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Portugal)
위 치 : 이베리아반도 서부 공식명칭 : 포르투갈공화국 수 도 : 리스본 인 구 : 약 10,833,816명 (2017년 기준) 면 적 : 92,131㎢ (한국의 약 2/5) 민족구성 : 이베리아족,로마족,켈트족 언 어 : 포르투갈어(Portuguese) 국 화 : 라벤둘라(라벤더) 종 교 : 카톨릭 통 화 : 유로(Euro)
GDP : 약 2,027억7000만 달러 (GNP : 약 20,000달러) 세계48위
★포트투갈공화국 개요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반도에 정착하여 그리스인·페니키아인 및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경 케사르(Caesar, J.) 및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으며, 5세기 초에 서고트족이 이주하여 711년 무어족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제국을 건설하고 반도를 통치해왔다. 1137년 엥리케(Henrique,A.) 왕이 단일국가로 분립시켜 무어족을 축출하고 1139년 독립을 이루었으며, 1385년 스페인의 카스틸랴왕국에 승리함으로써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웠다. 15, 16세기에는 브라질·인도 및 아프리카 연안 등 해외탐험을 통하여 제해국(制海國)으로 등장하여 스페인과 경합하였으나, 1580년 왕가의 분규로 스페인에 합병(1580∼1640)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후원으로 독립을 회복하였고,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Manuel Ⅱ)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32년 이래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살라자르(Salazar, A. O.)가 죽고 카에타노(Caetano, M.)의 독재가 계속되었으나, 1974년 4월 25일 청년 장교단의 무혈쿠데타가 성공하여 독재정치는 끝났다. 1976년 4월 25일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 결과에 따라 소아레스 사회당 소수 단독내각이 제1차 합헌정부로 출범하였으며, 그 이후 1985년 11월 제10차 합헌 정부까지 매년 정권이 교체되는 등 민주정치의 외양은 유지되었으나 불안정한 국면이 계속되었다. 1986년 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아레스 총리가 1926년 이래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7년 7월 및 1991년 10월에 제11차 및 제12차 합헌정부가 사회민주당 단독 정부로 각각 수립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포르투갈은 특히 유럽 국가와의 관계심화 및 앙골라·모잠비크 등 전 식민지 국가와의 관계개선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역할 증대, 미국 등 서방제국과의 관계강화를 꾀하고 있다. 포르투칼은 유럽에서 매우 저렴하고 매혹적인 나라이다 과거 해양생활을 했던 나라답게 뛰어난 해변 휴양지, 멋진 도시와 자연 경관이 빼어나다 특히 올리브 농장과 포도원이 밀밭 사이로 펼쳐져 있어 한층 아름다움의 묘미를 더한다 포르투갈은 40녀년간의 독재 정치를 겪으면서 유럽 영향력의 중심과 현대적인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유럽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여름철 휴양지로 선호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에 EU가입과 1992년 유럽 통화제도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는등 국제적 지위가 크게 향상 되고 있다. ★지 리 지형적으로 동쪽은 스페인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한 남북으로 긴 나라이다 총 면적은 92,131㎢로 남한과 비슷한 크기이다 북에서 남으로 560km 동에서 서로는 220km로 유럽국가들 중에서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북부와 중부 지방은 인구 밀도가 높으며 산악지대로 강, 계곡, 숲, 산이 많다 가장 높은 산맥은 토레(Torre)의 꼭대기인 세라 다 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 1993m)이다 그에 비해 남부는 북부에 비해 인구 밀도가 낮으며 올리브,코르크 등이 많이 생산되는 평지로 되어 있으며 특히 전세계의 코르크 수요에 70%를 포르투갈이 차지할 정도로 코르크 생산이 많다 ★언 어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지만 관광지나 호텔 또는 레스토랑에서는 영여와 불어도 통하는 편이다 포르투칼어와 스페인어는 형제어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스페인어도 사용되고 있다 ★종 교 대부분의 포르투갈인은 카톨릭을 믿고 있다 포르투갈에는 전통있고 웅장한 성당들이 많으며 아직도 강한 카톨릭적 전통이 남아 있어서 많은 자역사회 활동은 다양한 종교적 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종교적인 큰 축제일은 휴일로 정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축제인 카니발과 부활절 기간 동안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성수기는 6월 중순부터 9월까지이다 