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가 그립다>
벌써 2년의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
새해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정신없이 달려간 중환자실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과 마주했다.
김종문 간사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실로암사람들의 회원 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1996년 광신대실로암 동아리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리틀 박종호였다.
그는 노래 잘하는 교회 오빠로 어디서나 인기가 많았다.
내가 맡고 있던 목요모임과 캠프의 찬양 인도도 그에게 넘겼다.
1996년 말 목요찬양단을 창단하여 단장을 맡으면서 그는 실로암사람들 최고의 찬양 인도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실로암사람들 내부뿐 아니라 선교예배 등 외부 활동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실로암중창단, 수화찬양단, 목요찬양단, 김종문, 장성규 등 찬양사역의 전성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CCM 음반을 제작하려 하였으나 끝내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그가 작곡하고 부른 찬양의 음원이 몇 곡 남아있다.
'우린 하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실로암사람들 모임에서도 많이 불렀다.
그는 청캠에서 만난 임지은 자매와 결혼도 하고 예쁜 딸들이 태어났다.
2011년부터 실로암사람들 사무국 간사로 함께하게 되었다.
염려했던 건강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는 투석을 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실로암사람들과 찬양사역을 함께해 왔다.
마흔다섯 살, 너무나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큰 딸 유민이는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작은 딸 유은이도 이제 초등학교 3학년 된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가 그립다.
함께 불렀던 찬양을 혼자 부르며 그를 추억한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은 가족들을 하나님의 손길에 의탁드린다.
“그 친밀한 손길은 낮엔 구름으로 인도하시고
밤에 불기둥으로 지키셨네 주께 맡긴 나의 삶”
(최인혁_주께 맡긴 나의 삶)
(202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