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에는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서 전도활동을 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소동이 그치자 바울은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아카이아와 마케도니아로 떠납니다. 아카이아는 지금의 그리스, 마케도니아는 지금도 마케도니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저자가 다시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형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바울이 죽은 청년을 살려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바울이 어느 다층 건물에서 밤이 깊도록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말씀을 듣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유두고의 몸 위에 엎드려 기도한 후 청년이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후 밤새도록 교인들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다 날이 새자 떠나갔고,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소아시아의 서쪽 해변을 따라 항해한 바울은 에베소와 가까운 밀레도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설교합니다. 18~24절을 보겠습니다.
18 장로들이 오니,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
19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또, 유대 사람의 음모로 내게 덮친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20 나는 또한 유익한 것이면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우리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2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성읍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내가 내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바울의 설교 앞부분입니다. 이어지는 설교에서 바울은 장로들에게, 스스로를 잘 살피고 교인들도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환난과 핍박이 닥치겠지만 잘 이겨내 달라는 부탁도 남깁니다. 자신에 대한 변명도 합니다. 자신이 목회와 전도활동을 하면서, 누구의 재물이나 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고, 필요한 물건은 자기 손으로 일해서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35~38절을 보겠습니다.
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36 바울은 말을 마치고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 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대상으로 한 이 설교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장로들은 오늘날 개신교의 장로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개신교 장로는 목사를 도와 교인을 돌보는 평신도를 말하지만, 당시의 장로는 목사나 사제라는 직제가 없는 상태에서 교인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교회의 최고 어른이었습니다.
서기 4세기에 교회가 인정한 직제는 주교, 장로, 사제, 부제, 이렇게 네 단계로 정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장로는 점점 위상이 높아져 4세기가 되면 사제보다 높은 직제로 인정받았습니다. 당시에 주교는 지역의 교회 전체를 관할하는 사람이었고, 개교회는 장로들이 오늘날의 담임목사나 주임사제와 같은 위상을 갖고 개교회를 책임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 설교는 개신교 목사나 천주교 사제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