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이옥순]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인도는 가난하고 더럽다. 그것이 뭐가 이상한가? 지금은 누구나 다 잊은 듯이 뽐내고 있지만 18세기 유럽이나 20세기 중반의 우리나라도 그랬다. 20세기 초 서울을 방문한 한 선교사는 우리나라를 전염병의 천국이라고 기록했다. 알고 보면 위생이니 뭐니 하는 것도 목적은 향상시키지 않고 수단만을 강조하는 서양의 산물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얇은 위생학 책을 가졌다고 비아냥 받는 인도. 1994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페스트를 초대하여 세계인을 긴장시켰던 나라. 이에 놀란 선진국들은 각종 벌레와 질병의 온상인 인도의 더러운 환경과 비위생적인 생활에 대해 앞다투어 온갖 입방아를 찧었다.
사람들은 남이 지닌 자기와의 다른 점을 약점으로 파악한다. 슬쩍 경멸의 웃음을 던지면서. 하지만 인도인은 우리의 상식을 보기좋게 배반하고, 건강과 청결에 관한 나름의 정교한 위생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문명인인 그대가 위생의 '위'자도 모르는 야만인임을 아시는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여기 시데쉬와리 데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인도의 유명한 클래식 성악가인 데비가 영국에서 첫 공연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동양의 음악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으나 공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울한 얼굴로 내려오는 그녀에게 이유를 묻자, 대답이 기상천외했다.
"청중을 보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화장지로 밑을 닦았을 테고 그곳에 더러운 것이 말라붙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도통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예요. 그러니 연주가 제대로 되겠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인도인들은? 어려울 것 없다. 그들은 왼손을 사용하여 물로 뒤를 씻는다. 인도인의 시각에서 보면 화장지를 사용하는 문명국 사람들이 오히려 비위생적이다. 그 잘난 '백인 나라'들은 휴지를 사용했다고 손을 씻지 않을 뿐더러 손수건에 킁킁 코를 풀고는 그 더러운 것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는다. 세상에! 차마 말은 하지 않지만 그걸 보면 인도인들은 속이 메슥거린다. 밖에 나가서 왼손으로 코를 풀고 그 손을 벽에 쓱 문대면 간단한 것을.
이러한 차이 때문에 델리 공항에서는 화장지를 둘러싼 진풍경이 벌어진다. 델리 공항에 내리면 소위 제3세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우중충한 분위기와 근원을 추적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해 하루 만에 귀국했다는 한 한국 학자의 발빠른 움직임은 전설이 된지 오래다. 더욱이 싱가포르나 방콕의 공항을 거쳐 왔다면 비교급의 정수를 즉석에서 깨달을 것이다. 역시 인도는 깨달음의 나라이다. 세수라도 할 양으로 공항의 화장실로 들어가면 한 여인이 잽싸게 다가와 두루말이 화장지를 30센티미터 정도 끊어준다. 그리고 손을 벌려 돈을 요구한다. 아무리 국제공항이지만 이곳은 인도, 화장실에 화장지가 따로 없다. 외국인에 대한 이처럼 따뜻한 서비스도 그 엮는 오래지 않은데, 화장지 생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장부터 웬 냄새나는 이야기냐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가? 문명인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보통 '뒤'에 관한 이야기를 더럽고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도인은 배설을 잠자는 것처럼 자연적이고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그들 나름의 분명한 위생 관념과 실행 규칙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배설물과 음식물의 차이와 더불어 양손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인도인 특유의 관념이 스며있어 흥미롭다.
인도인은 뒤를 씻을 때 반드시 왼손을 사용한다. 코를 풀고 귀를 청소하면 눈곱을 떼는 것도 왼손이 하는 일이다. 목욕을 할 때는 오른손으로 상체를, 왼손으로는 허리 아래 부분을 닦는다. 더러운 일은 모두 왼손이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인은 손으로 밥을 먹는데, 에너지 공급이라는 중대한 그 사명은 당연히 오른손의 몫이다.
몹시 헷갈릴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를 반복해온 인도인들은 이 복잡한 손의 분업에 대해서 전혀 시행착오가 없다. 그러나 무지한 이방인들의 손은 공중에서 여러 번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나도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지만 내 왼손은 나도 모르게 음식에 가 있기 일쑤였다. 안타깝게도 또 다른 외국 친구는 아예 왼손잡이. 우리 두 사람을 보면서 기숙사 동료들은 벌레 씹은 채식주의자의 심정이었으리라. 하긴 아무리 깨끗해도 요강에다 밥을 담아 먹을 수는 없잖은가?
청결한 그대를 이번에는 인도 시골의 화장실로 안내할 차례다. 자, 우리는 지금 새벽기차를 타고 인도의 자연을 가로지르고 있는 중이다. 잠시 창밖으로 눈을 돌려보라.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여기가 바로 천혜의 화장실. 우리 식으로 이름을 붙이면 '화장터', 아니 즉석 변소라는 말이 더 나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도시를 나서면 화장실 따위는 아예 없다. 사람들이 가장 낮은 자세로 앉아 있는 자연의 한가운데, 그곳이 바로 뒤를 보는 자리이다.
지저분하다고 얼굴을 찡그리지 마시길. 이제 곧 여러분은 인도에서 배설조차 어떻게 정교한 의식이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연'이 부르면 물을 담은 큰 놋쇠잔을 들고 자연의 '변소'로 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실례를 하는 것은 아니 될 말이다. 여기에도 질서와 예의가 있다.
