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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사냥 뒤 사냥개는 삶겨 먹히는 법이 당연한 것인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이재유(부산고 제36회 청조동문)
(출처: http://cafe.daum.net/FortheKidnapped/의 일반게시판
http://cafe.daum.net/FortheKidnapped/LfAU/108
http://www.jisahyup.com/ 의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중국의 유명한 고사성어 중에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것이 있다. 그 말의 자구대로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먹힌다라는 것으로 쓸모가 있을 때는 긴요하게 쓰이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는 말이다.
범려(范蠡)라는 자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패권을 쥐도록 구천(句踐)을 보좌한 명신(名臣)인데 그 월나라 왕 구천(句踐)은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하였으나 범려가 구천(句踐)을 불신하면서 월나라를 탈출하게 되었다. 제(齊)나라에 은거한 범려(范蠡)가 문종(文種)의 안위가 염려되어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구절의 서신을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하였으나 문종(文種)은 월나라 탈출을 망설이다 구천(句踐)에게 반역죄로몰리는 의심을 받다가 결국에 자결하여 죽었다고 한다. 이런 고사(故事)에서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유래되었던 것인데 그런 고사성어 출처인 사기(史記)에서 적기로는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초패왕 항우를 멸하고 한나라의 고조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 장량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 삼걸의 한 사람인 한신(韓信)을 초왕에 봉했고 이듬해, 항우의 맹장이었던 종리매(鐘離眛)가 한신(韓信)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크게 노해서 한신(韓信)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鐘離眛)와 오랜 친구(親舊)인 한신(韓信)은 고조의 명령(命令)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한다. 진노한 고조는 한신(韓信)을 주살할 계획이었으므로 고조의 명을 받은 한신(韓信)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는데 그러던 중, 교활한 가신이 한신(韓信)에게 간언하기로 "종리매(鐘離眛)의 목을 가져 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하여 한신(韓信)이 이 말을 종리매(鐘離眛)에게 하자 당연히 크게 노하면서 했던 말이 "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라고 하면서 종리매(鐘離眛)가 자결해 죽자 한신(韓信)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했으나 종리매의 말대로 오히려 역적으로 포박 당하여 분기탱천하여 말하기로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먹히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臣下)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이번에는 고조에게 죽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한다. 하지만 고조는 한신(韓信)을 죽이지 않았고 회음후로 좌천하고 주거를 장안으로 제한해 그 세력의 뻗힘을 막고 권력을 빼앗았다 한다.
그렇게 그 고사성어가 전해오는 책자로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편(內儲說篇)과 십팔사략(十八史略) 등이 있다.
같은 뜻의 말로 “교토사 양구팽(狡兎死 良狗烹)”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좋은 사냥개는 삶긴다이거나 야수진 엽구팽(野獸盡 獵狗烹) “들짐승이 잡혀 죽고나니 사냥개는 삶긴다”, “교토이사(狡兎已死)” “교활한 토끼가 이미 죽었다”, “고(비)조진 양궁장(高(飛)鳥盡良弓藏)” “높이 날던 새가 잡혀죽으니 좋은 활은 쳐박혀지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유사어구로는 “득어망전(得魚忘筌)”, “고기를 잡고 나서 통발을 잊는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고 하는 말들이 있다.
즉, 다소 의심이 많고 편협된 인물이었던 유방(劉邦)이 의협심 강한 천하장사였던 항우(項羽)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신(韓信)이라는 명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유방과의 술자리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자신의 재능을 설파했고, 배수진(背水陣)의 전술로 그 능력을 확인시켰던 한신은 난세의 영웅인 항우의 초군(楚軍)에게 연패하던 유방으로 하여금 패권(覇權)을 차지하게 만든 1등공신이었다.
하지만 미인박명(美人薄命)이었던지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한신은 삼국지 조조(曹操)의 신하 양수(楊修)와 같이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단명하고 말았던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도 자신이 목숨을 바친 자신의 주인인 유방(劉邦)으로부터 제거되는 운명을 겪는 한신의 심정은 정말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后列傳-한신이 회음에 제후로 봉해져서 회음후는 한신을 의미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 (劉邦)은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의 창업 삼걸(創業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BC 200)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高祖)는 지난날 종리매에게 고전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고조(高祖)에게 ´한신은 반심(反心)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모든 제후(諸侯)들은 초(楚) 땅의 진(陳:河南省 內)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雲夢湖)로 유행(遊幸)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
한신이 나오면 진(陳)에서 포박하고, 만약 나오지 않으면 진(陳)에 집결한 다른 제후들의 군사로 한신을 주살(誅殺)할 계획이었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反旗) 를 들까´하고 생각도 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 일 없을 것´으로 믿고서 순순히 고조를 배알(拜謁)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싹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술수가 남다른 가신(家臣)이 한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정말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은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 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拜謁)했다. 그러나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역적으로 포박 당하자 한신은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果若人言(과약인언)
狡兎死良狗烹 (교토사양구팽)
高鳥盡良弓藏 (고조진양궁장)
敵國破謀臣亡 (적국파모신망)
天下已定(천하이정)
我固當烹(아고당팽)
과연 사람의 말과 같구나.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겨 먹히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漢)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내가,
이번에는 유방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
고조는 한신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음후(淮陰侯)로 좌천시킨 뒤 주거를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했다. 반 독립적인 지역의 지배권을 주면 한신이 언젠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신임하기는커녕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조례에도 나가지 않고 수행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북방 거록(鉅鹿)의 책임자였던 진희가 군사를 일으켰다.
