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이
해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고모네 집에서는
바다 끝으로 떨어지며
우리 집에서는
맞은 편 아파트 옥상
난간으로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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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봄이 오는 날
아빠와 함께 심은 꽃씨
단비가 내리자
파랗게 싹이 나왔다.
학교 갈라 학원 다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고
피는 꽃도 못 보고
지는 꽃도 못 봤다
꽃은 피면서 나를 찾고
지면서도 나를 기다렸을 텐데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나를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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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놀이
손가락을 높이 들고
물방울을 잡아라.
잡다가 못 잡으면
뒤꿈치를 들어라
그래도 못 잡으면
깡충 깡충 뛰어라.
엄마가 뿌려 놓은
무지갯빛 물방울
날 기전에 잡아라.
깡충 깡충 뛰어도
하늘 높이 날아가면
두 손을 흔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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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문학상 수상소감
이효범
수상소감을 쓸려고 책상앞에 앉으니 아직도 백상봉 회장님에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어 어안이 벙벙하다 “축하합니다! 이효범씨가 강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을 몇 자 적어주세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상대편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발신인 회장 백상봉이라 쓰여 있었다.
오래전 젊은 시절에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대리승진시험을 보고 초초하게 몇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승진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얼마나 듣고 싶은 목소리였든가 오늘 나는 그와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하여튼 수상소감을 쓴다는 것은 가슴 떨리며 즐거운 일이다
먼저 수상을 양보한 많은 후배들과 문협회원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 글을 선택해주신 백상봉회장님과 심사위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향후 강서문협 발전을 위하여 제가 서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강서문학상 수상자답게 부끄럽지 않는 글을 쓰겠습니다.
일흔을 뛰어넘는 나이에 파킨슨이라는 인생에 동반자를 얻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힘없는 저에게 이렇게 뜻깊은 상을 안겨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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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문학싱 심사평
<동 시>
아기별
밤하늘에 총 총 총
뛰어놀던 아기별 들
방울방울 아슬 되어
숲속으로 내려왔다
나무에서
풀밭에서
대롱대롱 데구르르
밤새도록 놀다가
아침에 해님이
초롱초롱 떠오르면
안개 되어 천천히
별나라로 올라간다
이번 문학상 심사에 예선을 거친 시 두 분과 동시 한 분의 작품이 이름이 가려진 채 최종심에 넘어왔다. 심사가 끝난 후에 물어보니 아동문학가 이효범 씨라 했다.
나머지 두 분의 자유시도 훌륭한 작품들이었으나 비교적 고른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시 5편 중에서 ‘아기별’을 수상작으로 최종 가려 뽑았다.
동시는 말 그대로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맑은 눈으로 어린이의 마음밭에 찰랑이는 감정을 운율에 맞춰 노래하는 장르이다. 거기엔 어떤 복잡다단한 수사나 기교도 필요하지 않는 투명하고 단순 명료한 어린이의 눈높이가 요구된다.
‘아기별’에서는 밤하늘에 총총 빛나던 별빛이 밤새 이슬방울과 놀다가 아침해가 떠오르면 안개되어 다시 별나라로 올라가는 자연 순환의 흐름을 그 기저에 깔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 말 마디나 운율에 전혀 거슬림이 없이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느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하는 운율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가 총총총, 대롱대롱, 데구르르, 초롱초롱 등의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적히 버무려 넣어 소리글자인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은연중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교도 보여주고 있어 수작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상을 감축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이 나라 문단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김 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