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8월 21 ~2023년 10월 10일
김기선 집사님은 에녹이라는 이름을 가지셨다. 독자로 태어났고 병에 걸리면 죽기가 쉬운 시대였기에 부모님들은 아이의 생명에 대한 염려가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던 에녹이라 이름을 지었다. 요즘이야 이름 짓는 방법이 다양하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일이 거리낌이 없지만, 1935년에 태어난 아이에게 에녹이라고 부른 것은 파격적이다.
그의 모친인 한부녀 권사님에 대한 글에서 이미 밝혔거니와 김기선 집사님은 어릴 때 병치레를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기선 집사님이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을 때 어린 아들에게 “아들아! 우리 한번 교회 가볼까?”라고 하니 등에 있던 김기선 어린이는 등에서 펄쩍 뛰며 좋아했다고 한다.
간신히 말귀를 알아듣는 어린아이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좋아했을 리는 없다. 집사님의 어머니는 아프기를 잘하는 아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해서 교회에 나가고 싶으니 등에 있던 아들이 펄쩍거리는 것을 사인으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실상은 그런 마음을 넣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을 것이다.
어쨌거나 김기선 집사님 때문에 어머니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김기선 집사님도 엄마와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는 영광을 누렸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규수를 만나 결혼을 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 복을 누렸고, 부부가 안수집사와 권사가 되어 교회를 섬겼다.
김기선 집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사시다가 88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얼마간 아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고생하지 않고 수를 다 누리셨다. 그 어머니의 소원처럼 장수를 누렸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성품을 가졌고 선한 마음을 가졌지만, 믿음의 표현이 모자랐다. 적극적인 성품이 아니어서 나서지도 않고 믿음의 결단이 더디기만 했다. 신앙의 연륜에 비하여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벌써 후대에서 믿음의 연속성이 위협받고 있다. 3~4대에서 신앙이 위태로우니 5~6대로 이어지게 될지 의심스럽다. 일찍부터 믿음의 조상을 두었다는 것은 큰 특권인데, 그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그래도 그들의 선조들이 쌓아둔 기도에 힘입어 믿음을 회복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가문을 영광스럽게 이어가게 될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희망 사항으로 그치면 안 된다. 다른 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어도 믿음의 일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믿음은 지켜야 하고, 믿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 한다. 기어이 천대까지 믿음이 이어져야 한다. 집사님의 가정이 꼭 그렇게 되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