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할머니는 꼭 점심 때마다 우리들의 밥을 차려 주시겠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항상 말을 하는데 도무지 듣질 않으셨다. 그러던 지난 해 봄 어느 날 늘 점심을 차려주던 할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를 찾겠다며 매일 아침만 되면 읍내며 산골짜기며 이곳 저곳 돌아다니신다.
2. 이제와보니 할머니가 최근에 찍은 사진이라곤 부엌에서 밥을 푸고 계시는 사진(사진1) 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아버지는 그 사진을 항상 들고 나가신다. 이제는 다 헤져버렸지만 항상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할머니를 찾으신다.
3. “아부지, 사진은 뭐한다고 들고 댕겨요. 어차피 마을 사람들 할머니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쪽 마을 박씨네도 우리 할머니를 아는데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놈아, 혹여나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나 우리 어머니 모르는 사람도 있을거아녀. 너도 할 일 없으면 너 할머니좀 찾으러 댕겨라”
4. “아부지 일년 째에요. 저도 맨날 마을 곳곳 돌아다니며 할머니 찾는데 도대체가 어디 계신지 감도 안 잡히고….” 아버지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나가셨다. 그 후로 얼마 뒤, 저 멀리서 웬 남자 하나가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사진3)
5. “여기 김점옥씨네 집이죠?” 웬 남자가 다짜고짜 우리 할머니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우리 할머닌데요. 누구세요?” 그때부터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할머니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아버지가 집에 같이 있을 때 안오고 타이밍이 안맞는다’고 생각했다.
6. “경찰인데요 저기 산 너머 강가에 웬 할머니로 보이는 시체 하나가 떠올라서 조사 좀 해보니 이쪽 집안 사람인거 같아서 왔습니다. 이게 뭔 특별한 건 없고 산에 갔다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셨다가 강까지 떠 내려 간거 같네요. 특별히 누구 한테 맞거나 한 외상도 없고 굴러 떨어져 다친 외상만 발견됐네요. 시체를 보셔야 될거 같긴 한데 워낙 부패가 심해서….”
7. ‘쿵’ 그때였다.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주변을 살펴보니 아버지가 구두를 잘못 신고 나가셔서(사진4) 집으로 다시 돌아오던 중 같이 듣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부지!!!!!!” 아버지는 그날로 쓰러지셨고, 할머니가 돌아 가셨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할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겹쳤다.
8. 아버지를 등에 업고 나는 계속 뛰었다. 워낙 시골이라 병원에 가려면 못해도 삼십분은 가야 했다. 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달려가며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생각보다 아버지는 가벼웠다. 할머니를 찾겠다며 본인은 끼니를 잘 못 챙겨 드셔서 그런지 많이 야윈 것도 있다. 토할 것만 같았다. 속이 매스껍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갈 사람이 없다.
9. 삼십 분간 아버지를 업고 겨우 마을 읍내에 위치한 병원에 갔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조금만 안정을 취하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충격을 받아 이번에는 내가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운게 가라 앉질 않았다.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속이 좋질 않았다. 결국에는 병원 뒤 쪽 골목에서 구토를 했다. 토를 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10. 한참을 길가에 앉아 있는데, 우리 옆 집 사는 친구가 나에게 와 할머니 사진을 건냈다. “이걸 왜 너가 갖고 있냐?”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친구한테 물었다. “읍내 나왔다가 병원 앞에 떨어져 있길래 봤더니 너네 할머니가 아니겠냐. 근데 딱 때마침 너가 여기 앉아있네?” 나는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다 이제는 할머니가 퍼준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