내가 있는 동안에도 우리나라 카톨릭 신자들이 신부님을 리더로 많은 신도들이 단체로 와서 기도를 하고 촟불 행사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열정이 대단함을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민 족 켈트족,이베리아족,게르만족 및 무어족 등 여러 민족이 있다 국민 성격은 온순,소박,단순,자기 분수를 잘 지킨다 범죄율은 낮으며 치안상태도 양호하다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책임감이 높지 않다 공중 도덕을 잘 지키지 않고 업무처리 및 행정처리 지연 사례가 빈발하다 운전자들의 난폭운전으로 사고율이 높다 축구를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운동장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어김 없이 동네 축구를 즐긴다 남녀 차별이 심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중시하며 자녀는 많이 두지 않고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풍속이 있다 ★기 후 대서양에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해안 지방의 기후는 경룰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한 온난한 기후를 보인다 본토의 중앙을 흐르는 테주강을 경계로 북부의 산악 지방은 강우량이 많고 습도도 놓은데 비해 남부 대서양 쪽은 화창하고 건조하여 지내기 좋다 유럽에서 가장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4월부터 10월까지는 따뜻하다 보통 눈은 산악지역에 내린다 스키 시즌은 1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2월이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파티마(Fatima) 도시의 개요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지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는 목동들을 체포하고 순례를 금지 시켰으나 1930년 레이리아 주교가 이 사실의 신빙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파티마의 로지리오 성모에 대한 숭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대성당이 건립되어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큰 꼭대기에 꽂은 높이 65m의 탑이 있다 본 내용의 자세한 내용은 각 백과 사전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 하면 좋겠다
바실리카 성당 1928년 짓기 시작해서 1953년에 완성된 성당이다 중앙 제대위의 부조는 하나님이 성모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이고 벽화는 성모님이 목동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내용이다 제대 옆의 성모상은 1946년 5월 13일 성모발현일이 승천을 상징하는 왕관을 쓰고 있다 제단 양쪽에는 성모님의 발현시 목격한 목동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다
성령이 빛을 타고 오시는 듯 해서 핸드폰에 담았다
그 성령의 빛이 바실리카 성당을 향하고 있었고 나무도 성당을 향하여 예배하고 있었다
그 성령이 오시는 빛을 따라 내 친구 일행은 이곳 바실리카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고 있다
바실리카 성당 외부 전경
코르크 나무가 성당 외부에 울타리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코르크를 채취한 흔적이 보이고 숫자가 보인다 이 숫자는 코르크를 채취한 년도 끝자리 표시이고 9년마다 채취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촛불 미사를 위해 순례자들이 모여 들고 있다
우리나라 순례자들이 미사를 위해 참여하는 단체가 많이 보인다
유럽 서부 맨끝이라 바람도 세차게 분다
사실 나는 이곳 포르투갈 유럽 최 서단 카보다로카를 보면서 우리나라 제주도가 훨씬 멋있고 풍광이 좋구나 하고 느꼈다 제주도가 세계7대 자연경관지역으로 선정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럽 최 서단을 지키고 있는 등대
유럽대륙의 서쪽 맨끝인 카보다로까 호카곶 앞에 보이는 바다가 대서양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많이 피어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리스본(Lisbon)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테주강(타호강)의 삼각 하구 우안(右岸)에 위치한 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 대륙 대서양 연안 굴지의 양항(良港)이기도 하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 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 진출 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동부의 알파마 지구에는 성(聖)조지성(成)이 서부의 벨렝 지구에는 본래 성채였던 벨렝의 탑, 바쿠스 다 가마를 기념한 고딕 양식의 수도원 및 아주다 궁전 (현재의 외무성),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고 1290년에 창립된 대학이 있다. 