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아직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 많은 열리지 않은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류시화-
11월 27일 아르헨티나에서 이과수 폭포를 보고 온 날 저녁에,
홀로 호텔방에 앉아 잠시 상념에 잠겨있을 때 문득 메신저를 통해 건너 온 류시화씨의 시 ‘여행자를 위한 서시’
예전에 읽었던 시였는데 마치 처음 읽었던 것처럼.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다시 길을 물어야 하는 여행자의 가슴 떨리는.
아니 가슴 떨렸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혹은 떨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 맞는데 많은 여행 중에 잊고 있었습니다.
36일 일정의 남미 여행을 모두 마치고,
태평양을 무사히 건너와 준 고마운 비행기에서 인천공항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난데 없이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인솔자로서 그러면서도 여행자로서 36일의 남미 일주를 끝낸 후의 후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그 이유를 저도 알게 될까요.
1차 남미 일주팀, 드빙에서는 나름의 최신 여행 정보와 루트 등을 고심하여 연초에 인스펙션 여행까지 다녀오면서 7월에 여행 공지를 했었습니다.
마침 인기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페루를 다녀오는 것이 방영되고 있었고,
최근에 특히 많은 팩키지 상품들이 남미를 겨냥해 여행자의 마지막 보루라는 남미여행의 인기가 점점 오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미 여행이 25일 일정이든 그 이상으로 길어지든, 자유여행이든 팩키지든 간에 제법 많은 블로그의 여행기를 올린 사람들의 얘기 중 공통점은,
넓은 대륙을 이동하는 동선을 극복하고 다양한 기후를 거쳐오며 견뎌야 하는 체력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미는 다녀 온 이들에게나 다녀가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꿈의 여행지인 것 만은 분명합니다.
여행 공지 2주 만에 정원 14명이 모두 정해지고, 본격적인 여행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0월 26일 출발일이 가까워지니 3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저를 포함한 15명의 사람들이 계획한 일정대로 무탈하게 일정을 잘 마치길 바라는 고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제 나름의 많은 인솔경험과 아프리카 지역의 장기여행 인솔까지 경험이 있었지만 쉽지 않은 여행지임을 알기에 유독 긴장되는 마음을 ‘내 자신을 믿자’라는 다짐으로 꾹꾹 눌러가며 10월 26일 여행 출발일에 무사히 첫 번째 여정지인 페루의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페루를 여행하면서 꼭 보아야 할 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우리 일정에서는 수도인 리마, 리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파라카스 지역의 해안 국립공원, 이카 사막과 와카치나 오아시스, 나스카 문명의 미스터리인 나스카 라인, 북쪽의 아마존 지대 이키토스, 잉카의 수도 쿠스코와 주변 성스런 계곡 지역,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그리고 볼리비아로의 국경을 넘기 위해 지나가는 푸노까지…
한반도의 6배가 넘는 큰 나라 안에서 12일 안에 이 일정을 소화해 내려고 온갖 탈 수 있는 것들은 다 탔습니다.
비행기, 버스, 기차, 보트 등등.
14시간의 시차.. 한국보다 14시간이 느립니다.
하루 이틀 만에 시차에 적응하는 저 같은 여행체질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시차적응부터가 여행의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로 이동도 제법 길어서 페루 여행 초반에는 새벽별을 보며 나와야 하는 피곤한 일정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장 쌩쌩한 상태로 왔을 때 힘든 일정은 먼저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일정을 짤 때 기본적으로 고려한 상황입니다.
어차피 볼 것은 봐야 하니까요.
이번 여행은 전체적으로 평소 제가 인솔하던 다른 여행보다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 여러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꾸 카메라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카메라가 고장났다가 셀프로 고쳐지는 새로운 기능까지 맛보고, 필터에 먼지가 들어가 찍는 사진마다 얼룩이 하나씩 생기기도 했지요.
