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ón 하몽
내 아픈 심장은 어느 날 하몽이 되었다.
하몽은 써는 장인의 기술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스페인 하몽 장인, 마에스트로 하모네로( Maestro Jamonero) 는 수십 년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돼지 뒷다리의 상태를 파악하고 최고의 맛과 향이 나도록 예술적으로 썰어내고 플레이팅 한다. 숙련된 카빙 전문가이다.
신께서 날이 길고 유연한 스페인산 베허(BEHER) 장검을 사용해 수십 년간 고통에 절인 심장을 시계방향으로 도려내셨다. 내 심장은 고통이 숙성시킨 최상급 이베리코 하몽이 되어 로열 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도자기 위에 달리아 꽃처럼 섬세하게 담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버릇 중 하나가 타인의 삶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남의 인생을 쉽게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길! 당신의 인품에 미리 감사를 드리며..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정약용도 정지용도 극복 못한 고통이 분명 있다. 이 고통의 내면을 가늠하기는 일반인에겐 불가능이다.
고통이 내 삶에 하루 종일 달라붙어 심장을 붉은 꽃잎처럼 얇게 저민다. 지인들이 던지는 어설픈 위로와 엄마의 쓸모없는 조언이 가장 힘들고 아프다. 지독한 상실엔 그냥 모른척해야 한다. 이젠 그 누가 죽어도 그냥 그런가 싶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죽음과 나의 근거리가 더 정겹고 가까워졌음을 체감했을 뿐이다.
어제 갑자기 삼촌께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은 가장 좋은 옷과 멋진 모습으로 가야 한다.
오랜만에 명품들을 꺼낸다. 남편이 여자의 백과 옷은 그녀의 남자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했다. ( 난 남편의 이런 면들이 좋다. 그는 언제나 넉넉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견디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색한 남자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인척들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었다. 두런거리는 말소리, 할 말이 산처럼 쌓여도 안 했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삼촌의 여전한 침묵이 그리운 하루였다. 비참한 하루를 무심코 받은 영수증처럼 구겨버렸다.
2년 동안 끊었던 정신과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안주로 술을 마신다. 제정신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무너져 내리는 내가 이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해 본다. 두려움의 실체를 그려본다. 모든 것은 마음과 자세의 문제이다. 나는 내면 성찰의 기초학습이 부족한 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물을 데운다.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몸 구석구석을 혈관 하나하나를 타고 향해 달린다. 그냥 최소한의 삶의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요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수천만 원짜리 레이저기기를 택배비만 천만 원 넘게 들여 미국에 가져갔지만 일부는 고장이 나고 일부는 박살이 났다. 다시 한국으로 반품하는데도 관세사와 통관사를 한국과 미국에서 두 명이나 사야 했다. 작성해야 할 서류도 복잡하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지하방에서 공부하고 딴 자격증도 의미를 잃었다. 미국 비자 신청을 위해 변호사도 사고 수업료와 I20 비용, 인터뷰 비용 수백만 원을 들였다.( 미국의 VISA 장사 놀이에 놀아난 기분이다. ) 이것저것 다 해도 별 볼일 없는 순간이다. 극도의 긍정주의라 맘에 두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감옥에 갇혀도 책만 던져 주면 그러려니 하고 잘 살아갈 내가 지금 이 순간 책에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삶이 재미가 없어졌다. 삶에 관한 모든 흥미가 사라졌다. 그 무엇에도 마음 흔들리지 않아 좋다. 날개 달린 구두를 신은 바람의 신이 왔다 갔다. 설렘을 도둑맞았다.
퉁퉁 부은 손은 두 달째 쓰리고 아프다. 손가락 사이사이 면도날이 박혀있는 느낌이다. 내 손의 흉터들은 내 몸의 나이테이다. 영혼은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고즈넉한 밤, 혼자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묵직하고 강렬한 블루스 락을 튼다. 거친 세상에 비장하게 살아내겠다는 내 의지의 표명이다. 이 지독한 고독을 잡고 무언가는 하고 싶다. 제발 대충 살지 말자 마음잡는다. 활력을 잃어가는 열정도 꺼내 호흡을 불어넣어 본다.
일기는 성찰의 토대이자 내면의 발현이다. 매일 성실하게 기록하기를 다짐해 본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하기, 언어는 깨어있는 시간 계속 공부해도 항상 부족하다. 수시로 신조어가 생긴다. 남은 날은 기록하자. 쓰고 또 쓰자. 살기 위해 쓰자. 나를 나타낼 1분 스피치 연습하기, 불 켜고 거울 보기, 두려움을 박살 내는 연습을 한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나로 살아가기, 무엇이든 진중하게 하자. 신들린 듯이 하자.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자가 되자. 아직은 삶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라고 누가 나를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객관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책 읽고 반성하고 하루 계획 세우기, 예쁘게 말하기, 살수록 말 잘하기가 어렵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말 잘하기의 달인보다는 사실 경청의 달인이고 싶다. 날마다 반성의 되새김을 하지만 잘 안된다. 가만히 들어주고 추임새만 잘 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생각 없이 말했는데 돌아온 답이 경멸일 때는 어떻게 대처할까? 오십의 공부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 것일까? 삶의 파도를 넘고 싶은 그런 밤이다. 나를 끝없이 당기는 것은 중력이 아니라 내 안에 파고든 우울의 장력이다.
산길을 돌고 돌아 장승 마을에 갔다. 남편도 나도 바라는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냥 말없이 내려왔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