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피하려다~]
우수雨水에 어울리게 비가 내린다. 우수는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과 ‘겨울 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다. 음력으로 대략 정월에 들고,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다. 이제 겨울철 추위가 풀려가고 한파와 냉기가 점차 사라지며, 겨울의 마무리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이기도 하다.
이 무렵 꽃샘 추위가 잠시 있지만,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튼다. 봄이 가까이 오는 듯 앞 베란다 문을 열어 바깥 바람을 받아 들인다. 반복되는 일기 예보는 계절에 보기 드문 양의 비를 뿌리고, 중부 지방은 눈까지 내린단다.
승강기 안 게시문에 제시된 내용처럼 일정에 맞춰 위 층에서 전달되는 공사 기계 음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한다. 한가한 오후 빗줄기를 바라보며 거실에 머무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옷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아내와 딸을 끼고 현관을 나섰다. 공원 산책 길을 찾아 가는데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린다. 발 길을 옮겨 근처 카페로 향한다. 잠깐 앉아 있을 것이 아니기에 눈치 받지 않고 지내다 올 수 있는 곳으로 간다. 5분 정도 걸어 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나 카페에 들어섰다. 1층에서 주문을 마치고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전망이 좋은 좌석 이래야 한쪽은 도로를 내려다보는 창가이고, 다른 쪽은 산자락을 끼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먼저 온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한 바퀴 고개를 돌려 빈 자리를 찾다가 창 밖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마지 못해 앉았다.
아내와 마주 앉아 차 한 모금을 마시는데, 건너 편 좌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여성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소리가 몇 테이블을 건너 뛴 우리 자리에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진다. 무슨 목소리가 그리도 크게 이야기하느냐는 말에 딸은 카페에 ‘이야기 나누러 왔는데’ 당연하지 않느냐고 대꾸를 한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의사 소통이 될 정도의 목청으로 말하는 것이 담화의 기본 이치가 아닌가. 마치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전달하듯 2층 구석진데 까지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남편 이야기에 이어 자식의 연애 담과 명절 때 시댁 식구들의 소식까지, 가족 구성원의 사연을 아무 관계가 없는 옆 사람이 꿰찰 정도다. 이야기는 직장 문제와 실업수당 청구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짧은 시간에 가정 사를 세밀하게 듣게 만든다. 언제 이야기가 잦아들까 기다려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맞은편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대학생 차림의 여성이 소지품을 챙겨 벽 너머 먼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제는 목소리가 작아 지려나 기대했지만 기력이 처음과 같다.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목소리는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혼자 이야기를 이끌면서 주변에 다른 카페 이용자들의 불편함은 아예 돌아보지 않는 눈치다. 혼자 고민을 한다. 다가가서 부탁이라도 해 볼까. 아니면 카페 관리자에게 이 불쾌함을 전달할까. 주저하다가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원, 세상에 이렇게 무례한가’ 내가 너그럽지 못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다가와 귀에 거슬리는가. 그 사람들이 대화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인가.
우리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카페를 나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뭔가 뒤바뀐 모양세다. 같은 출입구를 쓰는 다른 층 집 수리의 기계 음을 멀리 하고자 찾아간 카페가 오히려 소음의 장소로 다가왔다.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커피 집이 무수히 많다. 전망이 좋은 곳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주제가 있는 카페들이 자신들만의 특징을 살린 휴식처로 만들어졌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나누던 대화의 중심지가 차와 곁들임을 함께하는 모임의 장소마저 이곳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따로 정해 진 것이 없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학부모들이, 점심때에는 직장인들이 또, 오후에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손주를 맞이하는 보호자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우리처럼 일없이 그저 시간을 메꾸어 나가는 사람까지 저마다 에너지를 여기에서 쏟는다. 블로그나 인스타 등 다양한 모습을 카페 여행 사진과 글을 덧붙여 인터넷 공간으로 이끄는 사람도 보인다.
대화의 장소가 바뀌었다. 사랑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거리의 카페로 이어진다. 홀로 공부하는 장소로도 이용된다. 가끔은 음료수 한 잔에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는 공시족의 자리 독차지 글이 민폐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변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다. 시대의 흐름에 잰 걸음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배려는 나의 교양 만큼이나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상 사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던해지고, 귀를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지만 그렇지 못하다. 작은 일에도 가시 돋힌듯 쏘아 붙이고 행동으로 나서는 경우까지 있다. 경륜이 많아지고 인문학적 소양이 쌓이면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할 터인데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긴 호흡으로 마음을 푸근하게 가져야겠다는 맹세를 한다.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에서 확성기를 통해 전달되듯 외치는 목소리는 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카페가 휴식의 공간은 아닐지라도 성가신 대화의 장소는 피해갔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좀 더 느긋한 스스로의 마음을 다짐해본다.