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와의 同乘'… 탈도 많던 택시 합승…
정치 논쟁하다 '車內 격투'… 남녀 인연도
택시 동승(합승)
서울 잠실 아파트단지의 3000여 가구 주민들이 '택시 횡포' 때문에 임시 반상회를 여는 일이 일어났다. 1978년 8월 25일의 일이다. 출근 시간에 택시 합승을 할 때 부당한 요금을 요구하는 택시들이 많아 주민들의 고발 운동이 일자, 택시들이 그 보복으로 잠실 아파트 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아파트 앞 택시 정류장에 100여 명이 장사진을 이루는 사태가 한 달째 이어지자 주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경향신문 1978년 8월 26일 자).
1970년대에도 택시 합승(合乘)은 불법이었지만 시민들에겐 상식이었다. 당국은 교통난을 고려해 묵인했고, 승객들은 조금 싼값에 택시를 탈 수 있다고 여겼다. 당국이 1982년 9월 택시 합승 전면 금지를 선언했으나 그 후로도 20년 넘게 합승은 사라지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끼리 택시를 함께 타는 이 변칙적 시스템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떤 손님에게 유리하게 코스를 잡느냐는 문제로 시비도 잦았고, 요금 산정을 놓고도 다퉜다.
“법으로 금지된 택시 합승이 성행해 시민들 짜증을 더하고 있다”고 고발한 1971년 신문 기사.
기사 속 사진은 승객이 탔는데도 합승 손님을 더 태우려고 문을 연 채로 기다리는
서울 시내 택시 모습이다(조선일보 1971년 6월 26일 자).
승객의 진짜 불편은 따로 있었다. 생면부지의 타인과 좁은 차내에서 상당 시간을 함께 타고 가는 스트레스였다. 객실이 넓은 버스, 지하철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악의 경우, 귀가하는 취객 옆자리에 바짝 붙어 가는 수도 있었다. 1995년 일본의 베스트셀러 여행안내서는 한국 여행하려는 일본인들에게 이런 주의 사항을 알렸다. "당신이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정차하며 다른 손님이 올라타더라도 결코 놀라지 말도록 하라. 이게 '합승'이라는 것이다."
합승 승객들 사이에선 예측 못했던 일들이 가끔 일어났다. 드물지만 남녀의 인연이 택시 안에서 맺어지기도 했다. '미스 서울'에 뽑혔던 이모양이 1981년 택시 합승을 하다가 만난 남성과 깊은 관계가 된 일은 신문에도 보도됐다. 언제나 택시 손님을 피곤하게 하는 정치 논쟁은 손님들 간에도 종종 벌어졌다. 심하면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1988년 10월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손님과 야당의 김대중 총재를 지지하는 승객끼리 택시 안에서 언쟁하다 '차내 격투'로 번져 경찰 신세를 졌다. 전두환씨가 구속 수감된 1995년 12월 3일 울산에선 50대 택시 승객이 합승한 손님 얼굴을 보곤 "당신은 왜 전두환을 닮았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조선일보 1995년 12월 5일자). 합승 관행을 악용한 '택시 합승 강도'도 출현했다. 기사와 승객으로 가장한 2인 1조가 주로 여성들만 골라 태워 범행하는 이 신종 범죄는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정부가 택시 합승제 부활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스마트폰 앱 미터기' 같은 신기술을 적용하면 요금 시비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고, 기사 신원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승객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할 일이 어찌 이것뿐일까.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몇십 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게 커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합승제 부활은 좀 더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