유방이 친히 이를 토벌하러 나간 사이 유방의 아내 여후(呂侯)와 승상 소하(蘇何)가 한신을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죄를 물어 체포했다. 장락궁(長樂宮)의 종실(鍾室)에서 그는 무참하게 칼을 맞고 죽었다. 사냥이 끝난 후 끓는 솥으로 들어가는 개의 운명처럼.......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의 재상 범려가 한 말로 전해지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은 그 후 격언(格言)으로 전해오다가 한신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질 때 남긴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十팔史略에서는 원문이 대구(對句)의 구절로 ˝狡兎死而走狗烹 飛鳥盡而良弓藏(교토사이주구팽 비조진이양궁장)˝이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달리던 개가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니 명궁이 (창고에) 저장된다.˝는 의미인데, 바로 한신이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말한 의미심장한 유언이었다.
교활한 토끼[항우]를 잡기 위해 충성스러운 명견[한신]은 주인 사냥꾼[유방]의 뜻에 따라 힘들고 어려운 추격 끝에 결국 토끼를 잡았지만 토끼를 잡은 사냥꾼은 할 일이 없어지자 자신의 충견을 삶아 먹는다는 이용만을 당한 충신의 심정을 드러낸 말이다.
우리 역사에도 조선조(朝鮮朝)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로가 있었던 공신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 권력의 암투 속에서 제거되고 말았던 일이 있다.
현대사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부정축재 파문 속에 ´토끼를 다 잡아 먹은 사냥꾼은 마지막에는 사냥개까지 잡아 먹는다´는 유명한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던져 김영삼 정권 초야에 천파만파를 일으키고 정계를 은퇴한 일이 있었다.
역사 속에서 권력의 주변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안타깝게 명을 다하지 못하는 운명을 지닌 것을 볼 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자신의 처세(處世)가 세상에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주석)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고조(高鳥)가 비조(飛鳥)로, 양구(良狗)가 주구(走狗)로 나와 있으나 뜻은 같다.
(참고출처:
http://www.joungul.co.kr/meditation/meditation3/%EA%B3%A0%EC%82%AC%EC%84%B1%EC%96%B4_26855.asp)
위 고사성어와 같은 일이 현재 북한에 일어나고 있다.
리영호 숙청은 최룡해와의 암투에서 졌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일부는 "민간인 최룡해에 대한 불만 토로한게 화근 됐을것"이라고 하고 "리영호 자르는건 김정은 단독으로 안돼 장성택 입김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북한 군부의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갑작스런 숙청을 두고 전문가들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벌인 권력투쟁에서의 패배를 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특히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1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최룡해와 리영호는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지 않았어도 서로 불편을 표시하면서 갈등을 겪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리영호가 김정은이 임명한 최룡해에 대해 불만을 품은 것이 감지된 이상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이다”고 주장했으며, 한편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리영호는 15일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에서 해임됐고, 모든 당적 직위에서 해임된 간부가 총참모장직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총참모장직 해임도 기정사실화 되었다.
김정은 체제의 실세 중 실세인 리영호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군부를 장악하기 위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지난 2010년 9월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과 함께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급부상했으나 지난 4월 잇따라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직후부터 승승장구하던 리영호의 위상에 변화가 감지됐고, 최룡해가 리영호를 제치고 새로운 별로 등장했다.
최룡해는 군내 최고 직책을 맡은 뒤 차수로 승진, 이어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는데, 유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군에서 뼈를 묻은 리영호가 민간인 출신인 최룡해에 대한 불만을 주위에 이야기 한 게 김정은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최룡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곧 수령인 김정은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리영호를 숙청하면서 남아있는 고위층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런 전문가들은 리영호의 해임에는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단독 결정이 아닌 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고, 특히 유 연구관은 “리영호의 해임을 김정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며 “장성택이 먼저 제안해서 날리자고 했을 것이다”고 주장했으며 “김정은은 아직 권력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했고, 후견 권력인 장성택과 김경희가 보좌를 잘 해주고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되고 있다”며 “김정은과 장성택이 공동으로 군부를 향해 반항하면 철저하게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고 한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도 “김정은은 어차피 상징적인 인물이고 실권을 완벽하게 쥐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김정은도 동의를 했겠지만 김정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장성택의 힘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고 말했는데 이런 해임으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의 권력이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자신이 구상하는 세계로 향하기 위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야한다”며 “군부가 자신의 정책에 걸림돌이 되니까 군부를 대변했던 리영호를 제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체제가 새롭게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와 같이 “인민군이 노동당의 군대이기 때문에 당의 지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총참모장의 역할이 큰 전승 기념일(7월 27일)을 앞둔 상황에서 김정은의 측근을 중심으로 한 군의 세대교체가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입장도 있다.(참고출처: 데일리안 = 조성완 기자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97327
)
과거에도 북한 권력구도 요동으로 북한내 숙청 사례들이 많이 있어왔다. 그런데 김정은체제을 위해, 그가 후계자로서 지명된 후 20여명이 제거되었다고 한다.
