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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9:1~41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길가에서 구걸하는 날때 부터 소경된자를 고치신 기적에 대한 기사이다.
이 당시, 유대에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성문 앞이나 큰 길가엔 의례 소경이나 앉은 뱅이 같은 장애인들이 앉아 구걸을 했는데, 예수님이 그 소경거지를 바라보시니,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묻게 된다.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것이 뉘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오니까"
이 질문을 한 제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소경으로 태어나 구걸까지 해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출34:7의 '...형벌 받을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라는 말씀을 떠올렸지 모른다.
그리고 자기죄로 인한 인과로 소경으로 태어났냐고 하는 질문은 어찌보면 환생을 인정하는 듯 보이는데, 제자는 어쩌면 당시에 만연해 있던 이방종교의 윤회사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한다.
유대교는 윤회를 믿지 않지만 이 윤회사상은 고대 바빌로니아 때부터 내려와 이단의 교리로서 자리를 잡았고 헬라문화권에서는 만연해있어 유대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중에 한국의 전통 샤머니즘과 기독교를 섞어 부처를 믿듯 기복신앙으로 예수를 믿는 분이 있는 것 처럼 그시대에도 이방종교의 윤회사상과 유대적 율법을 아우러 현세에서 불구나 병자로 태어난 자는 전생의 자기죄나 부모의 죄로 인한 보응으로 믿는 유대인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예수님은 단호히 이런 제자들의 사상을 배격하며 말씀하신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를 범한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말씀은 자칫 문자 그대로 본다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소경은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시는 도구로서 소경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비참하게 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셨듯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단순하게 말씀하시는 법이 거의 없으셨다.
이 소경 걸인은 저주받아 날때부터 영적소경된 우리들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전장인 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처럼 어둠에 있던 우리를 건져 빛을 보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이러한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이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의 '때가 아직 낮'이라는 것은 빛이신 예수님이 아직 세상에 계실 때이며 그가 일을 마치시고 죽으시는 때로 밤이 오기전에 예수님은 빨리 일을 하셔야 하심을 뜻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 일외에도 소경을 말씀이나 또는 손으로 만지거나 눈에 침을 뱉아 눈을 뜨게 하셨다.(막10:46~52, 마9:27:31, 막8:22326)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때는 굳이 번거롭게 침을 진흙에 이겨 바르고 실로암 못에 씻으라고 하신 것일까.
여기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려는 특별한 영적의미가 담겨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날때부터 소경된자는 히나님과 단절됨으로 영적소경이 된 모든 인류를 상징한다.
그리고 흙에 예수님이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발랐 다 함에 대해선 이 당시 유대인들은 침이 병을 치유하는데 특효가 있다고 믿었기에 예수님은 소경의 그런 민간요법을 믿는 심리를 이용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묵상해보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체액은 우리의 죄를 씻기고 치유하고 살리는 힘이 있어 예수께서 흙에 침을 섞어 진흙으로 이겼다 함은 죽은 흙에 불과한 우리의 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옴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우리 몸은 범죄전의 아담처럼 산 흙이 되어 그로 인해 영적소경이었던 자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실로암, 보내심을 받은자 그리스도에게 가서 눈을 씻는 행위는 그리스도안에서 몸과 마음을 성결케 하는 세례의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날때부터 소경된자에게 이러한 특별한 방법으로 고치심으로 자신이 인류에게 할 일을 한 소경을 대표해 계시 하신 것이다.
소경으로 태어나 한번도 세상을 본적이 없는자가 눈을 떠 세상을 본다. 여기엔 이렇듯 놀라운 영적인 비밀이 있지만 육적으로도 소경 자신에게 경이로운 일이었다. 또한 그를 바라보는 자들에게도 도저히 믿기지 않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사람이 구걸하던 그 소경이니, 비슷하나 아니니, 하며 서로 분쟁하는데, 그때 소경은 '내가 그로라' 라고 말한다.
이에 사람들은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라고 묻고 눈이 떠진 소경은 있는 그대로 사람들 앞에서 간증한다.
"예수라 하는 그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이 것은 마치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는 수많은 간증에서 보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해놓은 것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날은 하필 안식일이어서 이 치유의 기적은 바리새인들 사이엔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냐 아니면 죄인이냐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이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긴것은 유대인의 미쉬나 율법서에 따르면 회반죽을 하지 말라는 조항을 어긴것이고, 또 눈을 고쳤다함은 생사가 위급한 일 외엔 의료행위를 금하는 조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자라면 율법을 어길리 없다고 말하는데 그중 몇사람은 그가 죄인이라면 어떻게 저런 표적을 행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쟁론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자 다시 소경되었던 사람을 불러 묻는다.
"그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사람을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이에 소경은 망설임 없이 단호히 대답한다.
"선지자이니이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아무래도 믿겨지지 않는지 이젠 소경되었던자의 부모를 불러 묻는다.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보느냐"
그러자 부모는 자기 아들이 맞고 소경이었던것은 맞지만 누가 그 눈을 뜨게 모르니 모른다며 아들도 다컸으니 저애에게 물어보라고 떠넘긴다.
본문에서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면 출교 하기로 결의함으로 저희가 무서워 그렇게 대답했다고 나와있다.
