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류 문화 국가 창조의 중심 신동명천제단 카페지기 대조영입니다. 이번 주간 훈화는 <절름발이 수상 존 메이저(John Major)> 입니다.
영국의 유명 빈민가인, 램버스구 브릭스톨 지역에서 한 소년이 덕지덕지 붙은 서민 아파트의 낡은 계단을 상기된 얼굴로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사립 그래머 스쿨 입시를 통과한 이 소년은 이 날 가난뱅이 학생에게 주는 학교 보조금으로 중고 옷가게에 들러 꿈꾸돈 교복 한 벌을 사들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하던 중이었습니다.
소년은 다칠 새라 그 교복을 곱게 접어 두 손에 받쳐든 채 한 번에 두 계단씩을 성큼성큼 뛰어 5층 맨 꼭대기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방문 밖 층계 바닥의 부엌에서 찌그러진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끼니를 준비하고 있는 어머니와, 침침한 구석방 간이 침대에 노환으로 몸져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소년을 다시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년은 영국 52대 수상인 존 메이저(John Major)였습니다. 1990년 11월, 영국 사상 최초 여성 수상인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뒤를 이어 수상으로 취임한 그는 취임식 날,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로 들어서면서 연도에 선 국민들을 향해 90년대의 영국은 계급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존 메이저 수상은 16세에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그래머 스쿨(중학 과정)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은행 견습 사원부터 건설 현장에서 시멘트를 섞는 막노동자, 전기 공사 말단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자리까지 잃어 9개월 간 실업 수당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언젠가는 버스 승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입사 원서를 냈으나 키가 너무 크고 휴대용 매표기의 조작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존 메이저는 절름발이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존 메이저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존 메이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실업 수당을 탔으며, 교통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키다리 사내 존 메이저.
그가 어떻게 영국 수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그의 좌우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치우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다', '순수하라'. 불편한 신체적 조건을 문제삼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용한 성품으로 항상 치우치거나 지나치지 않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삶의 원리가 존 메이저를 영국이라는 나라의 최고 정치인으로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