즉, 이영호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된 2009년 이후 꾸준하게 진행돼 온 숙청작업의 일환으로 보이고 그간 김정은 체제 공고화의 걸림돌로 여겨져 제거된 북한 고위급 인사는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맨 먼저 숙청된 인사는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다. 2010년 3월 간첩혐의로 처형된 그는 당시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공식 지위를 굳힌 뒤 진행됐던 화폐개혁이 완전히 실패하자 북한 지도부는 박남기를 희생양 삼아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했으며, 당 경제담당비서 홍석형도 당 정책에 비판적인 언동을 하다 탄로나 2011년 6월에 해임됐다. 2011년 1월 국가안전보위부 실세로 여겨졌던 류경 부부장이 간첩죄로 처형당했고 제1부부장 우동측은 2012년 3월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총참모장 김격식은 4군단장으로 밀려났다. 김격식은 입지 회복을 위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도발을 총지휘했지만 아직 원래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뿐 아니라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도 최고위 인사에 대한 정치적 숙청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김일성 주석은 1968년 1월 청와대 기습, 같은 해 10월 무장공비 남파 등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당시 민족보위상(현 인민무력부장·우리 국방장관에 해당) 김창봉과 군 총정치국장 허봉학 등 군사·대남정책 주요 인사를 ‘좌경맹종주의자’로 몰아 잘라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김 주석 사망 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들을 차례차례 척결했었으며, 97년부터 2000년까지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부) 내에 ‘심화조’를 만들어 자신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숙청한 것이다. 개성시당 책임비서 김기선을 비롯해 2000여명의 당·정·군 인사들이 이때 직위를 잃었고,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3년이 지난 다음부터 대숙청을 단행한 데 비해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대담한 숙청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관측된다. 아버지에 의해 낙점됐던 이영호와 우동측을 쳐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해임이 다른 권력 핵심들에 대한 숙청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진무 연구위원은 17일 “김정은과 권력 엘리트 간 세력관계의 변화조짐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이영호 개인 비리에 대한 단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출처: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006252623&code=11121400)
이제 그들간 권력암투가 시작되어 토사구팽을 밥 먹듯이 하는 상황으로 가든지 언젠가 장성택도 같은 위치에 들어설지 모른다.
이영호가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 “신병관계, 모든 직무서 해임”이라 핑계를 대고서 최룡해와 노선갈등 등 당·군 권력투쟁 문책설 분분하지만 토사구팽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같다.
그 내면적으로 살펴보면, 김정은 체제의 실세로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인 리영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인민군 총참모장 겸임·70)의 전격 해임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리영호의 건강 이상 같은 개인신상 문제를 넘어 당·군 간 권력다툼에 따른 문책성인지가 관건이지만 여하튼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15일 정치국 회의를 열어 리영호를 신병관계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으며 구체적인 해임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 궁금증을 키우고 있고 리영호가 겸직한 인민군 총참모장까지 해임됐는지도 밝히지 않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인민군 인사는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의 결정 사항이지만 이례적인 ‘모든 직위 해임 결정’으로 볼 때 총참모장도 해임된 게 맞을 듯하다”고 추정했는데 그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위 사진은 김정은 옆은 최룡해 15일 실각한 것으로 보도된 북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왼쪽)이 지난 4월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경축 대규모 열병식 도중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오른쪽),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함께 군대를 사열하며 웃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리영호 해임은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 갑작스러운 조치이고 김정은 후계 옹립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까지 북한이 정치적 격변기를 별다른 동요없이 넘겨온 데는 리영호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의외의 사건이다.
불과 1주일 전까지 김정은을 수행한 점으로 미뤄 단지 건강 문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리영호는 지난 8일 김일성 주석의 18주기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할 때도 김정은을 바로 옆에서 수행했다. 그러나 일요일에 소집된 당 정치국 (전원)회의에서 리영호는 모든 직위를 잃었고 이런 사실이 이튿날 아침인 16일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격 공개된 것인데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간담회에서 “통상 북한에서 신병에 이상이 있으면 시간을 두고 인사를 하고, 모든 직위에서 한꺼번에 해임하지는 않았다”며 “대단히 이례적이고 전격적”이라고 말했으며 리영호 개인이나 군부의 조직적인 반발, 권력다툼 등이 있었는지가 최대 관심거리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군부의 집단반발보다는 민간 출신인 최룡해와 직업군인 리영호 사이의 권력경쟁 문제 때문이거나, 당의 군부 통제 과정에 리영호의 능력 부족이 노출됐을 수 있다”고 관측했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룡해를 통한 당의 군부 장악에 저항하다가 리영호가 해임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으로 군대에 대한 당의 장악과 통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영호가 김정일의 그림에 따라 김정은의 후계자 등극 과정에서 핵심인물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최룡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실세다. 북한군 체제상 리영호 총참모장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당적 지도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런 리영호의 해임은 당 조직 변화도 수반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중앙위가 “회의에서는 조직문제가 취급되었다”고 밝힌 것이다. 최룡해와 리영호가 나란히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한 자리를 없앤 것으로 해석되고 당 정치국 상무위원직도 줄어들었는지, 후임은 누구일지도 관심거리다.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8인방 중 한 명이고, 김정은을 밀착 수행한 리영호의 해임과 이를 하루 만에 관영매체를 통해 전격 공개한 것도 남측 당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통일부 당국자는 “(리영호의) 뭔가 불합리한 처사나 행동이 있었을 수 있다. 내부의 불안정한 부분이 있는지, 체제결속 측면에서 대남 적대적 행동을 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162149125&code=910303)
우선 이영호의 숙청에 기여하였다면 기여한 인물은 우동측이란 인물일 수도 있다. 그는 1942년 8월 8일자로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평원군에 태어난 자로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을 졸업한 후, 철학전문가 자격을 받았던 인물인데 그는 우동측(禹東測)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서 당중앙위원회 지도원, 부과장, 국가안전보위부 국장과 부부장을 지냈고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며,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대표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되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자이다. 우동측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해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에게 이영호등에 대한 북한정권 위협 위험인물 내사대장자로서 끊임없이 견제를 받거나 내사를 받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9A%B0%EB%8F%99%EC%B8%A1)
이영호의 숙청과정에 적용되는 다른 유명한 중국 고사성어가 있는데 그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전략이다. 즉, 적으로 하여금 적을 통제한다라거나 적을 이용(利用)하여 다른 적을 제어(制御ㆍ制馭)하는 것으로 유사한 어구로 이이공이(以夷攻夷)가 있는데 그 뜻은 문자 그대로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공격하게 한다라는 것이나 “후한서(後漢書)” “등훈(鄧訓)열전”에서의 이이벌이(以夷伐夷)라고 하여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토벌한다로 나오는 것과 유사한 어구로 즉,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것이다. 그런 전략의 본연의 뜻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그 문자 오랑캐 이(夷)자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 그런 고사성어가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미국의 핵무기를 빌리는 남한인이든 북핵을 가진 북한인이든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이든 한겨레 한민족의 구성원이라면 한민족 한겨레의 생존을 위해 자세히 그리고 냉철히 알고 있어야 한다.