유대인에게서 출교란 회당출입은 물론 사회적인 어떠한 교제나 매매행위가 금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가 죽으면 그 시체에 돌팔매를 하고 그를 위해 우는 것 또한 금지된다.
즉 사회적인 완전한 매장을 의미하는데 이 무서운 형벌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에게 가하기로 결정내린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슬그머니 발을 빼자, 바리새인들은 다시 소경을 추궁하는데 이번엔 아주 희한한 말을 한다.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이건 정말 요즘말로 말인디 막걸리인지 말도 안되는 말로서 네 눈을 뜨게 하신이는 하나님이니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지만 네눈을 뜨게 한자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소경이었던자가 대답한다.
"그가 죄인인줄 내가 알지 못하나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이 말은 단순하지만 매우 대단한 신앙고백이다. 이 소경이 아는 단 한가지는 그리스도가 누구건 남들이 어찌 생각하건 자기에게는 인생을 구제해준 자라는 것이다.
그는 비로소 보게 된 만상에 황홀해 감격했고 그로인해 자기의 눈을 뜨게 한자가 죄인이건 누구건 그를 위해 충성할 각오가 되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리새인들은 다시 그사람이 네게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네눈을 뜨게 했는지 재차 묻는다.
이에 소경이 이번엔 용감을 넘어 당당하게 그들을 비꼬며 책망까지 한다.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제자가 되려하니이까?"
성문앞에서 구걸하던 자가 한 말치곤 참으로 재기 넘지고 호기로운 말이다.
이말은 이사야6:9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또한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느냐' 이 말안엔 여러가지 뜻이 담겨 있다.
자신은 이제 자신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의와 당신들의 출교령도 두렵지 않다는 뜻,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이니 당신들도 믿어야 한다는 뜻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체면이고 뭐고 길길이 날뛰며 소경을 욕하고는 이같이 말한다.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린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니라"
하지만 이런 바리새인들의 분노는 이 소경되었던자의 용기를 꺾지 못하고 그는 아주 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을 밝힌다.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이후로 소경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일도 할수 없으리라"
소경이 성경을 알아서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경으로 태어나 배운것 하나 없는 그가 시편과 잠읜 이사야서 등, 성경말씀으로서 어느 율법학자보다 논리정연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한것이다.
시66:18 "내가 내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잠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니라"
사35:5"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것이며"
이에 바리새인들의 다른 말로선 그의 논지에서 이길수 없자 인신공격을 함으로 그의 입을 막으려 한다.
"네가 온전한 죄 가운데 나서 우리를 가르치려 가르치느냐"
현대에서도 가정이나 학교, 또는 직장에서나 불의한 권력자들이 약자들의 논리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면 이러한 비열한 방법을 써 약자의 입을 다물게 한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데 이 현대 사회뿐 아니라 애석하게도 교회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소경은 이 불의한 바리새인들 앞에서 바른 말을 함으로 출교를 당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런 그에게 찾아가신다. 소경이 예수를 찾아간 것이 아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항상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예수께서 믿자 소경이 말한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소경되었던자는 예수께 절함으로 그리스도안에 속한 거룩한 자가 된다. 얼마나 감격스런 장면인가.
즉, 그리스도로 인해 눈을 떠 어둠에서 빛으로, 율법에서 은혜안으로 들어온 자가 된것이다.
그런데 이 날때부터 소경된자는 먼저 있었던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중풍병자와 여러모로 닮은 면이 있다.
예수님이 아무 소망없는 무능한자에게 스스로 찾아가 아무댓가없이 고쳐주신 것, 그리고 안식일에 행한 치유행위로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산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 소경은 38년 중풍병자완 다른것이 바리새인들앞에서의 태도와 그에 따른 결말이다.
소경은 세상을 버림으로 그리스도의 안에 속하게 되었고 또 38년 줌풍병자는 세상을 택함으로 예수를 버렸다.
이 상이한 두 결말은 예수님이 이 소경에겐 하나님이 하실일을 나타내시기위해 태어났다 하셨고, 또 38년 중풍병자에겐 이전것보다 더 심한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신 말씀 하신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 소경되었던 자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드러낸 자로서 우리에게 훌륭한 신앙의 본을 보인다.
그는 은혜를 아는 자이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함을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뱉어 시인했다.
출교를 당하는 것 또한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했고 그럼으로 당당히 예수께 절하며 경배하는자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경배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만이 그리스도를 경배한다.
우리도 그리스도께 그러한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린 간혹, 생계를 위해 목숨을 위해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예수를 부정하는 사람들 안에 동참 해야 할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럴 때 우린 이 소경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을 택하면 세상도 얻고 하나님도 얻지만 세상을 택하면 하나님도 세상도 잃는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부의 성공한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될수 있으나 보편적으론 믿는자가 그리스도를 택하면 세상을 잃고 그리스도만 얻는다.
그러나 우리가 버리므로 얻는 그리스도는 이 세상과는 비교할수 없는 가치 있는 것으로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한끼의 빵조각쯤은 먹지 않아도 괜찮은 것과 같다.
우리모두 이 소경처럼 세상이 우리를 압력에 올때 '내가 한가지 아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라고 용감히 고백할수 있는 자가 되자.
ㅡ주님의 산 나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