시가지는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중앙부는 바이샤라고 부르는 저습지로 거의 전 지역이 지진 후에 재건되어 상업,행정 기관이 이곳에 집중한다. 동부는 본래 페나키아인,로마인의 거리였던 옛 시가지. 서부는 신 시가지이고 또 최근의 시가지 확장은 북부로 펼쳐 나가고 있다.부두등 항만 시설은 테주강 우안을 따라 30km에 걸치고 그 북동부에 곡물 냉장창고 및 시멘트 정유 철강 코르크제품 등 공장이 자리한다 어항은 벨렝 서쪽에 대서양 각지를 잇는 여객항은 시 중심부에 위치하나 1966년에 테주강에 가로 놓인 현수교(2.3km)가 완공되어 강의 좌안에도 철강 화학 조선 등 대공장이 건설되어 발전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U)는 1994년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했다
벨렝탑 마누엘 1세에 의해 1515년 테주강 위에 세워진 탑으로, 지금은 강물의 흐름 때문에 탑이 강물 위로 노출되어 있다. 원래는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며 통관 절차를 밟던 장소이며, 대항해 시대 때에는 왕이 이곳에서 선원들을 알현했던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지배 당시에는 정치범과 독립 운동가들을 지하에 가두던 물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내부 관람이 가능하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견의 탑 범선을 본따 만든 약 52m의 기념비로, 항해 왕자였던 엔리케 왕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되던 1960년에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기념비이다. 뱃머리 가장 앞에서 범선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엔리케 왕자이고 그의 뒤를 따라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지구를 처음으로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던 마잘렌, 대항해 시대의 통치자였던 마누엘 1세 등 항해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던 인물들과, 천문학자, 지리학자 등 총 30명의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기념비 전망대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거나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리스본의 중심 로시우 광장
제로니모스 수도원 원래 이름은 하이에로니미테스 수도원인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16세기 마누엘 1세의 의뢰로 산타마리아 예배당 자리에 세워졌다 산타마리아 예배당은 마누엘 1세의 조상인 항해왕 엔리케의 명령으로 세워졌으며 당시 뱃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포르투갈 왕실의 묘비로 사용하려고 지었으나 훗날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그 역사적인 출정 전야에 이곳을 찾아 기도 하였으며 그의 무덤은 아직도 수도원의 역사적 기념물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수도원을 설계한 사람은 디오고 보이탁(1460년경~1528)으로 훗날 후안 데 카스틸류(1475년경~1552)가 그 뒤를 잇게 된다. 이 무렵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였으며 벨렘은 수도 리스본의 주요 항구였다. 그 세심하기 그지 없는 디테일의 파사드와 실내에서 보여준 장인들의 기술은 빼어나다. 1550년 공사에 다시 착수한 건축가 디오고 데 토랄바(1500~1601)는 메인 예배당과 합창석을 추가하고 2층짜리 수도원 건물을 완공하였다. 그후 루앙의 제롬(1530~1601)이 1571년부터 그의 뒤를 이어 받았다. 그 스타일은 후기 고딕 양식과 스페인 플라테레스코 양식의 합성물이며 항해 요소들이 곳곳을 꿰뚫고 있어 마누엘 양식이라 불릴 만 하다. 코스타, 모타나, 니콜라, 샹테렌, 같은 저명한 조각가들도 참여했다. 이 화려한 건물에는 예배당,수도원,교회, 그리고 포르투갈 군주들의 묘도 포함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세익스피어라 불리는 루이스 데 카모스나 페르난도 페소아 같은 시인들의 묘도 있다. 2층짜리 수도원처럼 당시로서는 과감한 설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에서 마누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학생들이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이 꽃이 아프리카 벗꽃이란다
01. Musica Fantasia 02. Rondo Veneziano 03. Romanza 04. Arabesque 05. Colombina 06. Fantasia Venezia 07. Casanova 08. Donna Lucrezia 09. Cecilia 10. Sinfonia Per Un Addio 11. Acq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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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포르투갈의 역사및 문화와 함께
푸른하늘이 인상적인 풍경들을 감상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