중국(中國)을 문자 그대로 가운데 중(中)자에 나라 국(國)이니 중심이 되는 나라로 그 중국 주변 사방 동서남북이 오랑캐로 둘러싸여 있다라고 하는 뜻을 상대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즉, 중국이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을 동이족으로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 자신의 문명문화의의사표기 글자 문자가 없어서 중국입장에서 그 문명문화의 대표격인 한자한문이 없어서 중국문자를 다 빌어 쓰고 있어서 모두 자신의 문자를 모르거나 문자가 없는 오랑캐 나라나 야만족, 이민족으로 곧, 동쪽은 동이(東夷)라는 동쪽 오랑캐, 서쪽은 서융(西戎)이라는 서쪽 오랑캐, 남쪽은 남만(南蠻)이라는 남쪽 오랑캐, 북쪽은 북적(北狄)이라는 북쪽 오랑캐로 둘러싸여 있고 자신만이 오로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중국인의 자존심이 그 국가명에 들어 있다. 특히 그 중에서 동이는 동쪽 오랑캐인데 동쪽의 동이는 그 한자문자 그대로 보면 동쪽의 큰 활을 잘 쓰거나 쏘는 민족이란 뜻인데 그 중 오랑캐 이(夷)만 놓고 본다면 북방에서 옮겨갔든 동방에 어떻게 정착하였든지 간에 중국에게는 고사성어가 생길정도로 중국인에게 괴롭힘을 주었든지 심각한 위협이 되었든지 간에 혹은 중국이 이민족을 이민족으로 견제시킨다라는 말속에는 그런 오랑캐 이자를 쓰는 이민족을 현재 남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듯이 서로서로 경쟁시키거나 싸우게 하거나 갈라 세우거나 이간질시키거나 서로 싸우게 하여 폐허가 되도록 하든지 그토록 스스로 각자를 위해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지치게 만든 뒤 남한과 북한이 어느 쪽이 학이든 조개든 간에 학과 조개가 물고 서로 다투고 있으면 어부인 중국이 둘 다를 잡아갔다라는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잡아먹든지 공략함락 하든지 포섭포용하든지 한다는 전략으로써 하여튼 그 이이제이란 그 말이 생기게 될 정도로 큰 활을 잘 쏘아 괴롭혔든지 우려가 되었든지 간에 오랑캐의 대표주자로 중국이 견제하고 경계하였던 종족이거나 이민족으로 오랑캐 중에 오랑캐라고 하든지 아니면 그런 오랑캐들은 서로 잘 다투니 아주 서로를 잘 들쑤셔 놓으면 서로를 헐뜯고 서로 잘도 싸우다 지치거나 망가져서 제풀에 꺾일 때 쳐들어 가면 손쉽게 잡을 수 있다라는 그 한자의 문자를 가만히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 중국 사방에 있던 과거의 오랑캐들은 사대의 예를 갖추어 잘 버텨서인지 몰라도 동쪽의 동이족인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결같이 다 망해 중국이란 나라 안에 거의 다 멸망 포섭합병되었다.
과거 역사에서 보듯이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에 많은 고통을 주었던 한겨레 한민족의 나라가 아닌가. 그 중국이 북쪽의 고구려를 공격하도록 남쪽의 신라와 조약 협약을 맺고 꼬드기든지 혹은 이이제이로 고구려와 신라간 서로 싸우라고 하거나 한반도에 삼국 통일된 뒤 신라를 지배하려고 하였다가 제대로 되지 않자 북쪽의 오랑캐 발해를 남쪽의 신라를 제어하도록 하였듯이, 현재 한반도의 북한과 남한이 전쟁을 하라고 하여 협력하든지 간에 과거든 현재든 모두 이이제이 전략을 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런 고사성어들이 한민족에게 교훈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암시해 주는 바가 분명히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과학문명이 발달한 21세기 현재 아직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전략인 오랑캐들을 오랑캐들로 싸우게 하여 제약하게 만든다는 중국인들의 지혜앞에 남북한이 북핵의 핵이나 남한이 빌린다는 핵우산의 미국의 전술핵이든 서로 자신의 힘이 세다고 믿고 오만방자함을 넘어서 가지고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다투고 까불다가는 결국에 중국의 어부지리로 미국이 금욕 근검절약의 상징인 청교도주의와 자본주의의 최첨단에서 경제의 신경과 혈액인 금융에서의 “신뢰위기(信賴危機)”와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로 빚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사태에 따른 경제부실화와 불황가중 등으로 힘 빠진 상태에서 남북한이 전쟁하다 싸우다가 힘 빠지면 남북한이 공히 결국에는 중국에게 다잡아 먹힌다라는 비극적 시나리오 같은 다가올 중국의 식민지 내지 중국에 멸망 합병되는 한반도에서의 한민족의 미래에 관한 비운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하여튼 그 오랑캐 이자만 놓고 본다면, 한자 제자 6가지 원리상 어디에 해당하는가.
