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1946~1997)는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대담하고 화려한 컬러감의 이브닝 웨어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이끌어간 중요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여자 괴물인 메두사(Medusa)의 금빛 머리를 로고로 하는 베르사체 디자인 하우스의 패션은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 관능미, 사치, 황홀감, 쾌락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뛰어난 입체 재단 기술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살린 간결한 라인의 베르사체의 드레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비잔틴,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 예술, 현대 미술들이 생생하게 표현된 화려한 컬러의 고급 이탈리아산 프린트 원단, 체인 메시(chain mesh), 가죽, PVC소재들과 함께 어우러져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과 관능미, 정열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화려한 소비의 시대에 베르사체의 의상은 성적 욕망, 아름다움과 부유함를 뽐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과시욕을 만족시키며 ‘럭셔리한 퇴폐’라고 불렸으며, 착용자의 자신감, 성공의 표식이 되었다.
남부 이탈리아의 소년, 어머니에게 쿠튀르 패션을 배우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1946년 12월 2일, 이탈리아 남부의 컬러브리아(Calabria)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재봉사였던 어머니 프란체스카(Francesca Versace)와 가정용품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 안토니오 베르사체(Antonio Versace)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패션 비즈니스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아니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아틀리에의 한 구석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을 익혔다. 프란체스카는 컬러브리아의 고객들을 위해서 당시 유행하던 파리의 패션,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앙 디오르(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 1905~1957)의 드레스들을 복제해 판매하였다. 지아니는 재단하고 남은 작은 원단들로 인형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는데, 9살에 첫 드레스인 원 숄더 벨벳 이브닝 드레스를 완성하기도 했다. 지아니 베르사체가 뛰어난 재단 실력을 소유한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디자인 스케치를 하는 것보다 먼저 옷의 복잡한 내부 구조와 옷을 만드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지아니는 패션이 그의 길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의상실에서 본격적으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장식에 쓰일 비즈, 레이스와 같은 고급 부자재, 이탈리아산 고급 소재 같은 자재들을 직접 구매하는 일을 담당하면서 다양한 쿠튀르 장식 기법과 소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컬러브리아의 작업실에서는 어머니에게 입체 재단과 같은 재단 기법을 배우고, 매장에서는 손님에게 판매하는 일을 통해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는 등 이 시기 그는 패션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초석들을 다졌다.
밀라노 패션계의 새로운 바람, 베르사체 제국(Versace Empire)의 시작
지아니 베르사체는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1972년 이탈리아 패션계의 본고장 밀라노(Milano)로 건너갔다. 플로렌틴 플라워즈(Florentine Flowers) 브랜드에서 첫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니(Genny), 컬러강(Callaghan), 컴플리체(Complice)와 같은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회사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제니(Genny)사를 위한 스웨이드(suede)와 가죽을 이용한 패션 디자인, 컴플리체(Complice)를 위한 화려한 이브닝 가운 디자인 등과 같은 다양한 디자인 경험은 후에 지아니 베르사체 디자인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라는 거대한 꿈을 품고 있었던 지아니 베르사체는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사업 파트너가 필요했다. 1976년 경영을 전공한 형 산토 베르사체(Santo Versace, 1944~ )가 동생을 돕기 위해 밀라노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지아니 베르사체 컬렉션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지아니는 형 산토의 도움을 받아 1978년 밀라노의 대표적인 쇼핑가인 비아 델라 스피가(Via della Spiga)에 쇼룸을 오픈하고, 그해 말 팔라조 델라 페르마넨테 아트 뮤지엄(the Palazzo della Permanente Art Museum of Milan)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임으로써 곧 이탈리아 패션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이듬해인 1979년에는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