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본문, 야고보서 2장에서 19절은 행위가 있어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설명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나온 구절로서 우리에게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져주는 말씀이다. 본문과 별 상관이 없는 구절이란 것은 이 19절은 "마귀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환란 때 죄인이 구원받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하고 그 믿음의 성격은 단순히 한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수준이 아니다. 아브라함이나 라합이나(25절) 모두 행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믿음과 결합되어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절은 아브라함이나 라합이나 다른 구약 성도의 믿음과도 다른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믿음인데 즉 다신론자이거나 무신론자가 아닌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믿음이다.
오늘날 19절의 신앙 고백의 형태에 가장 근접한 사상이 "이신론"(理神論)이나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이신론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는 전부 걸러내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만 믿겠다는 사상이다. 이신론자들은 "한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시인하지만 그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우주의 절대적 원리" 같은 존재다.
불가지론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설령 성경의 하나님이 실존한다고 해도 여러분은 성경 공부나 경배를 통해 그분을 만나거나 알지 못한다.
그분이 평정을 주시는데 누가 감히 분란을 일으키겠느뇨? 그분이 자기 얼굴을 감추시는데 민족에게 그리하셨든지, 사람에게만 하셨든지, 감히 누가 그분을 뵈올 수 있겠느뇨?(욥 34:29)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누군가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고 감추실 수도 있다. 그분께서 어떤 민족에게든지 개인에게든 자신을 숨기고 안 알려주시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집단이나 개인이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겼거나 다른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즉, 불가지론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감춰버리신 흑암" 속에 스스로 갇혀서 영적 분별력 없이 헤매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불가지론자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은 보지 못한 것을 본다고 사기치는 거짓말쟁이로 보일 것이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진리를 거절해서 스스로 무지 가운데 들어간 무지한 사람으로 보인다.
불가지론자들은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고 말하기는 해도 공산주의나 진화론자들처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불가지론의 종착역은 조만간 나찌즘이나 무신론, 공산혁명 사상으로 가게 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도다(시 14:1).
필자가 세상 어리석은 "유신론자들"의 부류를 몇 나눠 보겠다.
1. 다신론자들
2. 유일신론자들
3. 불가지론자들
4. 이신론자들
5. 창조적 진화, 혹은 진화적 창조를 믿는 진화론 계열의 유신론자들(상기 부류 중에 겹칠 수 있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대표적)
6. 사탄을 숭배하는 "유신론자들"(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예수회)
어리석은 자들 중 "무신론자들" 부류는 이와 같다.
1.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
2. 국가 사회주의(나찌즘, 파시즘, KKK단)
3. 무신론적 진화론자들
4. 학문적 무신론자들(리처드 도킨스)
여러분이 이 비교를 차분히 살펴볼 적에 어떤 것을 느끼겠는가? 이 세상에 마귀들린 배운 사람, 마귀들린 무식한 사람, 폭력적인 마귀들린 자들, 종교적으로 미친 마귀들린 자들, 진화론을 믿는 미친 마귀들린 자들 가운데 "유신론자"가 많은가, "무신론자"가 많은가? 유명 대학 교수들이라고 하는 자들, 학자적으로 연구해 보니 무신론이 맞다고 해서 가르치는 멍청한 새대가리들(스티븐 호킹,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한줌도 안되는 피래미들) 외에는 전부가 유신론자들이다.
공산주의는 예외가 아닙니까? 그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신론자 그룹이 아닌가 하겠지만 사실은 그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신 하나쯤은 만들어 섬기고 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물질"이다. 괜히 "유물론"인가, 유물론 사상 자체가 신이고 그들은 유물론자들로서 물질을 숭배하고 자기 머리를 숭배한다.
너희는 주,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라.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시라.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초장의 양이로다(시 100:3).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우주에서 가장 명석하고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사탄이다. 자기 머리를 숭배하는 자들은 결국 사탄 숭배자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명목상 무신론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마귀적 유신론자" 그룹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마귀는 "유신론"과 "무신론"을 나눠 놓고 지난 20세기에 엄청난 사기극을 벌였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 가는 사람들이고 이쪽 자유 세계에 있는 사람은 교회만 다니면 성경만 들고 다니면 천국 가는 사람들인 것으로 오도해 놓았다. 심지어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을 하나의 모토로 하는 이단 종파도 나왔는데 그것이 "통일교"다.
마귀들린 유신론자들이, 또한 마귀들린 유일신론자들이 기독교계에 들끓고 있는데 이를 보는 안목이 없는 사람들이 카톨릭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개신교회는 일치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자기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숭배하는 자들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마귀들린 유신론자"인 것이다.
"믿고 떤다"는 것은 확실히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저 종교적인 사람들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믿고 떨어야 한다. 또는 자기 이생의 잘못들로 영원한 상을 놓치거나 책망받는 것도 떨어야 한다. 우리가 게을리 일해서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못 받고 지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 떨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나 육신에 대해 두려워 떨 필요가 없다. 마귀적 유신론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주 담대하다. 그러나 말씀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들은 두려워한다.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하고 수입이 많고 적은 것을 두려워한다. 교단으로부터 이단 꼬깔모자를 쓸까봐 두려워하고 언론을 두려워하며 노상강도를 두려워하고 교통사고를 두려워하며 전염병을 두려워한다. 오래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 것을 볼까봐 또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마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 알았다면 이제 결정해야 하는데 그분의 말씀대로 믿을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우리한테는 복음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축복이 있고 마귀에게는 그들이 믿고 구원받을 "피"가 없다. 그래서 두려워 떨 뿐이지 방법이 없다. 그대로 악을 행하다가 불못으로 들어가야 한다.
"두려워 떤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현상이다. 무턱대고 나대는 람보 같은 사람이라면 불필요한 위험을 많이 자초할 것이다. TV와 인터넷에서 세상의 험난한 곳과 위험한 장소만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소개된다. 그 중에는 그런 스릴을 대리만족 수단으로 삼아서 유명해지는 사람도 있다(베어 그릴스, 김병만 같은).
그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로 그런 아슬아슬한 생명의 위험을 즐기고 있다고 하면 얼마나 딱한 일인가? 이 세상에는 비행기 사고 날까봐 두려워서 평생 비행기 안 타는 사람도 많고 배가 침몰할까 겁이 나서 배도 절대 안 타는 사람도 있다. 그것 뿐이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확실히 인생에 대해 조금 현명한 것이다. 헛되이 만용을 부리다가 구원도 못 받은 채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조심해서 사는 게 좋기야 하지.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겁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일시적 육신만 보존하려다가 결국에는 자기도 죽는 것이다.
병원 침상에서 죽는 것이나 에베레스트에서 산사태에 묻혀 죽는 것이나 비행기 추락으로 죽는 거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온하고 안락하게 죽는다고 해서 죽음이 더 멋있어진다거나 행복한 것은 없다. 문제는 소망이 있는 죽음이냐, 없는 것이냐다.
성경은 이 세상의 유신론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의 찾았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가 곧 불타는 지옥으로 빠질 함정이다. 거의 찾은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결국 의미가 없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완전히 믿고 완전히 구원받아야 된다.
그러자 아그립파가 바울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를 설득시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하니(행 26:28)
즉, 지금 세상에도 아그립파 같은 "거의" 되다 만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