한자에서는 가장 처음에서 형태, 자연이나 사물의 생김새를 흉내내서 만들어 내서 글자로 모양을 본뜬 경우로 뫼 산(山)이나 내 천(川), 새 조(鳥)의 단순한 글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식이 “상형”원리이고, 추상적인 대상을 점과 선으로 나타내는 위 상(上)과 끝 말(末) 등이 이에 해당하는 “지사”원리이며, 두 개 이상의 한자를 모아서 새로운 뜻을 만들어 내는 글자방식으로 예를 들면 사람인(人)과 말씀언(言)을 합하여 사람의 말은 중요하다는 의미의 믿을 신(信)자를 만드는 식의 “회의”원리이고, 형태(形)와 소리(聲)를 적절히 합하여 새로운 뜻을 갖는 글자로 한 부분은 뜻을 한 부분은 의미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예를 들면 간(肝)은 신체 등을 뜻하는 고기 육(肉, 변에서는 月(육달월)처럼 쓰인다) 자의 의미부분과 발음부위를 나타내는 같은 발음을 갖는 방패 간(干)을 합하여 만드는 방식으로 전체 한자의 70%를 만드는 “형성”원리이며, 만들어진 한자의 뜻이 널리 쓰이도록 시대가 바뀌면서 기존 한자들 더욱 확장된 뜻으로 쓰는 “전주”원리이고, 그에 비해 뜻은 생각하지 않고 음만 빌려 쓰는 한자제자방식이 있는데 예를 들어 넉 사(四)는 콧구멍을 상형한 것이나 이후 4라는 뜻으로 가차되자 본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입 구(口)를 더한 숨쉴 희(呬)를 만들었는데 넉 사와 숨실 희는 현대 한국어에서는 그 음이 서로 다르나 상고시대의 음은 같았고 넉 사의 예처럼 본래의 뜻과 상관없이 가차된 문자는 본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새 문자를 만드나, 마칠 료(了)와 같이 가차되어도 본래의 의미를 고려한 새 문자가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마칠 료는 양쪽의 팔이 없는 아이를 상형한 것이고 근대에는 언어마다 한자음이 다르므로, 한국어를 기준으로 가차자와 가차된 문자의 음이 다를 수 있으며 중국어에서는 곡식 곡(穀)을 골짜기 곡(谷)에 가차하였고, 일본어에서는 분별할 변(辨), 말씀 변(辯), 힘쓸 판(辦), 오이씨 판(瓣)을 고깔 변(弁)에 가차하고 있으며 또 외래어의 발음을 적는 데 쓰기도 하는데 가령, 그리스를 헬라스의 음을 따서 ‘희랍’(希臘)이라고 하거나, 아시아를 ‘아세아’(중국어 정체: 亞細亞, 병음: yaxiya 야시야라고 하거나, 아메리카(America)를 '아묵리가' 라고 하는 경우나 또한 현대 중국어의 경우, 최대한 뜻을 비슷하게 부여하면서 옮긴 경우도 많은데 예로써 코카콜라는 중국어 정체자로 可口可樂(가구가락), 병음으로 kěkǒukělè(커커우컬러) 즉 입을 즐겁게 만든다는 “가차”원리 등이 있다.
(참고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C%9E%90)
이 중에 다른 글자를 합쳐서 새로운 뜻을 만드는 즉, 기존에 먼저 만들어진 각자의 뜻과 소리의 문자인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를 겹치거나 합쳐 써서 새로운 소리와 뜻인 오랑캐 이(夷)를 나타내는 한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회의 문자원리이다. 그리고 그 오랑캐 이(夷)자의 뜻으로는 제1차 기본의미가 “오랑캐”에서 더 나아가, 제2차 의미가 “동방민족, 중국 동쪽에 활을 잘 쓰는 민족”, 제3차 의미가 “잘못”, 제4차 의미가 “상하다, 활에 맞아 상하다”, 제4차 의미가 “죽이다, 멸하다, 활을 쏘아 죽이다”, 제6차 의미가 “평평하다, 평탄하다, 적을 평정하여 세상이 편안하게 되다”, 제7차 “온화하다, 안온하다”, 제8차 의미가 “기뻐하다”, 제9차 의미가 “ 크다”란 의미가 들어 있다. (참고 출처: http://osmstar.com.ne.kr/jawun/ja308.htm)
중국이 표현하는 뜻글자 한자 “오랑캐 이(夷)”에 한겨레를 대해 보거나 표현하거나 읽어내는 모습이 위 아홉가지 그 뜻 안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고 상징해 주고 있다. 한글창제 전에 중국 글자를 빌어 쓰는 문명 글이 없는 야만족 오랑캐, 활을 잘 쏘아서 서로 잘못을 저지르는 민족, 활을 쏘아 맞혀 상하게 하거나 멸하거나 죽이는 민족, 그렇게 서로 싸우다가 온화함과 안온함을 찾고서 서로 상하게 하거나 죽인 것을 기뻐하며 스스로 크다라고 믿는 민족으로 대변되고 있다.
