫理的 理想主義로 이해하지 하지 않고 신앙적 敬虔(piety)과 祭儀的 崇拜(cultus)로 이해했다. 그 결과는 이들 역시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제거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학문적 주장들이 있고 나서 유명한 루돌프 불트만의 非神話化論(Entmythologisierung)이 일어난 것이다. 불트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날의 자유주의자들은 신약성서의 신화를 제거(elimiert)하기 위해서 비판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그 신화를 제거 아닌 해석(interpretieren)을 하기위해 비판하는 것이다."주13) 이 해석하는 일이야 말로 신화적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이 옳은가? 우리는 불트만의 해석방법이 무엇인가를 검토할 것이고 그의 해석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음미하게 될 것이다. 불트만은 해석의 현대적 이해라는 점에서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방법 역시 또 다른 비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불트만의 非神話化論 너머로 더 나아가 새로운 해석의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을 제 3의 해석방법이라고 부른다. 이 새로운 해석방법은 주로 言語的 象徵論과 解釋學的 眞理를 취급함으로써 알게 된다.
ㄴ) 현대적 解釋學理論들에 대한 槪觀
이제 현대의 해석학 문제들을 더 살펴보고 이에 대한 가능한 해결방법을 제시해 본다.
우리가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의 해석학 문제들, 특히 과거 이삼 십년 간에 제기된 해석학 문제들은 그 이전 시대보다도 더 민감하고 미묘해졌다. 도대체 意味라는 그 자체가 무엇인가? 성서의 텍스트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 解釋과 理解는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들은 새로운 해석학 이론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주14) 여기에 현대의 해석학적 철학자들로서 Hans-Georg Gadamer, Paul Ricoeur 같은 이름들을 말하게 된다. 하지만 공간 시간적 해석에 관한 한 Ernst Cassirer와 W. M. Uban의 언어철학도 중요하다.
불트만의 實存論的 해석학은 그 실존론적 편견과 그 인간중심적 일변도로 해서 비판을 받아왔다. 불트만에 대한 비판은 그의 실존론 해석방법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해석학이론들의 입장에서도 불트만은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 등장한 해석학자들은 텍스트(본문)의 성격과 의미를 비판적으로 재음미 하게 되었다. 성서의 텍스트가 무엇인가? 텍스트의 의미란 그 성서를 쓴 저자의 생각이나 의도를, 그리고 그 텍스트를 받아 들은 초기독자들의 이해를 알아내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주어진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성서저자의 지식을 이해하고 신약성서가 씌어진 1세기의 청중들이 이해한 그 이해에 오늘의 우리도 참여한다는 뜻인가? 과거의 성서연구는 주로 그런 질문에 따르는 역사적 및 심리적 해답을 찾는데 있었다. 역사적, 비판적 방법( historio-critical method)이라고 부르는 연구이다. 이 역사적,비판적 해석방법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성서나 신학을 탐구하는데 중요한 길잡이이고 지식의 본보기였다.
역사적 비판적방법은 제 1세기 초대교회의 기독교 신앙, 사상과 예식에 관한 역사적 지식을 찾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예를 들면 ‘신약성서의 신학용어사전’(Theologisches Woerterbuch zum Neuen Testament), 樣式史批判(Formgechichte), 傳統的-歷史的批判(Ueberlieferungsgeschichte)에 들어있는 논문들과 신학도들 혹은 목회자들의 서가에 꽂혀있는 여러 성서주석서들이 거의 모두 역사 비판적 연구방법에서 나온 지식들인 것이다. 이 지식들을 자료로 혹은 교훈으로 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
이천년 전 팔레스틴의 역사, 지리적 지식, 로마시대의 정치상황이나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혹은 당시의 교회신자들의 상황 등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다. 하지만 우리의 성서해석이 이런 지식과 이해만으로 다 완성된 것이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예수회파 학자인 Sandra Schneiders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성서학계의 안과 밖에서 좋은 이유거나 나쁜 이유에서이거나 불만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산출되는 많은 성서주석들의 내용이 빈약하다는 것이다.주15) Schneiders는 역사적 비판의 방법이 다음과 같이 철학과 문학의 두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認識論的 및 存在論的 문제인데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의 문제이다.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역사, 지리적 지식 혹은 초기성서 저자들의 심리적 의도에 대한 지식이나 알아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한편으로 문학적 문제가 있다. 표현적 혹은 상징적 언어에 속하는 전체범위와 說話 같은 큰 형식, 비유 같은 類型의 기능에 관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역사적 비판적 해석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다시 말하면 實證主義的 歷史主義 방법으로는 성서해석에 한계가 있고 적절한 해석방법도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사주의적 해석과 이해가 새로운 해석방법의 출현으로 전적으로소용 없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역사적 비판적 방법이 성서해석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 역할과 지위를 ‘충분한 해석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가결의 요소이다.’라고 평했다.주17) 그러면 이 두 實在들, 즉 事實(fact)과 價値(value 혹은 意味)라는 二分法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