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호칭
부모를 다른 사람 앞에서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전통적인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부모를 말할 때는 언제나 높여야 한다. 여러 사람 앞이나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도 자기 부모는 깎듯이 높여야 한다.
아주 지체 높은 분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아버지가 그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아버지를 대중 앞에서는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깎듯이 높이는 것이 맞는 화법이다. 지난날에는 임금 앞에서 자기 아버지를 낮추는 것이 예법이었다. 그것은, 모든 백성은 임금의 신하라는 당시의 계급사회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민평등 사회다. 자기 부모를 낮추어야 할 대상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아빠 엄마는 어린 아이 말이다. 적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말을 쓰지 말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
성년이 다 된 사람이 아빠, 엄마란 호칭을 쓰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다 큰 고등학생이 퀴즈를 맞히고는, “엄마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하는 것이나, 군대에 복무하는 아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 “국방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으니 아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큰 소리를 외치는 것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은 말투다.
살아 있는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님, 어머님은 타인의 부모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아버님, 어머님이란 말을, 살아 있는 부모를 부르는 말로 전래적으로 써 왔기 때문이다.
고려속요 사모곡에도 “아바님도 어이어신마 어마님티 괴시리 업세라.”라는 구절이 있고, 시조집 고금가곡에도 “아바님 가노이다 어마님 됴히 겨오”라 하였고, 송강도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시니”라 읊었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부모에게도 아버님, 어머님을 써 왔고, 지금도 널리 쓰고 있으니 굳이 말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버님, 어머님은 아버지, 어머니의 높임말로 인정함이 타당하다.
아버지의 형제를 부르는 말에는 백부(伯父), 중부(仲父), 숙부(叔父), 계부(季父)가 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형제 중 중간이 아니거나, 그 형제가 다섯을 넘을 경우에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첫째아버지 둘째아버지 식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어법상으로나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말은 아버지가 둘 이상이라는 어감을 품게 되어 저항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째어머니라 하면 서모나 첩을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을까?
자기 아버지의 형들은 일단 큰아버지들이고, 그 동생들은 작은아버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큰아버지들은 큰아버지들대로 서열을 매기면 되고, 작은아버지들은 작은아버지들대로 서열을 매기면 된다. 즉 큰아버지가 셋이면 맨 위로부터 첫째큰아버지, 둘째큰아버지, 셋째큰아버지라 부르면 되고, 작은아버지가 둘이면 역시 첫째작은아버지, 둘째작은아버지라 부르면 된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사를 지낼 때 읽는 축문(祝文)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이가 맏이인 경우, 그 이름자 앞에 효자(孝子)를 붙여 쓴다. 효자 ◯◯가 제수(祭需)를 드립니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부모가 살았을 때 변변히 효도를 하지도 않아서, 제사 때 효자란 말을 붙이기가 민망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때의 효자란 말은, 부모를 잘 섬기는 아들이란 뜻이 아니라, 부모의 제사에서 맏아들의 자칭이나 또는 부모의 상중에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니 이때의 孝 자는 ‘효도 효’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喪) 당할 효’ 또는 ‘복(服) 입을 효’로 읽는 뜻인바, 생전에 행한 효의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어버이 제사를 지낼 때 축을 읽으면서, 효자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았을 때 효도를 잘 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 경우, 답조장(答弔狀 조위에 대한 인사장)에 쓰는 자신에 대한 호칭은 이러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어머니만 여의면 애자(哀子)라 하고, 반대로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고자(孤子)라 하고, 두 분 다 여의면 고애자(孤哀子)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죽은 지 석 달 만에 오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졸곡제(卒哭祭)부터 이후 제사에는 효자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