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항상 이렇게 있습니다.
창문을 닫는 것도 포함해서요.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소음을 듣는 것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는 것 
몸의 느낌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호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일어남 속에서
분리된 개체가 존재한다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나는 분리되어 있고 이것은 나의 몸이며
 
그 나가 지금 의자 위에 앉아 숨을 쉬고
 
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느낌과 개념 속에서 분리된 개체가 생겨납니다.
 
분리된 감각과 주관의 감각이 생기고
 
다른 모든 것들은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 되고 다른 모든 일들은
 
내 주위에서 일어납니다.
 
저 외부의 것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느낌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똑같은 꿈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워갑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들 속에서 이런 감각은 강화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그것은 모두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것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 성직자와 직장상사 아내와 남편 등.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개별적 존재라는 느낌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분리된 존재 속으로 에너지가 집약됩니다.
 
개별적 인간이 되어 스스로를 외부세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죠.
 
어쩌면 그 세상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개별적 존재라는 느낌 속에서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상실의 느낌
 
완전하지 않다는 느낌
 
혹은 뭔가 빠져있는 듯 한 어떤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담을 받기도 하고
 
또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깨달은 스승을 찾아 나서죠.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개별적 존재로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추구의 에너지로 스승을 찾지만
 
그 스승들 역시 분리된 개인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이며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스승들은 어떤 깨어남의 경험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자신이 깨달았다고 확신할 수도 있죠.
 
왜냐하면 그들은 명상이나
 자기탐구 같은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개념을 개인들에게 열심히 전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분리된 개인이며 깨닫기 위해서는
 
명상 같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든 방식들의 근원에는
 
독립된 실체가 존재한다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도달할 무엇이 있다는 것이죠.
 
 
또 분리라는 개념을 살펴보면
 
그곳엔 항상 얻을 무엇이 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기대 속에 살아갑니다.
 
 
모든 에너지는 더 많은 것들을 얻는 쪽으로 향하고
 
그 꿈속에서 더 행복해지려 애쓰며
 
부자가 되고 더 좋은 연인을 만나려 합니다.
 
 
이렇게 늘 다음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기다림 속에는
 
그 일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고
 
삶을 만족시켜 주리라는 느낌이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분리의 감각을 지속시킵니다.
 
 
개인의 노력이라는 모든 가르침들은 어떤 것을
 
얻어야하는 분리된 개인의 감각을 강화시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이란 분리된 개인이란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해방은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임에 오시는 많은 분들도
 
여기에 뭔가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곳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느낌이 생겨나고
 
어떤 것을 얻으려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개념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방에 그 어떤 개인도 앉아있지 않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런 개인은 없습니다.
 
분리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늘 텅 빔만이 존재하며
 
그 텅 빔 속에서 모든 것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해방의 근본 원리입니다.
 
 
갑자기 외부세계와 당신이 존재하고
 
세상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나는 곳에서
 
우리는 지금 이 외부에 있는 것이 전체로 녹아들어갈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깨달음 속에는 어떤 개인도 없으며
 
어떤 선택이나 이뤄야할 일,
 자유의지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는 꿈속에서는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선택하며 좋고 나쁨을 결정합니다.
 
 
해방은 어떤 개인도, 어떤 선택도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항상 이렇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들을 종합하고 함께 나누어
 
다시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개념을 다시 나눠본다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기에 마음을 열면
 
에너지의 도약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도약은 축소된 존재로부터
자신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 분리된 개인이라는 틀 속에서
무한함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무한함, 이 에너지는
 
어느 개인에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토니 파슨스라는 개인이나
 
여기 있는 어떤 누구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소유할 수 없는 무한함입니다.
축소된 것에서 
무한함으로 팽창하는 것 그것이 해방입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 가능성을 공유하면
 
명징함이 솟아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솟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해방이 아닙니다.
 
그 속에 여전히 명료한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고
 
어떤 것을 이해한 분리된 개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방이 아닙니다.
 
 
해방은 축소된 것으로부터
 
무한함과 알지 못함으로의 에너지의 도약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함으로의 모험이며
 
그것은 자유낙하의 삶으로의 모험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 속으로의 모험입니다.
 
 
지금 의자에 앉아있음이
 
숨을 쉬고 있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항상 이것은 이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 토니 파슨스 -
	 					
	
	 
첫댓글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모두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 그것은 개체넘어 무한함입니다.
축소된 것에서
무한함으로 팽창하는 것 그것이 해방이요 해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