오랑캐 이(夷)안에 중국이 견제경계하면서 한민족 한겨레를 대하던 우리 겨레의 비속비하함도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우리 한겨레 바로 지금 남북한 분단된 현실 앞에서 아직도 서로 총칼부림을 하기위해 서로를 자칫 누군가 들쑤셔 놓거나 이간질시키거나 서로 붙어 싸워라, 싸워라 부추기거나 서로에게 전쟁의 불을 붙여 먼저 던지면 남북한 서로 누가 더 많이 더 잔인하게 더 죽이고자 겨누고 있으면서 스스로에게 반성해야 함도 모두 묻어나고 있다.
오늘날 북한권력사회 내부적으로도 김정은이 그의 죽은 아버지 김정일이나 죽은 김일성보다는 더 허약한 군지지 기반을 모면하기 위해 김정은 입장에서는 북한 군권이든 당권이든 다른 유력 실권자를 통해 다른 실력자를 서로 견제토록 하기 위해 이이제이전략을 쓰고 있다고 본다. 즉, 김경희와 장성택이 최용해을 통해 이영호를 견제 숙청한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언젠가 김정은의 당권과 군권 등에서의 실권이 탄탄해지면 장성택도 다른 실력자에 의해 이이제이나 토사구팽 당해 숙청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돌아와 이영호 숙청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 보자. 북조선(북한)에서 리영호 전 북조선 인민총참모장의 해임 건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개방’을 위한 발언에 불만을 표출했던 사실이 도청에서 발각돼 숙청된 것이라고 보도했고 새누리당 관계자 측이 전했으며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최근 “세계가 조선 속에 있는게 아니라 조선이 세계속에 있다”며 대외적인 개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고 이것을 전해들은 리영호 전 북조선 총참모장이 “자기 아버지(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는 바깥세상을 몰라서 개방을 안 한 줄 아느냐. 우리 현실에서 개방하면 공화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비판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라이벌인 최룡해 군총정치국장 측이 도청을 통해 입수해 리영호 전 인민총참모장이 해임됐다고 한다.
(참고출처:
http://www.47news.jp/korean/korean_peninsula/2012/07/046178.html)
하여튼 그런 우동측과 北 김명국도 북한언론에서 사라졌다.
김정은 최측근인 우동측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2012년 04월 29일에 남한 챈널에이 언론매체에 보도되었다.
그 우동측은 김정일 위원장의 운구차 8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측근인 보위부 제1부부장인데 최근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마비에 언어 소통도 힘든 상태"라고 하면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계속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대북소식통이 전했던 것이다. 그 우동측 제1부부장이 지난 20년동안 북한의 국정원장 격인 보위부장 역할을 해온 인물인데 지난달 말 김정일 위원장 사망 100일 행사 이후 갑자기 모습을 감췄던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2인자급으로 인식돼 온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 숙청설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동지를 신병관계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짤막하게만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리영호 해임의 배경을 바로 집어내려 지식, 경험, 통찰력을 총동원하고 있고 북한내부의 불확실성이 동북아시아 안정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전문가들은 때론 전혀 다른, 때론 비슷한 ‘설’을 내놓고 있어도 그럴 듯하지만 확인되지 않는, 확인할 수 없는 ‘설’로만 나오고 있다.
첫째, 경제개혁 반발설이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개혁정책을 펴나가려는데, 리영호가 군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고 이 얘기가 김정은의 귀에 들어가 경질됐다는 주장이다.
둘째, 개인 권력 암투설이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급부상한 리영호를 견제하려는 경쟁자들이 연대해 리영호를 낙마시켰다는 것이고 특히 이 연대의 중심에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중심에 있다고 한다.
셋째, 군부 힘 빼기설인데 단순히 경쟁자들 간 권력암투가 아니라 당과 군의 조직 간 싸움에서 군이 패해 리영호가 희생됐다는 설이다. 당 정치국 명의로 리영호 해임을 발표해 군에 대한 당의 확고부동한 통제를 입증했다는 것이고 군령권을 가진 리영호의 제거를 북한 체제에서 신줏단지 모시 듯 다뤄 온 ‘선군정치’의 종말로 보는 견해이다. 김정은이 리영호 제거 후 원수 직위에 오른 것도 군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넷째, 낙마 예견설이다. 2010년 3차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은이 군대의 확고한 지지를 얻기 위해 군 출신 ‘리영호’를 띄웠고,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군부를 누르기 위해 민간 출신 최룡해를 띄우면서 리영호를 끌어내렸다는 것이고 계산된 수순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지도자 기만설이고 올해 양력설에 김정은이 군부대를 시찰했을 때 리영호가 영양실조 군인들을 사전에 격리 조치한 것이 발각돼 김정은에게서 질책을 받았듯이, 지도자를 속인 것이 화근이 됐다는 주장이다.
여섯째, 왕권 강화설이다. 군부를 등에 업은 리영호를 비롯해 가신들의 득세를 우려한 김정은이 가신에 대한 경고차원에서 리영호를 제거했다는 것이고“누구든 나대면 죽는다”는 경고를 한 셈이라는 것이다.
일곱째, 대외 강경파 제거설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활로를 찾아보려는 김정은 정권에 반미 선봉에 선 리영호가 큰 걸림돌로 작용해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다. 같은 맥락으로, 정권을 다지는 데 중국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한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반대하는 중국의 복심을 헤아려 군부 강경파의 대부 격인 리영호를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여덟째, 군사훈련 중 군부대 평양이동 쿠데타경계 견제설과 비리발각 척결설이다.
조선일보의 2012년 7월 27일자 단독보도로 안용현 기자와 박국희 기자에 의하면, 북한 리영호(70·차수) 전 총참모장의 전격 경질은 훈련 중 군부대를 독단적으로 평양 근처로 이동시킨 데다 자택에서 현금 수십만달러가 적발된 게 핵심 이유인 것으로 2012년 7월 26일 전해졌다.