그리고 페루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님이 설명이 너무 부족했던 탓에 리마 투어 첫날부터 인솔자로서 참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가이드 잘 만나는 것도 여행의 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제가 페루에 와서 다른 분들도 만나보고 결정한 가이드님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급히 현지인 영어 가이드를 고용해 제가 통역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고 한국인 가이드님은 그 와중에도 우리 팀과 함께 하며 페루구간이 끝날 때 까지 우리팀을 케어하면서 결국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마음 고생, 몸 고생한 가이드님께 감사와 함께 죄송한 마음도 전합니다.
리마는 사실 남미의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크게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닙니다.
태평양을 마주보는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이 도시를 짧게 둘러보고 우리는 리마의 남쪽 파라카스 해상 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밥 먹으며 길을 나섰지만 도중에 컨테이너 차량이 넘어져 도로를 막는 사고의 여파로 차 안에서 몇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좁은 도로에서 차들이 서로 먼저 가려고 역주행을 하기도 하는 헤프닝 속에서 페루라는 나라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들어섰습니다.
수도 리마만 벗어나면 급격하게 몇 십년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죠.
수만 마리의 새들과 물개가 서식하는 바예스타 섬으로 보트 투어 및 파라카스의 고즈넉한 해안 지대를 돌아 이카 사막 안의 와카치나 오아시스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자 마자 사막의 일몰도 보고 스릴도 맛 볼 사막 버기 투어에 몸을 싣고 샌드듄 위를 내달렸던 순간은 정말 신났습니다.
젊은 사람들만 스릴 즐기란 법 있나요.
몸은 60대라도 마음만은 청춘인 우리 팀은 사막 버기의 스피드와 샌드듄을 넘나들며 요동치는 버기 안에서 멀미가 날 지경이라도 무사히 샌드보드까지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한 경비행기 탑승 전에 인솔자로서 참 힘든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타 본 경험으로는 멀미가 도통 뭔지 모르고 사는 저에게도 약간의 울렁거림을 동반했었던 기억이 나고,
이미 많은 남미여행 블로거들이 경비행기가 멀미가 많이 난다고 후기를 올렸던 차에 많은 회원님들이 타기 전부터 멀미 많이 나는 거 맞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닙니다. 탈 만 하실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안 타시는 분이 생길 것 같아 다소 멀미를 하더라도 개인차가 있으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었습니다.
지정된 코스대로 나스카 라인을 보기 위해 비행기는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선회합니다.
그 때가 바로 울렁거림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경비행기 안에는 토할 때 쓰라고 아예 비닐봉지를 준비해 줍니다.
결국 경비행기 탑승 후 몇몇 분들이 멀미로 고생하시는 걸 보고 죄송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누가 얼만큼의 멀미를 할 것인가는 타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함정입니다.
멀미로 고생하신 분들께는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댓글 드디어 기다리던 후기가 올라왔네요
가신분들을 보니 또 다른 아는분이 보이네요
맘고생 많이 하신듯 하군요 그것조차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지요
마추피츄님. 감사해요 ^^
함께 오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하고 이번 여행 내내 채송화님과 얘기했답니다
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군요.
이 두근거림~ 좋슴다.
별 건 없지만 즐감 해주세용 ~~
멋진 여행기 편안히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
고단함은 좀 풀리셨나요? 여행하시는 분들이 힘드셨다면 가이드는 말 할 것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후기 올려주셔서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남미여행 관심가지고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획하고 계신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나스카 사진 멋지네요. 난 요기를 못가봐서 ~~ 리마 왕궁앞에서 경비병 교대식 구경하던 일이 새롭네요. 너무 싱거웠던. ..
모래언덕 타고내려오는거 보니 나도 신나네요. 아타카마에서 저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ㅎ ㅎ
나스카 사진 좀 남겨보려고 열심히 찍었었는데 외려 휴대폰 카메라 결과물이 더 낫더군요 ㅎㅎ
사막투어는 언제해두 신나요. ^^
사진 좋습니다 멋집니다.. 1월에 어디로 가야는지 고민중입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1월엔 어딜가나 성수기네요 ^^
역시 천박사 사진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무엇한개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마음을 어찌알리요 음식이면 숙소며 안전 건강 모든것들 챙겨서 오시는라 정말 고생많이하셨고 큰박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