먼저 깨끗한 장소를 골라서 신발을 벗는다. 사원, 강, 우물 그리고 신성한 나무와 가까운 곳은 피한다. 오염을 피하기 위해서다. 농사를 짓는 땅이나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도 마땅한 장소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잡은 후, 일을 보는 동안은 가장 저자세를 취하며 공연히 주위를 둘러보거나 감히 하늘을 올려다보아서는 안 된다. 조용히 일을 보아야 하며, 입에 무엇을 넣고 우물거려서도 안 된다. 급하다고 서두르거나 급히 일어서지 않으며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아무리 이쁜 여자라도--을 보더라도 아는 척하지 않는다. 드디어 일을 끝나면 들고 온 물잔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을 움직여 뒤를 닦는다.
일(?)이 끝나고 나서는 가까운 강이나 개울로 간다. 진흙으로 몸의 더러워진 부분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군다. 두세 차례 반복. 그런 다음 왼손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을 진흙으로 여러 번 씻는다. 다시 다른 흙으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에서는 진흙이 아닌 비누를 쓴다. 자, 이래도 비위생적인가?
옛날 남부의 마이소르 지방에서는 집안의 남자들이 '자연의 부름'을 받으면 여자들이 따라가서 뒷일을 대신 처리했다고 한다. 마치 응아를 한 아이를 엄마가 돌보듯이 말이다. 좋은 집안임을 강조하는 관습이었으나 다행히(물론 여성에게) 교육의 확산과 함께 그러한 관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엄마들 중에 아이의 뒤를 화장지로 적당히 처리하는 엄마는 없으시겠지?
바깥의 것(화장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손)을 믿는 인도인의 태도는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뭔가 찝찝해서 화장지의 두께를 늘리는 우리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다. 사실 10억에 가까운 인구가 수세식 변소와 화장지를 우리처럼 마구 써댄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아주 아찔하다.
세계의 은행이 지원하는 인도 서부의 나르마다 강 다목적댐 건설이 1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도시의 수세식 화장실을 위해 너른 농경지를 수몰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기반을 뺏아야 하는가, 라는 비판이 한몫을 한 것이다. 인도에 살면 이처럼 인도 방식의 유용성이 절실히 느껴진다.
이제 이야기를 오른손 쪽으로 돌려보자. 깨끗한 쪽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어차피 한 번은 떠날 유한한 이 세상에서 배설도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앞서도 말했듯이, 인도인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 시각, 후각에다 촉각까지 사용하는 전천후인인 셈이다. 더운 음식을 선호하는 그들은 먼저 손으로 음식의 온도를 잰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는 '사랑은 눈으로 오고 술은 입으로 온다.'고 노래했지만,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
인도의 음식은 대개 푹 삶거나 국물이 충충한 부드러운 음식이다. 따라서 딱딱한 끼를 집을 때 쓰는 포크가 필요하지 않다. 쇠로 만든 숟가락보다는 역시 내 손가락이 말을 잘 듣고, 게다가 식당에서 주는 숟가락이나 포크가 과연 입에 넣을 만큼 깨끗한가? 대도시에 사는 서구화된 계층과 일부 젊은이들을 제외하면 모든 인도인이 자기 몸의 일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숟가락은 못 믿지만 적어도 먹기 전에 씻은 내 오른손은 확실히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에 관해서도 위생에 관한 인도인의 규칙은 까다롭기 그지 없다. 그들은 음식을 조리하면서 절대 맛을 보지 않는다. 입 안의 침을 부정하게 생각하여 일단 맛을 본 것은 더럽혀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된장국 하나 끓이면서 서너 번씩 숟가락이 들락날락하는 우리의 철저한 맛내기 정신이 인도인들에게는 그저 '으악!'의 대상일 뿐이다.
침을 경계하는 인도인은 물을 마실 때도 물잔에 입술을 대지 않는다. 여러분도 컵에 입을 대지 않고 공중에서 입으로 물을 붓는 곡예를 한번 해보라. 작은 곡예사들 틈바구니에서 이방인인 내가 겪은 비애를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바나나처럼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은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미리 잘라서 하나씩 집어먹으면 된다. 육류를 조리할 때도 한 입에 넣을 수 있게 미리 토막을 친다. 이러니 우체국에 가서 급하면 풀 대신 혀끝을 슬쩍 이용하는 나는 구제불능의 천민일 수밖에...
인도 친구들이 한국인을 보고 경악하는 것이 또 있다. 여러 사람의 수저가 한 곳에서 만나는 화기애애한 우리의 식습관을 보고 놀라는 것이다. 그들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각자 접시에 덜어 먹는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그릇이 아닌 바나나잎에 음식을 담는다. 여러 번 사용했던 깨끗하지 못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다. 게다가 바나나잎은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있다. 환경보호! 우리는 보통 보수주의자를 우파라고 부르고 개혁을 지향하는 자를 좌파라고한다. 또 기득권자를 우파, 억압받는 쪽을 좌파라고도 한다. 생물에 대한 유전과 환경의 영향에 관한 논쟁에서는, 대개 좌파가 환경을 중시하고 우파는 유전을 중시한다. 이를 인도의 왼손 - 오른손 분업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무척 흥미롭다.
그대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오른손잡이이지만 왼손도 쓰는 나는 중도우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