리영호는 올봄 군사훈련 도중 군부대를 평양으로 이동시켰다가 반대파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 최룡해 총정치국장 등의 집중적인 비난과 견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최룡해는 또 리용호를 내사하던 중 리용호의 자택에서 현금 수십만달러를 찾아내 비리 혐의로 몰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화벌이 사업의 70%를 독점하던 북한 군부는 내각에 사업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긴 뒤 리영호를 중심으로 불만을 표출하다가 장성택 일파에게 꼬투리를 잡힌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국가정보원도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리영호 해임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리영호가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로 분석된다"며 "리영호의 비협조적 태도는 마음대로 군부대를 이동한 것과 군 세대교체 및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한 것에 불만을 표시한 것 등"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또 "북한이 김정은의 지시로 '경제 관리방식 개편TF'를 조직·운영하면서 협동농장의 분조(농사짓는 최소 단위) 인원 축소,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 당·군이 독점하던 경제사업의 내각 이관, 근로자 임금 인상 등 경제 개선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으나, "김정은이 사회주의 원칙 고수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어 근본적인 개혁·개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북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섰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목소리와 발성법은 김일성과 90%쯤 유사하다"고 했는데 그는 김일성처럼 더블 버튼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뒷짐 지는 모습까지 따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김정은이 김일성 출생 100주년 행사 때 첫 대중연설을 하면서 "앞으로"라는 외침과 함께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내리긋는 손짓을 했으며, 이는 김일성이 과거 연설에 자주 보이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활발한 현장 방문과 대중연설, 정책 지시 등을 통해 독자적인 정책 주도 모습을 부각하고 있지만 정치적 연륜과 북한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현실적인 지시를 하달하거나 모순된 정책을 추진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모 김경희가 김정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고, 고모부 장성택이 정책 조언을 하는 등 친족들의 후견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정보위원은 이날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이 북한 체제와 현실을 모르고 지시하는 게 많아 불만이 크다는 국정원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올 들어 김정은은 일부 개방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주민 감시 및 숙청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국정원은 이날 "체제 불안 방지를 위해 보위부의 권한을 확대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후계자 내정 이후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 총살 등 고위 간부 20여명을 숙청했다"며 "25년이나 공석이던 보위부장에 군 감시업무를 담당하던 김원홍을 임명하는 등 측근들을 권력 핵심부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27/2012072700344.html)
또한, 2012년 7월 18일자 조선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김정은이 리영호 해임하기 전에 군부대 이동금지 명령을 하였다고 한다.
리영호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군부의 최고 실세였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경질하기 전에 평양을 비롯한 주요 부대에 '유동(이동)을 금지하고 대기 상태로 있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자유북한방송이 2012년 7월 18일 보도했다고 한다.
자유북한방송의 신의주 소식통은 "2012년 7월 14일 오후 8시 호위국 간부를 만나러 갔다가 군부대 대기 명령이 내려진 것을 알았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총참모장 해임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고 리영호 참모장은 유동 금지 명령이 내려진 다음 날 모든 보직에서 전격 해임됐다라는 것이다.
자유북한방송은 "리영호의 총참모장 해임에 앞서 김정은이 내부의 불안과 군부 소장파의 반격을 차단하고자 미리 대책을 세운 것"이라고 하고 유동 금지 명령이 전달된 부대는 평양의 방어사령부, 정찰총국, 지방의 108 기계화 군단, 425 기계화 군단, 4군단 등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부대들이 유동 금지 명령을 준수하는지를 감시하고자 2012년 7월 14일 오후 5시부터 총정치국의 간부들이 현장에 배치됐다고 그 방송은 전했다.
자유북한방송은 "유동금지 명령의 지시는 리영호가 신병 때문에 해임되지 않고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숙청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8/2012071802235.html?news_topR)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 고 김정일의 선군정치에서 선민정치 내지 선경정치로 노선변경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일련의 이영호 경질 내지 숙청에 따른 많은 미스테리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 뭔가 차별화 내지 새로운 노선을 타의 반 자의 반이든 어쨌든 시대의 변화된 상황을 돌아보거나 앞을 내다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북한사회와 국제사회가 동시적으로 외압이든 내압이든 주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아버지 김정일의 인맥과 김정은의 인맥간에 새로운 알력이나 불만이 싹틀 수 있는 소지도 있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전방 사단장과 연대장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장교들을 기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에 승승장구했던 군 간부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작년 일선부대에 근무하던 60세 이상 장교들의 옷을 모두 벗기면서 이들의 반발이 컸다는 첩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당대표자회에서 군부 3대 요직 중 총정치국장(최룡해)과 인민무력부장(김정각)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김정일이 발탁한 총참모장 리영호는 유임시켰다.
다음은 장성택파대 비(非)장성택파간의 대립이나 알력 내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리영호의 실각을 통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탄탄한 입지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안정책연구소의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최룡해는 장성택의 아바타(분신)"라며 "리영호가 자신을 제치고 군부 1인자가 된 최룡해를 불편해하다가 장성택의 미움을 샀을 수 있다"고 했다.
장성택은 인민군 장성 출신의 두 형 장성우(2009년 사망)와 장성길(2006년 사망) 덕에 북한 군부 내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어놓았다. 정통 야전 사령관 출신의 리영호는 실력 하나로 총참모장에 오른 경우로 장성택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7/20120717002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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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리영호 해임과 관련해 이런저런 설이 있지만, 정작 북한당국이 리영호 해임이유로 공표한 ‘신병관계’에 수긍하는 전문가는 없다. 리영호는 해임 약 1주일 전 김일성 주석 18주기를 맞아 김정은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물론 병색은 전혀 없었다.
김정일 장례식 운구차를 호위한 7인방 가운데 우동측 전 국가보위부 제1부부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그리고 리영호 총참모장 등 3명이 밀려 났고 그 이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며 앞으로 누가 어떻게 권력에서 멀어질지 모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2010년 9월 북한 정권 실세로 떠올랐다가 2년이 채 안 돼 ‘죄인’ 취급받으며 안개처럼 사라진 리영호. 그의 정치적 명멸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는 숱한 설들. 북한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나라이다.
(참고출처: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nk_outlook/nkobservatory-07192012103942.html)
그 우동측이 이영호등을 북한체제에 대한 군부인사중 위험인물로 보고되면서 결국에 이영호는 누가 그런 보고를 김경희와 장성택에게 하여 김정은에게 보고되었는지 이영호는 나중에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알게 된 이영호는 우동측을 제거하는데 기여하였을 것이고서 그 자신 이영호도 역시 장성택과 김경희가 우동측의 보고를 보고 놀란 뒤에, 요주의인물로 낙점되었고 계속 최용해 등에게 견제를 받고 내사되면서, 김정은은 그의 죽은 아버지 김정일이 군부대 시찰이 잦지 않았던 것에 비해 계속 군을 견제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그간 자주 군부대 시찰을 가서는 김정은 자신의 젊은 패기와 화통함을 가진 젊은 장군이란 점을 북한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북한군기 다잡기 내지 끌어안기와 화기애애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써왔고, 특히 이런 일련의 군부대시찰은 이영호의 약점이나 반공화국 책동이나 책임을 물을 소지나 빌미 찾기에 혈안이 되면서 그 숙청의 빌미나 트집을 잡도록 관찰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김정은이 방문한 군부대 시찰 중에 이영호는 김정은에게 잘 보이려고 시찰 당하던 부대 돼지우리에다 인근 부대에 키우던 돼지들까지 다 모아 많은 돼지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잘 보이려다 김정은이 시찰 중에 옮겨온 돼지들이 돼지들의 속성상 금방 바뀐 다른 돼지우리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계속 울부짖어대자 왜 돼지가 울어대냐고 김정은이 원인을 묻고 그 자초지종을 알게 된 김정은이 그것이 이영호가 인근 돼지들을 몰아와서 부풀려 허위로 보고하려던 것이라고 책임을 물어 숙청되고 말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토사구팽된 이영호는 억울할 것이다. 그간 김정은을 옹립하게 위해 천안함 폭침, 연평포포격 등 포전문가인 이영호가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 위해 용감하고 패기에 찬 젊은 대장이라고 치켜세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남한을 도발 위협하였는데 그런 공은 다 어디가고 하루아침에 없애버리고 남북한 어디를 막론하고 그간 윗사람이 시찰 나온다고 하면 잘 보이기 위해 없는 것 있는 것 다 갖다놓고 씻고 닦고 시찰 환경정리 준비에다 다 못해 더 잘 보이려고 힘쓰던 것이 어디 어제 오늘 남한 북한 군이든 어디든 다 속성이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부상한 북한 노동당권 세력의 최용호등 견제세력에다 더해 어린 김정은이 북한군에서 세력기반이 약한 점도 군견제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겠고, 그와 더불어 또한 북한 노동당을 치켜세워 먹고살기에 버겁고 힘든 인민 경제분야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군보다 당을 더 챙기는 순으로 가면서 군세력을 억제해야하는 필요성과 군의 힘이 세지면 북한 쿠데타의 위험소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군기잡기에 여념이 없어 왔을 것이고 이영호에게 조금만한 트집과 빌미라도 잡아서 군을 다잡아 자신의 수하에 말 잘듣는 부하나 젊은 김정은 체제에 쉽게 충성하여 동조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고위직을 새롭게 부여하여 김정은 수하 부하들로 채워진 김정은 수하조직 만들기용 군기잡기 내지 군세력 길들이기 혹은 김정은 지휘체계용 군체제 안정화작업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news.ichannela.com/list/3/all/20120429/45872530/1
지난해 9월 9일 정권수립 기념 열병식에서 열병행사 내용을 설명하던 김명국 당시 인민군 작전국장(왼쪽 사진 왼쪽)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는 최부일 부총참모장(오른쪽 사진 왼쪽 뒤편)이 김명국의 역할을 맡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열병식 브리핑은 최부일이 담당하였다 한다.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김명국 인민군 작전국장이 최근 모습을 감췄는데 그런 김명국은 김정일의 신임을 받던 군 작전 라인의 핵심이었고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었는데 그런 북한 엘리트그룹 내부에서 김정은 정권유지와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대적이 되거나 반발 내지 불만세력에 대한 대대적 숙청작업이 일어나 공식석상에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보아 그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 주석단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뒤편에 서 있다가 수시로 행사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열병보고를 한 최부일 인민군 부총참모장이 맡았다. 지난해 9월 9일 정권수립 기념 열병식까지 김명국 작전국장이 맡았던 역할이다.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 열병식에서는 이명수 당시 작전국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김명국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최부일이 주석단 행사 설명까지 맡은 것으로 미뤄 그가 작전국장에 새로 기용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부일은 2010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대장 계급장을 달았고 당 중앙군사위원에도 진출한 김정은 측근이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정찰총국장과 함께 작전국장은 실제 육해공 병력을 움직여 작전을 실행하는 주요 보직”이라며 “작전국장에 최부일이 발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참고출처: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http://news.donga.com/3/all/20120419/45633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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